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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이후 이런 얘기는 사라지는 분위기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사이에선 이웃도 믿지 못하는 ‘불신’이 팽배해졌고, ‘소년법 개정’까지 거론되고 있다. 살인범과 공범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무기징역 등 구형이 내려졌음에도, 이에 대한 사회적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 학부모, ‘등·하교 도우미’ 구하는 등 사회적 불신 짙어
최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일명 ‘등·하굣길 도우미 구하기’가 열풍이다. 자녀의 안전을 위해 등하교 시간에 맞춰 안전하게 학교에 집으로, 집에서 학교로 동반할 사람을 구한다는 것. 실제로 온라인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등·하굣길 이모님 구합니다’, ‘등·하교 돌보미 이모님 신원 확인 어떻게 하시나요?’ 등 게시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맞벌이 가정이 늘면서 이런 현상이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학부모들은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영향이 컸다고 입을 모은다. 초등생 자녀를 둔 강누리(가명·경기 광명)씨는 “학교가 집에서부터 건널목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거리지만, 워낙 흉흉한 세상에 살다 보니 등하교 도우미 없이 혼자 보내기 불안하다”며 “될 수 있으면 학교·학원 등에 갖고 다니지 못하게 하던 휴대전화도 요즘엔 위치추적을 위해 꼭 들고 다니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워킹맘 고진희(가명·서울 영등포구)씨도 “아이가 밝고 스스럼없는 성격인데다 외동이다 보니, 언니·오빠를 유독 좋아하고 따라서 걱정”이라며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고 따뜻하게 대하라고 가르쳐야 할 시기에, 낯선 사람은 무조건 피하고 곧장 엄마한테 전화하라고 말해야 하는 세상이 정말 암울하다”고 토로했다.
이웃 간의 불신도 깊어지고 있다. 작은 호의에도 혹시 우리 아이를 해치진 않을지 경계와 의심부터 든다는 것. 특히 사건 범인이 10대 청소년으로 밝혀지면서, 그 누구도 믿기 어려운 불신과 불안이 더욱 심화됐다. 초등 2학년 딸을 둔 이유리(가명·서울 은평구)씨는 요즘 아이에게 ‘웬만해선 엘리베이터는 혼자 타라’고 말하곤 한다.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에서도 범인이 피해 아동을 유인해 승강기를 타고 자신의 거주지로 향했고, 지난달 한 중학생이 승강기에서 길이 20cm 넘는 칼로 초등생을 위협하는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계속해 발생했기 때문. “예전엔 낯선 아저씨가 보이면 기다렸다가 다음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했는데, 요즘엔 ‘웬만하면 혼자 타라’고 일러줬어요. 같은 아파트 사는 이웃이라고 해서 믿어도 된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 ‘소년법 개정’ 요구 빗발쳐
어제(29일) 열린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결심 공판에서 주범 김모(17)양에게 징역 20년, 공범 박모(18)양에게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했다. 두 피고인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도 요구했다. 소년법상 만 18세 미만이면 사형·무기징역의 죄를 저질러도 최고 15년의 유기징역을 선고하게 돼 있지만, 소년법 대상인 김양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최고형인 20년이 구형된 것. 김양은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혐의를 받고 있다. 일각에선 사형을 구형해도 마땅한 이 사건이 미성년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감형됐다며 ‘소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후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악용한 미성년자가 늘 수 있다는 것. 한 누리꾼은 “19세 미만의 소년이라는 이유로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되느냐”며 “가벼운 형량 속에 묻혀버리는 피해자의 인권도 생각해달라”고 강조했다.
소년법을 적용하는 ‘연령 기준’을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최근 벌어진 일련의 소년 범죄에 대해 가해자들이 약한 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법관의 잘못이 아니라 소년법 때문”이라며 “점점 흉포화되는 청소년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소년법상 보호대상인 소년의 연령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소년 범죄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강력범죄 등을 저지르고 검거된 ‘촉법소년’은 4만3900여명에 달했다.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지른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 형사 미성년자로서,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형사책임능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해 형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는다. 특히 살인, 강도, 성폭력, 방화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의 경우 2011년 363명에서 2012년 432명, 2013년 413명, 2014년 479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 학부모들 “정부 차원 구체적인 대책안 마련해야”
일부 학부모들은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인천 연수구의 한 학부모는 “사건 이후 경찰과 인천시교육청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경찰청에서 제작한 ‘초등학생을 위한 범죄예방교실’ 동영상을 통해 예방 교육을 했지만, 이런 동영상만으론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며 “무늬만 교육이 아니라, 아이에게 직접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하는 체험교육 등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민·지자체·국가가 함께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조은경 한림대 법심리학연구소장은 “아이들이 생활하기 안전한 마을이 만들어지도록 주민·지자체·국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사회안전망을 더욱 촘촘하게 만들어 모든 아이가 건강한 마음과 정신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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