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실조'에 시달리는 한국 어린이들… "놀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6.26 15:45

-유니셰프한국위원회 ‘맘껏 놀이 특강’ 참석한 세계적 놀이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

  • 유니셰프한국위원회 제공
    ▲ 유니셰프한국위원회 제공

    “모든 어린이는 반드시 놀아야 합니다. 잘 놀아야 잘 자라기 때문이죠.”

    40년 동안 유럽 등 전 세계 여러 도시에서 수천 개의 놀이터 프로젝트를 이끌어 온 독일 출신 귄터 벨치히(76ㆍ사진) 디자이너의 단언에 100여 명의 부모 및 지역사회 관계자가 집중했다. 지난 24일 유니셰프한국위원회 주최 ‘맘껏 놀이 특강’ 강연자로 나선 벨치히 씨는 특강이 진행된 2시간 동안 수십 번에 걸쳐 ‘놀이’를 강조했다. 이번이 세 번째 방한인 그는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아이들을 잘 만나기 어려운 것은 슬픈 일"이라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흥미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는 언제, 어디서든, 무엇으로도 논다

    그는 ‘아이들에게 놀이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을 터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놀면서 공간을 탐색하고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깨닫고 최선을 것을 도출해 내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힘도 기릅니다.”

    유엔은 아동권리협약을 통해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고 정해놓고 있다. 이때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말하는 어린이는 만 18세 미만을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어린이들이 좀처럼 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각국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상황을 감시하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교육의 극심한 경쟁을 우려하며 어린이의 놀 권리를 증진하도록 우리나라에 권고하고 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어린이는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놀이와 여가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비단 어린이나 청소년뿐만 아니라 영유아들까지도 사교육에 시달려, 최근에는 이들의 사교육을 제한하고 놀 권리를 보장하는 ‘영유아 인권법’이 건의되고 있을 정도다.

    특강에 강연자로 함께 참석한 편해문 ‘기적의 놀이터’ 총괄계획가는 “요즘에는 아이들이 일찍부터 부모 손에 이끌려 일정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키즈카페에 가서 논다고 들었다”며 “노는 데 돈이 필요하고, 돈이 없으면 놀 수 없다는 현실이 참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어린이들이 ‘놀이 실조’에 시달리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벨치히 씨의 제안은 “부모가 바뀌는 것”이다. 그는 “부모 중 일부가 놀이의 생산성을 따지며 그것의 가치를 외면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아이들이 노는 것이 마냥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모의 착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벨치히 씨는 부모의 착각으로 2가지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놀고 싶어도 놀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린이가 있는 곳 어디나 놀이터입니다. 어린이는 언제, 어디서든, 무엇을 가지고도 잘 놀기 때문이죠. 놀 공간이 없어서 놀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을 놀지 못하게 하려는 알리바이에 불과해요. 아이들은 도시 아무 곳에서나 놀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노는 환경을 완벽하게 제공해줘야 한다거나, 아니면 같이 놀아줘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아이가 재미있게 노는 것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이가 잘 놀 수 있도록 그냥 놔두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아이를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죠.”

    또 하나는 ‘안전을 이유로 아이의 놀이를 금지하는 것’이다. 그는 “아이가 노는 것을 자칫 위험하다고 여겨 막는데, 안전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옭아매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아이들이 가진 놀고 싶은 욕구를 분출하지 못하게 할 경우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유니셰프 맘껏 놀이 특강에서 강연을 하는 세계적 놀이디자이너인 귄터 벨치히씨. /유니셰프한국위원회 제공
    ▲ 유니셰프 맘껏 놀이 특강에서 강연을 하는 세계적 놀이디자이너인 귄터 벨치히씨. /유니셰프한국위원회 제공
    ◇천편일률적인 놀이터를 바꾸자.

    산업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는 놀이에 대한 남다른 철학으로 일찌감치 놀이터 디자이너로 전향했다. 40여 년 동안 놀이터 디자인에 대해 고민해온 그는 지난 17일에 서울시교육청이 '놀이터를 바꿔야 학교가 바뀐다'는 주제로 연 집담회에 참여해 우리나라 놀이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획일적인 놀이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일찍부터 전 세계적으로 나와 진행 중이지만, 한국은 크게 바뀐 게 없는 거 같아요. 특히 한국의 놀이터는 규제와 감시가 많습니다. 디자인도 너무 똑같고요. 아이들에게 이런 놀이터가 매력적일까요? 아이들에게 행복감을 주고 더 머무르고 싶은 느낌이 들며 무언가 아이들이 발견할 가능성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는 “안전한 놀이터가 가장 위험한 놀이터”라고 지적했다. 안전한 놀이터에서는 호기심 유발이 안 돼 아이들이 딴 짓을 하다가 떨어지는 등 위험한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합니다. 아이들의 능력은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늘 뛰어넘으니까요. 오히려 ‘조심해’, ‘그렇게 하지 마’, ‘위험해’라고 말하는 부모가 가장 놀이를 방해하는 요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