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텍대학, 학생 감시하는 ‘생활지침’ 40년째 버젓이 운영…파문 확산
최성욱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8.15 12:52

-소지품부터 휴대폰 통화까지 ‘일거수일투족’ 교수에게 감시 지시
-학교 측 “학생 벌주려는 목적 아닌, 학생 안전 위해 만들어진 규정”

  • 한국폴리텍대학이 1970~80년대에나 있었을 법한 '학생생활지도지침'을 40년간 유지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 한국폴리텍대학이 1970~80년대에나 있었을 법한 '학생생활지도지침'을 40년간 유지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직업전문기능대학(2~3년제)인 한국폴리텍대학이 학생들의 용돈 사용처부터 소지품과 두발 상태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지침을 운영하고 있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학생 요람에도 버젓이 실려 있는 ‘학생생활지도지침’(이하 생활지침)으로, 1970~80년대 교정시설에서나 있었을 법한 감시조항들이 별다른 제재 없이 40년가량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8개 대학 35개 캠퍼스를 담당하는 ‘학교법인 한국폴리텍대학’ 측은, 이 지침에 대해 “사문화된 문건”이라는 해명을 내놨지만, 최근 인천의 한 캠퍼스에서 생활지침을 근거로 학생을 제적(퇴학 조치)키로 해 전국 폴리텍대학 캠퍼스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낯선 친구들이 (기숙사나 캠퍼스에) 찾아오거나, 외부소식(유무선 전화나 편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걸려온 휴대폰 통화 시 타인의 접근을 꺼린다.’ ‘학생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소지품을 가지고 다닌다.’ ‘복장과 소지품 등에 대해서 특이한 관심을 나타낸다” “용돈의 출처와 용처가 분명하지 않고, 낭비가 심해진다.’(한국폴리텍Ⅱ대 남인천캠퍼스, 학생생활지도지침 제13조 문제학생의 관찰)

    남인천캠퍼스가 ‘2017학년도 학생요람’에 탑재한 이 지침(2017년 7월 14일 개정)은 ▲학생 신상관리카드 ▲관심대상자 ▲문제학생 관찰 ▲교육훈련 기강 ▲예절지도 ▲두발 및 용모 ▲언어사용 등 학생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특히 생활지침을 위반한 학생을 대상으로 열흘간 ‘특별교육’(제39조 징계)을 실시하는데, 해당 학생들은 ‘매일 1회 이상의 반성문’과 ‘특별교육 체험기’를 학생처에 제출해야 한다.

    이 밖에도 ‘현란한 유색염료 착색 등으로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도록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거나 ‘여학생은 손톱화장 등의 색조화장을 지양한다’(이상 제23조 두발 및 용모)’, ‘학생들의 차량을 이용한 교내 출입은 원칙적으로 금한다’(제37조 기타 준수사항), ‘근신 이상의 징계를 받거나 성적이 부진한 학생에게는 외출과 조퇴를 제한할 수 있다’(제29조 외출, 조퇴의 신청) 등 학생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정도 다수 발견된다.

    이에 대해 이익환 한국폴리텍Ⅱ대학 남인천캠퍼스 교학처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계를 다루는 학과가 많다 보니, 학생들의 ‘안전’을 기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진 규정”이라며 “학생에게 벌을 주려는 목적이 아니고, 사고 예방 차원에서 교수들이 참고자료로 활용하란 의미에서 (해당 지침을) 유지해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위험한 실습장비를 다루는 폴리텍대학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교수와 교직원들에게 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토록 한 지침은 논란을 비켜가기 어려워 보인다. 이 생활지침에는 ‘수업 중 강의실이 아닌 교정과 후미진 장소 등을 배회하거나, 교외 유기장을 배회함으로써 본교 학생들의 품위를 격하시키고, 이로 인해 전체 학생들의 교육기강이 해이해질 수 있는바, 지도교수와 해당 학과장 및 교직원은 이들의 일탈행위를 바로잡아, 엄격한 교육기강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제15조 교육훈련 기강확립)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에 대해서도 이 처장은 “우리 학교는 16세부터 60세 이상의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이 기술을 배우다 보니 교육적 측면에서 필요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폴리텍대는 1977년 제정된 ‘기능대학법’에 따라 직업전문학교로 운영해오다 2006년 기능대학과 통폐합해 현재의 폴리텍대학으로 출범했다. 2006년 ‘학교법인 한국폴리텍(Korea Polytechnics)’으로 법인을 바꾸면서 미진학 청소년, 실직자 등을 대상으로 한 기능인력 양성뿐 아니라 일반인과 고학력자를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재교육과정까지 외연을 넓히고 있다.

