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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지원자 OOO입니다. 저는 임직원 여러분에게 무뚝뚝한 ‘원빈’보다는 푸근한 ‘강호동’이 되겠습니다.”
14일 서울 중구 A 학원의 ‘블라인드 면접, 이렇게 대비하라’ 주말 특강. 취업준비생 장동주(가명·26·남)씨는 살짝 긴장했지만, 진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날 강의에는 하반기 신입 공채를 준비하거나 이직을 준비하는 10여명이 참석했다.
하반기 공채 시즌이 한창인 가운데 ‘블라인드 채용’이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사기업까지 확산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학력과 출신지 등을 묻지 않는 채용 형태로 최근 취업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달라진 채용 과정에 대응하고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은 사설 학원의 문을 두드리고 독특한 스펙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업들이 블라인드 채용과 맞물려 점점 취준생들에게 이색적인 스펙, 경험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자기소개서의 단골 소재였던 동아리·봉사활동, 배낭여행 등은 이미 낡은 것이 돼 버렸다.
◇ “인상 좋으면 좋은 평가 받는다”…표정도 관리
16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취업 준비 학원가에 따르면 ‘블라인드 면접 대비’를 내세운 다양한 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특히, 뛰어난 언변부터 이른바 ‘표정 성형’까지 가르치는 취업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최근 ‘표정 성형’ 상담을 받으러 온 이중원(가명·29·남)씨는 “비슷한 능력의 경쟁자가 있다면 내가 면접관이라 해도 첫인상이 좋은 사람을 선택할 것 같다”며 “표정 성형은 곧 인상을 좋게 만드는 연습이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표정 관리 프로그램을 등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실제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사담당자가 면접에서 첫인상을 고려하는 비율은 86%로 “면접자의 외모가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짧은 시간 안에 다수의 면접자를 평가할 때 눈에 보이는 외모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울러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취업준비생 11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73.5%가 “면접을 위해 외모 또는 표정을 관리한다”고 답했다. 기업 인사담당자 대상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76.3%가 “면접 때 지원자의 인상 때문에 감점을 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표정 성형’은 곧 ‘취업 성형’으로 이어진다. 강남의 B 성형외과 상담실장은 “채용시즌이 다가오면 또렷한 인상을 위한 눈매교정이나 부드러운 이미지를 위한 입꼬리 성형 등 상담을 받으러 오는 취준생이 많아진다”며 “특히 시간과 비용 부담이 적은 사각턱 보톡스나 입술 필러 등 쁘띠성형 수요가 상당히 높다”고 설명했다.
◇ “서류 안보니까… 말만 잘하면 합격이겠네?”
블라인드 전형의 확산으로 대면 면접이 중요해지면서 이미지트레이닝, 스피치 학원으로도 취준생이 몰리고 있다. 면접관 질문에 빠르고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순발력과 말솜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인기가 높아진 건 면접학원이다. 일대일 지도가 두 시간에 36만원이나 할 만큼 고가이지만 인기가 높다. 학원가에는 공기업·공무원·기업체 대비용 면접 프로그램이 쏟아지고 있다. ▲발성 연습과 밝은 모습 보이기 ▲예상·돌발 질문 대처법 ▲출신학교 자연스레 내 비치기 법 등 프로그램 이름도 다양하다.
이미 해당 학원가에는 블라인드 채용에 대비한 면접 특강, 일대일 면접 컨설팅과 면접 패키지 할인 이벤트 등을 진행 중이며, 이를 찾는 취준생들로 성황을 이룬다. 강남 C 스피치학원 상담사는 “기존에는 주로 아나운서나 승무원을 준비하는 수강생이 많았지만, 블라인드 채용 때문인지 요즘은 일반기업 면접을 준비하는 취준생의 문의가 많다”며 “수요에 맞춰 대기업, 공기업 등 기업별로 면접 준비 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케팅 기업의 한 임원은 “말과 표정, 아이 콘택트까지 학원에서 가르친 대로 연기한다. 노련한 면접관이 아니면 연기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모보다는 역량 개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장기적인 직장활동에 있어 더 발전적이라고 조언한다. 이광수 인크루트 대표는 “직원 채용에 있어 비(非)역량적인 요소에 대한 평가가 경감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표면적인 자기 관리보다는 역량 개발에 좀 더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직장 생활에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 역시 “외모가 지원자를 뽑는 데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라며 “밝은 표정과 호감 가는 인상 정도면 충분하다. 외모보다는 직무능력 향상에 시간을 쏟는 것이 바람직 하다”고 말했다.
‘표정 성형’ 까지…블라인드 채용 열풍 속 ‘취업 시장’ 성황
- 외모와 언변으로 경쟁력 높이려는 취업준비생들
- 전문가 “장기적 직장 활동에는‘역량 개발’ 갖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