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개편·교육과정 개정에도 내신은 ‘현행’대로… 고교 내신 경쟁 불붙나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8.17 10:59
  • “학교는 ‘내신 전쟁터’고, 친구들은 ‘적’이 됐어요.”

    내년 고교 1학년생이 치를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에 최소 4과목 이상 절대평가가 도입될 가운데, 앞으로 고교 현장 내 내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교육부가 수능 개편에도 학교수업과 학생부종합전형과 직결되는 내신 평가를 현행 상대평가 방식으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 이에 대해 교육계에서는 “수능과 내신의 상호 균형이 깨져 학생들의 내신 부담이 심화되는 등 학교 현장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육과정·내신·수능 따로 노는 ‘엇박자’… 학생·학부모·교사 ‘한숨’

    교육부는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시안 발표에서 수험생 간 지나친 경쟁을 완화하고 학습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절대평가 과목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밝혔다. 4과목 절대평가(1안)와 전과목 절대평가(2안) 등 2개 안을 제시하며 권역별 공청회에서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말까지 최종안을 발표·확정키로 한 것. 아울러 기존에 발표한 내신 절대평가제(성취평가제) 도입은 당분간 보류하겠다는 입장도 내놨다. 박춘란 교육부 차관은 “내년에 입학하는 고1 학생들은 일단 (학생부에 석차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눠 성적 기재하는) 현행대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그 이후 내신 평가 방법에 대해선 고교학점제 도입과 연계해 올해 안에 발표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당장 내년에 고교에 입학하는 중3 학생과 이를 자녀를 둔 학부모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서울지역 한 중학교 3학년 이모(15)양은 “고등학생 언니·오빠들 얘기를 들어보면 지금도 친구들 간 내신 경쟁이 치열하다는데, 우리는 수능까지 절대평가로 바뀌니 변별력 확보를 위해 매학기 시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지난달 전북의 한 여고에선 고3 수험생 4명이 기말고사를 앞두고 시험지를 훔친 사실이 밝혀져 학년 전체가 일부 과목을 대상으로 재시험을 치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특히 시험지를 훔친 학생들은 평상시에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모범생들로, 올해 대입에서 수시가 중요해진 만큼 내신성적을 잘 관리하기 위해 시험지를 훔쳤다고 진술해 충격을 더했다.

    학부모들도 이 같은 교육부의 입장에 뜨거운 반응이다. 이들이 자주 활동하는 온라인 지역맘 커뮤니티에서는 이에 대한 게시글이 쏟아지고 있다. 경기도 고양에 사는 한 학부모는 “교육부가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 같은 정책을 시행한다고 하는데, 수능 변별력이 약화되면 당연히 상대평가인 내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거란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느냐”며 비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교육정책이 학부모나 학생 등 교육 수요자의 눈높이가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는 시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수능 개편 시안 공청회에서도 내신 절대평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지난 11일 서울에서 열린 첫 공청회에 참석한 학부모들은 “교육과정과 내신 평가, 수능 평가가 모두 따로 노는데, 당장 내년 고1이 되는 우리 아이들이 ‘무한 내신 경쟁’의 최대 희생양이 되는 건 불 보듯 뻔하다”며 토로했다. 16일 광주에서 열린 2차 공청회에서도 토론 패널로 나선 신병춘 전남대 수학과 교수가 “수능뿐 아니라 내신에도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선 교사들도 이 같은 교육부의 입장을 '개악(改惡)'이라고 평했다. 서울 지역 한 고교 교사는 “당장 내년부터 고교의 문·이과 구분을 없애고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듣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되는데, 현행 상대평가 방식으로 토론식 수업이나 과정 중심 평가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새 교육과정 취지 달성과 고교 교육 정상화를 내세워 수능을 절대평가화하면서, 정작 내신은 상대평가로 가는 건 대단히 모순적인 정책”이라며 꼬집었다.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도 15일 "현재의 내신 9등급제를 지속하면 학생들의 과도한 시험 부담과 경쟁으로 과정 중심 교육을 어렵게 하고 고교학점제 등 새 정부 교육정책의 성패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조속히 고교 내신 절대평가제와 고교학점제를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입시전문가 “내신 절대평가 전환하되, 부작용 보완할 대책도 마련해야”

    입시전문가들은 내신을 현행대로 평가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내신 절대평가제도 성급히 결정해선 안 될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섣부른 도입은 오히려 특목·자사고와 서울 강남 등 교육지역 학교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교육부가 제시한 2개 안 가운데 어떤 방향으로 정해지더라도 수능 절대평가가 확대되고 내신까지 절대평가화 되면, 상대적으로 교육여건이 좋은 자사고나 강남 일반고 등 우수 학교로 쏠림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아울러 ‘성적 부풀리기’나 변별력 확보를 위한 ‘대학별고사 부활’ 등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것”고 분석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부작용에도 학생들 숨통을 틔워주는 차원에서 내신 절대평가제는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치우 비상교육 입시평가실장은 “어찌 됐던 학생들이 수시모집이 늘고 학생부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신에 대한 부담을 가중된 건 기정사실”이라며 “교육부가 수능 절대평가 확대를 내세우는 상황에서 내신도 상호 균형에 의해 절대평가로 가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아울러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는 대안이 함께 제시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우 연구원은 “지금처럼 단순히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툭 던지듯 내신 절대평가제를 도입하기보단, 이를 통해 나올 수 있는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과 함께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