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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Plus+] 지옥섬 '군함도'

오누리 기자
자료 제공=아시아태평양전쟁희생자한국유족회

2017.08.0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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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때 끌려간 조선인들… 막장서 하루 16시간 노동

"600여 명이 강제징용 당했고 123명이 죽었다. 군함도는 지옥섬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동영상 '군함도의 진실'을 보면 이런 문구가 등장합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제작한 이 영상은 일본 나가사키현의 '군함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이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 '군함도'는 개봉 3주 만에 관객 수 6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군함도, 그곳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군함을 닮은 탄광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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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의 모습.
군함도의 원래 이름은 '하시마(端島)'입니다. 하시마는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8㎞ 떨어진 곳에 있어요. 섬 모양이 일본의 해상 군함을 닮았다고 해 '군함도'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이 섬을 '군칸지마(군함도)'라고 부릅니다.

군함도는 본래 남북 320m, 동서 120m 정도에 불과한 아주 작은 무인도였어요. 그러던 1850년 이곳에 엄청난 양의 석탄이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어요.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은 탄광을 개발해 돈을 벌 목적으로 군함도를 사들였습니다. 미쓰비시사는 1897년부터 1931년에 여섯 차례에 걸쳐 섬을 확장시키는 매립 공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남북 480m, 동서 160m로 섬이 커졌어요. 섬 안에는 석탄 산업 시설과 노동자의 주거지 등 70여 개의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섰습니다. 작은 무인도가 오로지 석탄 채굴만을 위한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죠.

지하 1000m 갱도에 갇힌 조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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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에 끌려간 조선인이 석탄을 캐고 있다(영화 ‘군함도’의 한 장면).
조선인이 처음 군함도에 발을 디딘 건 일제강점기인 192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제가 조선인의 지원을 받아 군함도에서 일을 하게 하는 형태였다고 해요. 하지만 1937년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강제징용'이 시작됐어요. 일제는 전쟁에 사용할 석탄을 캐기 위해 조선인을 강제로 군함도로 끌고갔어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는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군함도에 강제징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동원된 사람은 주로 조선인 남자들이었지만, 여성은 물론 어린이들도 군함도에 끌려갔다는 증언이 전해집니다.

군함도의 조선인들은 하루 12~16시간의 고된 노동에 시달렸어요. 이들의 작업 공간은 지하 1000m의 갱도였어요. 갱도 높이가 50~60㎝에 불과해 서서 작업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고, 누운 자세로 석탄을 캤다고 해요. 작업장 내부 온도는 45도에 달해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사람은 정해진 양을 모두 캘 때까지 갱도에서 나오지 못했어요.

탈출은 꿈도 못 꾼 채 죽음 맞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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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모습.
강제징용 당시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한 달에 50~70엔(약 500~700원)의 월급을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어요. 식비, 주거비는 물론 석탄 채굴에 사용하는 도구 구입비까지 모두 월급에서 공제했고, 조선인은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어요.

수많은 조선인이 군함도에서 목숨을 잃었어요. 석탄가루를 너무 많이 들이마신 탓에 폐병에 걸려서 죽음을 맞기도 했고, 작업 과정에서 갱도가 무너져 깔려 죽기도 했어요. 감독관에게 맞아 죽는 경우도 많았어요. 일본 감독관들은 조선인들이 조금만 쉬려고 해도 폭력을 휘둘렀어요.

조선인 중 일부는 지옥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했어요. 그러나 대부분은 탈출에 실패했어요. 10m에 달하는 콘크리트 절벽이 군함도 외곽을 감싸고 있어 빠져나갈 수가 없는 구조였지요. 가까스로 섬을 벗어난 사람은 바다에 빠져 죽었어요. 도망치다 붙잡히면 사살되거나 죽기 직전까지 매를 맞았지요. 군함도의 조선인들은 탈출을 포기한 채 고국에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1984년 일본의 한 시민 단체가 찾아낸 자료에 따르면, 1925년부터 1945년까지 군함도에서 사망한 조선인은 123명이라고 해요. 그러나 일본이 은폐한 사실이 많아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반성 없는 일본… 군함도를 관광지로 개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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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군함도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자, 군함도로 끌려간 사람들도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오랜 기간 고된 노역에 시달린 탓에 대부분 몸이 성치 않았어요. 석탄가루가 눈에 들어와 앞을 못 보게 된 사람도 있었고, 갱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도 있었어요.

세월이 흘러 일본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숨긴 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군함도의 등재를 신청했어요. 그리고 2015년 7월 군함도를 비롯해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 다카시마탄광, 야하타제철소 등 7개 시설이 '일본의 근대화 유산'이라는 타이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어요. 모두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약 5만8000명이 강제 노동에 시달렸던 곳이죠.

일본은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군함도 안내판에 조선인 강제징용을 알리는 내용 표기를 비롯해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센터를 세우겠다고 약속했어요, 하지만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오히려 군함도 마스코트까지 만들면서 이곳을 '관광지'로 홍보하고 있죠. 일본은 언제쯤 반성하고 약속을 지키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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