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몰락’거리며 스트레스 날려”… ‘슬라임’으로 힐링하는 대학생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11.08 16:00
  • 최근 슬라임을 만들거나 만지는 영상만을 올리는 SNS 계정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SNS 캡처
    ▲ 최근 슬라임을 만들거나 만지는 영상만을 올리는 SNS 계정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SNS 캡처
    # 대학교 4학년생 유진영(가명·24)씨는 최근 쫀득쫀득하고 말랑한 촉감이 특징인 ‘슬라임(Slime·끈적끈적한 점액질 형태의 장난감)’의 매력에 푹 빠졌다. 부드럽고 탄력 있는 슬라임을 계속해 만지작거리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흘러 있다. 유씨는 “등하교 때나 자투리 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슬라임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 대학생 김영신(가명·21)씨는 요즘 잠들기 전 인스타그램 속 슬라임을 만지는 영상을 챙겨본다. 슬라임과 이를 주무르는 손만 등장하는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이지만, 손으로 누를 때 나는 특유의 소리가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는 것. 김씨는 “요즘엔 더 크게 뽀드득거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 구슬이나 스티로폼 등이 들어간 슬라임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고 했다.

    일명 ‘액체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초등학생들에게 화제가 됐던 슬라임이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고 있다. 슬라임은 고무 찰흙, 물풀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만든 장난감으로, 쫀득쫀득하고 말랑한 질감과 손이 가는 대로 형태가 자유롭게 변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격은 1000원부터 1만원대까지로 저렴한 편이다. 단순 손동작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이유로 학점 관리와 각종 스펙 쌓기 등으로 심적 여유가 없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재미와 더불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자주 찾고 있다. 마치 정교한 그림을 따라 원하는 색을 칠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어 인기를 끌었던 컬러링북이나 숫자 점잇기 등과 비슷하다.

    이들은 굳이 만지지 않고 가지고 노는 영상만 봐도 ‘힐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영상은 대개 대학생이 주로 이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최근 SNS를 통해 작고 정밀한 소리로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등의 저자극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슬라임을 직접 만지지 않더라도 영상을 통해 보고 듣는 것만으로 긴장을 완화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이런 영상을 보곤 ‘정말 폭신해 보인다’, ‘쫀득쫀득한 소리 듣고 있으면 스트레스 풀린다’, ‘음량을 꼭 키우고 보라’는 등의 추천 댓글이 이어지기도 한다. 취업준비생 고영진(가명·25)씨는 얼마 전 슬라임을 만들거나 만지는 영상만 올리는 SNS 계정을 팔로우했다. 그는 “색색의 슬라임들을 서로 섞거나 손가락으로 모양을 내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며 “자기소개서를 쓰다 막히거나 잠시 생각을 비우고 싶을 때면 이런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고 했다.

    나아가 직접 원하는 재료를 넣어 슬라임을 만드는 대학생들도 있다. 구슬, 반짝이 풀, 자른 빨대 등을 추가하면 다양한 소리와 촉감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 이런 재료는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만드는 법도 크게 어렵지 않다. 온라인 동영상 채널 유튜브에 ‘슬라임 만들기’를 검색하면 약 32만 개의 관련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엔 SNS와 블로그 등에서 쉽게 슬라임을 만들 수 있도록 재료를 패키지 형태로 판매하는 '슬라임 마켓'도 속속 생겨나는 추세다. 대학 2학년생 최민아(가명·20)씨는 “얼마 전엔 샴푸와 면도 크림 등을 섞어 생크림같이 폭신폭신한 질감의 일명 ‘구름 슬라임’을 만들었다”며 “재료를 넣고 섞기만 하면 돼 쉽게 만들 수 있고, 원하는 질감으로 만들어진 슬라임을 조몰락거리면 더욱 힐링이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최근 대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심화하면서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슬라임이 더욱 인기를 얻은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4월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의 ‘2017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느끼는 학교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중ㆍ고등학생보다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20~24세의 학교생활에 대한 스트레스 인지율은 57.7%로, 13~19세 50.5%보다 무려 7.2%p 높았다. 이상규 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마치 어린아이가 부드럽고 푹신한 촉감의 일명 ‘애착 인형’, ‘애착 이불’ 등을 만지며 편안함을 갖는 것처럼, 대학생들도 이 같은 이유로 슬라임을 만지며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는 듯하다”며 “그만큼 요즘 대학생들이 취업·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슬라임에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슬라임 제조에 쓰이는 붕사에 장기간 노출되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 실제로 지난 5월 미국에서 슬라임을 가지고 놀던 11살 어린이가 손가락에 3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또 액체 괴물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여러 재료에서 다량의 환경호르몬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