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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앵그리맘… 끓어넘친 감정이 아이를 망치고 있었죠"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2017.10.1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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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딛고 세 자녀 키우며 '감정' 공부한 이지혜씨
순탄치 않던 삶, 원망·火로 표출 … 엄마 노력 지켜보며 아이도 변화 시각장애인인 셋째, 음악인 꿈꿔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지난 2002년 겨울,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이지혜(49)씨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쏟아붓고 있었다. 생후 6개월도 안 된 막내아들이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그 순간, 참아왔던 화가 치밀어올랐다. 고사리 같은 아이 손이 허공을 헤매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 아이가 평생 엄마 얼굴 한 번 못보다니….’ 그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그렇게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참을 휘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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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 공부에 관심 없는 꼴찌, 시각장애아. 재능과 기질이 서로 다른 세 아이를 키우며 엄마의 감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감정코치 이지혜씨./양수열 기자
◇절망과 분노에 빠진 나날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십수 년도 절망의 나날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것도 많던 꽃다운 스물세 살 때, 부모 사업이 갑자기 부도가 났다. 연쇄부도가 종종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던 1990년대 초, 하루아침에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사업체 명의가 그의 어머니 이름으로 돼 있었기에 졸지에 경제사범으로 구속됐고, 아버지는 생사를 알 수 없는 도망자 신세가 됐다. 막 대학 합격증을 받은 여동생, 고3 수험생인 막냇동생을 대신해 그는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어머니 옥바라지까지 맡았다. 미술교육 전공을 살려 대출받은 1000만원으로 작은 학원을 차리고 하루 10시간 이상 수업하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결혼 후에도 행복은 쉬이 오지 않았다.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남편 대신 생활비를 모두 떠맡았다. 1년으로 예상했던 시험 준비 기간은 몇 년으로 늘었고, 시험도 취직도 마음대로 안 되자 다급해진 남편은 주식에 손을 댔다. 수많은 개미 투자자가 그러하듯 어렵게 모은 전셋돈을 다 날렸다. 돌도 안된 갓난아이와 함께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와 지하 월세 방으로 향했다. 이씨는 “누군가는 돈에 대한 문제가 삶에서 겪는 시련 중 가장 손쉬운 것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가장 풀기 어려운 과제였다”며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는 악순환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고 말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게 엄마의 심정. 그도 자식을 보며 힘을 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지치고 아팠지만, 엄마만 바라보는 아이들을 위해 매일 아침 이를 악물었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다행히 남편이 취직해 한시름 놨다 싶었다. 그간 두 아들을 남의 손에 맡겨 키웠기에 셋째만큼은 사랑을 듬뿍 주며 제 손으로 키워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셋째 아이는 세상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는 “장애아를 키우다 보니 그간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며 “아이가 태어나고 꼬박 3년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괴로웠다”고 회상했다.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으려 감정을 공부하다
순탄치 않았던 삶의 질곡 속에서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이 왜 없었을까.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더 나빠졌다.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씨는 그 과정 속에서 원망이나 미움, 절망, 포기 같은 부정적 감정을 털어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나쁜 감정들이 저를 자꾸 뒤로 끌어당겨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을 느낀 거죠. 어려운 삶 속에서 상처받은 제 마음도 치유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도 아이들은 그가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어느 날 둘째 아이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심한 욕설을 내뱉는 모습에 이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가 평소 화내는 모습을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던 것. 이씨는 “제가 화나고 억울한 건 아이들 때문이 아닌데, 그 감정의 피해가 아이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 부모로서 너무 부끄러웠다”고 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픈 셋째를 안고 수많은 심리학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분노조절, 감정조절, 인성교육, 언어순화 등 관련 자격증에도 차례로 도전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화가 난 이유를 곰곰이 따져봤다. “제가 화가 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어요. 먼저 주변 사람을 의식한 탓이었어요. 남과 저를 비교하면서 처지를 한탄했죠. 저 자신을 낮게 평가하며 주눅이 들고, 이게 화로 나타난 거예요. 또한 사실과 감정을 구분하지 못한 탓도 있었어요. 자존감이 낮다 보니 무슨 일이 생기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였죠. 이를 깨닫고 제 삶이 다른 사람과 다르더라도 ‘틀린’ 게 아니라고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오늘은 어제보다 1㎝ 더 성장한 엄마가 되겠다”
이씨는 화를 다스리는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었다. 예컨대 안 좋은 얘기를 들을 때면 그것에 집중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장미꽃을 주는 상상을 하는 식이다. 이씨는 “감정을 분산하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라며 “어디선가 꽃향기가 밀려오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화가 누그러진다”고 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내면을 들여다보며 상처와 분노를 치유하니 어느 순간 자아(自我)가 단단해졌다.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 현재 그는 자신처럼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을 상담해주며 인성 관련 전문 코치로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이기적 감정 정리법’(다른상상)이란 책도 펴냈다.

엄마의 노력을 옆에서 지켜본 아이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 표정에 점차 슬픔보다 기쁨, 분노보다 희망이 묻어났다. 첫째(21)는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덕분에 현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에서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셋째(15)는 비장애인과 똑같이 경쟁하며 예고 진학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말썽을 많이 부렸던 둘째(16)는 공부엔 소질이 없지만, 특성화고를 다니며 자신의 적성을 찾는 중이다. “제 목표는 어제보다 1㎝ 성장한 엄마가 되는 거예요. 그러려면 엄마가 자기감정을 잘 정리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노력하고 있죠.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끌어안고 있으면 아이들이 주는 벅찬 행복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감정을 정리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바라보세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부터 눈에 들어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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