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초등

가축 병날까 새벽에 눈 번쩍… "제 꿈은 대농이랍니다"

안성=장지훈 기자

2017.10.12 16:18

해당기사 크게보기 해당기사 작게보기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농사 경력 6년 차 '소년 농부' 한태웅 군]

올해 나이 열다섯. 한태웅(경기 안성 비룡중 2) 군의 일상은 또래와 조금 다르게 채워진다. 하루의 절반은 '학생'으로, 나머지 절반은 '농부'로 산다. 할아버지를 도와 논과 밭에서 2000평 농사를 짓고, 염소와 한우, 닭 등을 기른다. 경운기 운전에는 도가 텄고, 최신 트랙터의 모델명도 줄줄 꿴다. 농사 경력 6년 차. 주변 사람들은 태웅 군을 가리켜 '소년 농부'라 부른다.

기사 이미지
소년 농부’한태웅 군이 수확을 앞둔 황금 들판 앞에 서서 활짝 웃고 있다./안성=양수열 기자
지난 11일 오후 5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태웅 군을 만났다. 교복도 벗지 않고 농장 동물들의 먹이부터 챙겼다. "보통 하루에 두 번 먹이를 줘요. 학교 가기 전 새벽 5시 30분에 한 번, 학교 다녀와서 또 한 번. 밥 주면서 동물들의 상태를 살펴봐요. 설사한 놈은 없는지, 비실비실 아픈 놈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해요."

태웅 군이 키우는 동물은 한우 10마리, 염소 21마리, 닭 160여 마리다. 한우는 할아버지와 함께 돌보지만 염소와 닭은 태웅 군이 혼자 도맡아 기른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를 졸라 생일 선물로 받은 병아리 10마리가 시작이었다. "할아버지가 소를 키우는 게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닭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온종일 닭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정성을 쏟았어요. 그게 6년 만에 160마리로 불어났죠."

직접 키운 닭과 계란을 팔아 번 돈으로 2년 전부터는 염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 염소를 키울 때 소화불량 때문에 염소가 많이 죽었어요. 너무 속상해서 엉엉 울었죠. 그때부터 더 열심히 정보를 모았어요. 염소 키우는 사람들이 만든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어떤 사료를 먹이면 좋은지, 아플 때는 어떤 약을 먹이면 좋은지 찾아보고 질문도 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태웅 군은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일군 닭장과 염소 우리에 '태웅 농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농장은 아니지만 마을 어른들은 태웅 군을 어엿한 농장 대표로 인정해준다. 할아버지 한영운(72)씨는 "동네 사람들이 태웅이를 '한 대표'라 부른다"며 웃었다. "태웅이같이 어린애가 농사짓고 가축을 키운다고 열심히 하니 기특해서 하는 소리겠죠."

기사 이미지
태웅 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트랙터를 운전했다.
태웅 군의 가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지, 누나, 이렇게 6식구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태웅 군을 키웠다. 농사짓는 할아버지를 도와 조금씩 흉내만 내던 태웅 군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루는 학교 갔다 왔는데 할아버지께서 못자리를 심고 나오시더라고요. 그런데 여기저기 빈 곳이 보이는 거예요. 할아버지 몰래 논에 들어가서 그걸 다 메우고 나왔어요. 빽빽하게 들어찬 걸 보니까 엄청 뿌듯하더라고요. 기분 최고였죠."

재미를 붙인 태웅 군은 이때부터 농사의 ABC를 차근차근 배워 나갔다. 들깨와 고추 등 밭작물의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법, 논농사 짓는 법, 소에게 여물을 주는 법 등을 하나씩 익혔다. 할아버지는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힘든 농사일을 왜 하려 드느냐"며 야단치면서도 눈을 빛내며 부탁하는 태웅 군에게 넘어갔다. 열한살 태웅 군이 말도 없이 혼자서 들깨밭 300평을 쟁기로 갈아놓은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든든한 지지자가 됐다.

기사 이미지
태어난 지 3개월 된 새끼 염소를 품에 안은 한태웅 군.
태웅 군은 할아버지뿐 아니라 마을에 사는 '농사 선배'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조부모뻘 되는 동네 어르신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직접 기른 닭이나 계란을 선물하기도 한다. "학교 친구들과는 농사 이야기를 할 수 없잖아요. 어르신들과는 농사에 대한 고민이나 꿈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종종 떡볶이나 순대를 사 와서 경로당 어르신들께 드리기도 해요. 제가 트로트를 잘 부르거든요.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이나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불러 드리면 정말 좋아하시죠(웃음)."

태웅 군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농(大農)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한우 1만마리, 염소 600마리를 키우고 논농사는 3만평 정도 짓는 게 목표다. 계획도 제법 구체적이다. "고등학교는 공고를 진학할 예정이에요. 농기구나 축사 수리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전기나 용접 기술을 배울 거예요. 대학은 농대로 가서 농사에 대해 더 체계적으로 공부할 거예요. 2021년, 만 18세가 되는 해에 '영농 후계자'로 선발되고 싶습니다."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목록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