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초등

[THE 인터뷰] 지선호 장학관

청주=오누리 기자

2017.07.1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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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제자 등 1000명의 얼굴 그려… 희망 선물하는 감초 선생님

제자들의 웃는 얼굴을 화폭에 담아 선물하는 선생님이 있다. 지선호(56) 충북도교육청 중등장학관 이야기다. 그는 청주 가경중학교에 재직 중이던 지난 2015년부터 제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왔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 체육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돌아온 학생,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한 학생…. 무려 1000여 명의 얼굴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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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호 장학관이 자화상을 들고 환하게 웃어보이고 있다. /청주=양수열 기자
◇방황하는 제자에게 초상화 선물

"저는 학생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담아 그림을 그립니다. 미술을 한 번도 배운 적 없지만 나름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유죠."

지난 6일 만난 지선호 장학관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처음 학생들을 그리게 된 건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본격 운영되기 시작한 지난 2015년 7월이었다. 자유학기제란 학생들의 꿈과 적성을 찾아주기 위해 학기 중에 다양한 진로 체험을 제공하는 제도다. 당시 청주 가경중학교 교감 선생님이었던 그는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도 오래된 꿈을 돌이켜보게 됐어요. 어릴 적 그림 그리기를 참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통해 학생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첫 모델은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불리는 학생이었다. 학교에서도 포기할 정도로 문제가 많던 그 학생에게 '희망'을 선물하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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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림을 그려준다니까 싫다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자기는 그런 거 필요 없다고요(웃음).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서 괴롭혔죠. 계속 말 걸고, 힘든 일은 없냐 물어보면서 친한 척했죠. 그렇게 노력하니까 마음을 열더라고요. 결국 초상화 모델이 돼 줬죠. 그림을 받고 나서 처음으로 활짝 웃던 그 아이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후 '말 안 듣던' 학생의 학교생활이 조금씩 달라졌다. 학교에서 싸우는 일도 눈에 띄게 줄었고, 성격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학교를 그만둘 위기에 있던 문제아는 웃는 얼굴로 무사히 졸업했다.

"그림이 가지는 힘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누군가를 그려내는 작업은 온통 그 사람에게만 몰입해야 하는 정성의 과정이죠. 그 마음을 아이들이 알아주니 참 고마웠어요."

◇학교로 돌아가 더 많은 아이들 그려주고 싶어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지난해에는 학교를 떠나는 제자 250여 명의 초상화를 일일이 그려 졸업 선물로 주기도 했다. 하루 세 사람씩 꼬박 석 달이 걸려 그림을 완성했다.

"250명의 제자를 다 그리고 나니 긴장이 풀려 앓아누웠습니다. 2주 동안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어요(웃음). 그래도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학교를 떠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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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학생을 그리는 데는 두 시간가량 걸린다. 먼저 화선지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고 붓펜으로 입가, 눈썹 등의 섬세한 표현을 한다. 그런 다음 동양화 물감을 이용해 알록달록 색을 입힌다. 특이한 점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든 얼굴이 활짝 웃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웃으며 살아가라는 의미"라고 그는 설명했다.

"그림 아래에는 학생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를 적어줍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무슨 말을 적어줄지 머릿속으로 계속 고민해요. 어쩔 땐 그림보다 글이 더 오래 걸리기도 해요(웃음). 그림과 메시지를 선물 받은 아이들이 '앞으로 이 메시지대로 열심히 살겠다'고 말해줄 때가 가장 뿌듯합니다."

이번에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이 지선호 장학관의 그림들을 모아 특별전을 연다. '희망을 그립니다'라는 제목의 이 전시회는 오는 19일까지 청주첨단문화산업단지 1층 갤러리에서 열린다. '내일은 더 큰 꿈을 꿀 거야' '넌 지금도 충분히 빛난다' '힘들고 지칠 때 부모님 생각하며 웃지요' 등 다양한 문구가 새겨진 그림 200여 점이 전시장에 걸린다.

그림 옆에 적힌 '감초(甘草)'라는 호의 의미에 대해 물었다. "30년 전 담임을 맡았던 첫 제자들이 지어준 별명입니다. '약방의 감초'처럼 어느 학생과도 잘 어울리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라는 뜻이죠. 장학관 일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 감초 같은 선생님으로 남고 싶어요. 초상화요? 5000명, 1만 명이든 힘 닿는 데까지 계속 그려야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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