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 입시

수학·과학 편식한 과학고 출신들 "영어강의 두려워요"

김연주 기자

2017.07.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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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국어 입시비중 적어 소홀… 대학와서 영어 부족해 휴학도]

과학高 수업도 수학·과학 위주… 중학교 영어 수준으로 대학 진학

과학계 "논문 쓸땐 논리 중요해… 국어·영어 못하면 성공 힘들어"
카이스트, 영어면접 도입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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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대에 입학한 남모(25)씨는 "영어 강의를 듣는 게 두렵다"고 했다. 그는 "서울대 학생들이 다 듣는 교양 영어는 텝스(TEPS) 시험 성적에 따라 '고급, 대학, 기초'로 나뉘는데, 나는 기초반에 편성됐고, 기초반에 갔더니 과학고 동기가 많더라"며 "중학교 영어 실력 그대로 대학에 왔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남씨처럼 대학에 입학한 과학고·영재고 출신 가운데 영어 실력이 부족해 힘들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학고와 포스텍(POSTECH)을 졸업한 강모(27)씨는 "과학고 다닐 땐 몰랐는데, 대학에선 영어 원서로 공부하기 때문에 영어가 진짜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영어가 부족해 휴학하는 (고교) 동기들도 많이 보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과학고·영재고 출신들이 영어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과학고·영재고 입시와 대학 입시에서 수학·과학 내신 성적을 가장 중시하기 때문이다. 과학고·영재고 입시 학원 운영자 김모씨는 "영재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초등학교 3학년 이후부터는 수학·과학 선행 학습과 올림피아드 준비에 매달리느라 영어나 국어 등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며 "어떻게 보면 초등학교 이후로 매우 심한 공부 편식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고·영재고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과학 특성화고라는 설립 취지에 따라 수학·과학 수업을 다른 과목보다 월등히 많이 편성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A과학고는 3년간 수학 36단위(1단위는 주당 1시간 수업), 과학 74단위를 편성한 데 비해, 국어·영어는 15단위씩 편성했다. 통상 일반고는 자연 계열 학생들이 수학·과학 수업을 많이 듣긴 하지만, 과학고만큼 차이가 크진 않다. 일부 대학은 이공계 학생들의 부족한 영어 실력을 보완하기 위해 입학 후 수준별 영어 수업을 실시하기도 한다. 카이스트는 신입생 대상으로 영어 시험을 치러 추가 수업이 필요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4주간 영어 수업을 한다.

과학계 전문가들은 "대학 입시에서는 수학·과학이 중요할지 몰라도 사회에 나가면 영어도 많이 쓰이고 중요하다"고 말한다. 과학고·영재고 출신들이 대학 졸업 후 학회에서 영어로 발표하거나, 외국 저널을 읽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영찬 디지스트(DGIST) 교학부총장은 "어느 노벨상 수상자가 '똑같은 주제로 연구해 같은 결과가 나와도, 논리적으로 잘 표현한 사람이 노벨상을 탄다'고 했다"며 "결국 교수나 연구원 모두 말하기나 쓰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인데, 이를 위해선 수학·과학만 공부하지 말고 어린 시절부터 인문학적 소양도 같이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섭 카이스트 전 입학처장(기계공학과 교수)은 "결국 연구자로 논문을 쓰더라도 논리를 세우고 조리 있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과학고·영재고 학생들도 국어나 영어 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카이스트(KAIST)는 올해 고3들이 치르는 2018학년도 수시 일반 전형에 '영어 면접'을 도입하기로 했다. 카이스트는 전체 강의의 85%를 영어로 진행하는데, 학생 다수가 과학고·영재고 출신인 터라, 기초 영어 실력이 부족해 대학에 와서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이승섭 전 입학처장은 "고입, 대입에만 맞춰 수학·과학에 편중된 공부를 하고 있는 과학고·영재고 학생들이 학교 영어 수업이라도 제대로 들었으면 하는 취지에서 영어 면접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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