김미경, “'나는 괜찮은 사람' 엄마 생각이 아이 바꾼다"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11.10 15:06

-28년간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이야기 담아 ‘엄마의 자존감 공부’ 펴내

  •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면 먼저 엄마의 자존감이 튼튼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기강사 김미경씨.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교육은 엄마의 위치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임영근 사진기자
    ▲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려면 먼저 엄마의 자존감이 튼튼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기강사 김미경씨.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교육은 엄마의 위치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위치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임영근 사진기자

    “엄마, 나 학교 그만둘래.”
    둘째 아이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인기강사 김미경(52ㆍ더블유인사이츠 대표)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 그렇게 며칠을 강의도 못하고 앓아눕고 나니, 자신이 진정으로 걱정하는 대상은 아들이 아니라 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어떡하니?”가 아니라 “나 어떡하니?” 였던 셈이다. 순간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밀려왔다.

    “준비 없이 속성으로 들어간 예고에서 악보도 못 읽는 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죽고 싶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을지는 생각하지 않고 중졸 아들을 둔 제 마음만 바라본 것이 너무 미안했어요. 자식을 안아줄 사람은 부모밖에 없음을 그제야 깨달은 거죠.”

    ◇내 아이를 안아줄 사람, 오직 엄마뿐
    엄마 김미경은 달라졌다. 바닥으로 떨어졌을 아들의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일단 아들의 손을 잡고 수십번 미안하다고 말하고 틈날 때마다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알려줬다. 그는 “사춘기까지 겹쳐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두려울 아들을 그 굴레에서부터 꺼내야 했다”며 “세상 모든 부모가 그렇듯 엄마 역할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씨의 바람과 달리 아들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자퇴만 하면 알아서 잘할 거라는 애초의 말과는 달리, 잘하기는커녕 매일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왔고 오후 3시까지 문을 걸어 잠그고 잠자기를 반복했다.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즈음, 방문을 열고 혼내려던 순간 코끝을 찌르는 냄새가 있었다. 바로 라면이었다. 라면 그릇과 먹다 남은 김치가 방바닥에 나 뒹굴고 있었다. 엄마에게 미안해서 부엌에 나오지도 못하고 혼자서 방 안에서 라면을 먹었을 장면을 떠올리니, 턱하고 숨이 막히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날 밤부터 김씨는 새벽에 아들을 위해 정성껏 밥을 해줬다. 졸린 눈을 비비고 기다렸다가 새벽 3시에 ‘저녁 7시 같은 만찬’을 한 달쯤 차렸을 무렵, 아들은 그제야 슬슬 속마음을 터놓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들이 제게 그동안 힘들었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를 말해줬어요. 미안해서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김미경 아들이 자퇴했다고 하면 엄마가 너무 창피할 거 같아서’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창피할까 봐 죽을 만치 힘든데도 참고 참았다니, 너무 짠하고 딱했어요. 그래서 말해줬죠. 엄마는 주변 엄마들을 몰라서 너 자퇴한 거 어디다 얘기할 데가 없다고. 그러니 엄마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언제든 표현하라고 말이죠.”

    그 이후 김씨는 둘째 아들은 물론이고 첫째와 막내 교육의 중심에 자존감을 뒀다. 자존감이란 한마디로,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야’를 느끼는 감정.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건 자신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 가장 좋은 교육법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사소한 일에도 충분히 공감해줬고, 조금이라도 기쁜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도 크게 웃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를 자퇴한 아들이 제 손으로 고졸 검정고시에 붙었을 때 김씨는 온 집안을 뛰어다니며 개다리춤을 췄다. 그러기를 5분이 지나자 아들은 민망해하며 얼굴이 벌게져 그만 하라고 말렸지만, 아이의 얼굴에서는 자부심으로 꽉 차오르는 표정이 묻어 있었다. 또한 “네가 훌륭한 뮤지션이 안 될 거면 자퇴라는 일이 왜 생겼겠니? 대개 불행은 인생의 터닝포인트 역할을 하려고 오는 거거든. 넌 정말 잘될 거야”라고 말하며 아이의 기운을 북돋워 줬다.

    또 다른 아이들은 물론, 형제ㆍ자매간 비교도 절대 하지 않았다. 비교만큼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아이는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타고난다고 믿는다”며 “공부를 잘하는 것은 수많은 재능 중 한 가지 일 뿐”이라고 말했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양분은 부모만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낳아준 사람, 어릴 때는 세상의 전부와 다를 바 없는 부모에게서 인정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한 상처는 삶 자체를 무기력하게 만들죠. 자신을 지키는 힘이 없으니, 사소한 일에도 흔들리고, 하고 싶은 게 생겨도 도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 / 임영근 사진기자
    ▲ / 임영근 사진기자
    ◇아이의 자존감 텃밭이 돼라.
    김씨는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스스로 자존감도 높이려 애썼다. 엄마 스스로 자존감이란 텃밭이 두터워야 아이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그것을 이양해줄 수 있다고 믿어서다. 그는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무언가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며 “엄마가 자존감의 양분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렸다면 결코 자녀에게 그것을 나눠 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스스로 행복해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도전을 이어갔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였다.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일을 했고, 틈틈이 취미삼아 옷을 만들었다. 새벽에는 영어공부를 했고, 자투리 시간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지난 1월에는 밀라노로 한 달간 유학도 다녀왔다. 그는 “엄마의 역할 중 하나는 도전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아이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것”이라며 “인터넷 카페에 물어봐서 얻은 정보가 아닌, 오직 사랑하는 누군가의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을 아이들에게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지난한 몇 년간의 시간이 흐르자 아들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김씨는 “어느 날 아들이 제게 ‘엄마처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믿어주니까 나는 정말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라는 말을 했다”며 “저도 아들 덕분에 진짜 엄마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최근 김씨는 자신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거나 겪을 엄마들을 위해 ‘엄마의 자존감 공부’(21세기북스) 책을 펴냈다. 책을 쓰는 내내 강연장에서 만난 자녀교육 때문에 힘들어하는 30ㆍ40대 젊은 엄마들을 떠올렸다고. 그는 “아이를 정보에 의지해 키우는 젊은 엄마들을 자주 보는데, 아이는 부모의 철학으로 키우는 것”이라며 “아이를 정보에 의지해 키우면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만 강요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저는 만 명의 엄마가 있으면 만 명의 모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게 정답이라고 여기며 그걸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자신과 가장 어울리는 엄마의 모습, 오래도록 행복하게 유지할 수 있는 그런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모성입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아이가 있어야 함은 잊어서는 안 됩니다.”
  • / 임영근 사진기자
    ▲ / 임영근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