    실제로 이 학교는 “지도교수는 오리엔테이션 기간 중 학생관리카드 및 상담에 관련한 사항 등을 본인에게 직접 작성하게 하며, 신상을 철저히 파악하여 관리해야 한다”(제8조 신상파악 및 상담)라는 지침을 통해 신입생 때부터 학생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학교 측은 학생관리카드를 일종의 ‘상담자료’로 수집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이 지침으로 학생에게 제재를 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마디로 사실상 사문화된 문건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취재결과 이는 사실과 달랐다. 본지가 입수한 우 아무개 전 총학생회장에 대한 ‘징계심의요구에 따른 학사소위원회 출석 요구서’에는 총 4가지의 생활지침 위반사례가 근거로 제시돼 있었다. 우 전 총학생회장은 최근 학생회 임원들로부터 독단적 의사결정 등을 이유로 ‘탄핵’을 당했다. 이에 학교 측은 우 전 총학생회장에 대해 ▲학생회 의결과정 무시 ▲교수에게 불손한 언행 ▲학교 측과 갈등을 외부(법인과 지역언론)에 알렸다는 등 해교(害校)행위를 지적하며 ‘제적’할 방침을 세웠다. 당사자인 우 전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 집행부 구성 등 운영 전반에 관한 규정을 ‘학생회칙’이 아닌 ‘학생생활지도지침’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대학본부가 학생총회와 학생회칙 제정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면서 생긴 갈등”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학교 측은 오는 16일 예정된 징계위 출석 통보를 전화나 문자가 아닌 ‘내용증명’으로 보내기도 했다. 이 처장은 “소명기회를 주려는 조치다. 방학 중이라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을뿐더러, 전화보단 내용증명이 더 정확히 통보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 폴리텍대 남인천캠퍼스 교수들이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학생 신상관리카드. / 학교법인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 폴리텍대 남인천캠퍼스 교수들이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학생 신상관리카드. / 학교법인 한국폴리텍대학 제공

    남인천캠퍼스를 담당하는 학교법인 한국폴리텍대학과 이 법인의 상급기관인 고용노동부는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는 ‘생활지침’이 일부 캠퍼스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문화된 문건일 것”이라는 추측만 내놨다. 문건의 존재 여부조차 “몰랐다”는 입장이다.

    남인천캠퍼스의 생활지침은 2003년 7월부터 지난달 7월까지 총 8번 개정됐지만, 해당 교육기관을 관리·감독해야 할 두 기관은 생활지침이 ‘기관장(캠퍼스 학장)의 고유 권한’이라는 이유로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한 폴리텍대학 담당자는 “주요한 규정 개정은 법인 이사회를 통해 결정하고, 고용노동부에서 승인한다”면서도 “캠퍼스가 자체적으로 만든 학칙이나 세부 지침은 고용노동부의 승인 사항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 담당자는 “일부 캠퍼스에서 운영하는 ‘생활지침’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것을 확인했고, 현실과 맞지 않는 조항들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개정 혹은 폐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기관은 개별 캠퍼스에서 이 같은 생활지침이 존재하는 한, 학교 측이 ‘선택적’으로 적용할 경우 학생의 자율성과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폴리텍대가 단순 기능인 양성소에서 고등교육에 버금가는 ‘교육기관’으로 변모하는 최근의 위상을 고려해 대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인의 한 학칙 담당자는 “1970~80년대 직업훈련원(폴리텍대학의 전신) 시절에 군 출신 기관장들이 부임하면서 당시 ‘군대문화’가 상당 부분 학칙에 반영된 건 사실”이라며 “해당 캠퍼스에 지침을 폐기하라고 요구했고, 추후 법인은 캠퍼스의 학장 재임용 심사에서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두 기관은 지난 10일 본지의 요청에 따라 전국 8개 폴리텍대학 35개 캠퍼스를 대상으로 생활지침 내 인권침해 조항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법인의 한 관계자는 “전국 캠퍼스의 생활지침을 수집해 분석하고 있으며 조만간 사후대책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