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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딸 유학선물로 ‘피임 시술’ 해주는 강남엄마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2017.06.1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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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통, 피임 걱정 덜어주려는 목적으로 권유… 대상 연령 점점 낮아져
-전문가 "자녀 삶을 통제하는 '헬리콥터 맘' 돼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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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DB

# 주부 차주희(가명∙51∙서울 강남구)씨는 최근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 딸에게 피임 시술을 권유했다. 학창 시절부터 불규칙한 생리 주기와 심한 생리통에 고생하는 딸이 걱정스러웠기 때문. 차씨는 “아이의 유학이 결정되면서 먼 타국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겪는 끔찍한 생리통으로 인해 제 꿈을 펼치지 못할까 걱정돼 (팔에 삽입하는 피임장치인) ‘임플라논(Implanon)’ 시술을 받게 했다”며 “딸 가진 엄마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호르몬 조절 약을 지속적으로 먹는 것보단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미혼의 유학생 딸에게 ‘피임 시술’을 해주는 강남엄마들이 늘고 있다. 혹시라도 미숙한 대처로 원치 않은 임신 등 돌발사태에 대비하기 위함도 있지만, 매달 찾아오는 생리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주려는 목적도 한몫한다. 유학생 사이에서는 ‘피임이 공공연한 비밀’이며 유명한 산부인과를 서로 공유하기도 한다. 강남 지역 산부인과에는 방학을 맞아 귀국한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검진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지난해 피임 시술을 받았다는 유학생 유지안(가명∙23∙서울 서초구)씨는 “생리통뿐 아니라 피부가 예민해 일회용 생리대를 차면 습진이 생겨 매달 병원에 오가길 반복했다”면서 “단순 피임 목적을 넘어, 매달 느껴온 통증이 사라져 몸도 마음도 편하다”고 했다.


다양한 피임 시술 중에서도 강남엄마들에게 인기 있는 피임법은 단연 ‘임플라논’이다. 기존에 많이 알려진 미레나(Mirena), 루프(Loop) 등 자궁 내 삽입 장치보다 거부감이 덜하고, 언제든 원하는 시기에 제거하면 신속하게 임신능력이 회복된다는 이유에서다. 임플라논은 황체호르몬을 분비하는 길이 4㎝, 폭 2㎜ 크기의 작은 성냥개비 모양의 봉을 팔 안쪽에 이식, 하루 약 30ug 정도의 호르몬을 혈액으로 방출해 배란을 억제하는 피임제다. 중국 유학생 딸을 둔 김자영(가명∙49∙서울 서초구)씨 역시 지난해 생리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딸의 말에 임플라논 시술을 허락했다. 김씨는 “외국인 신분으로 병원에 자주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졸업까지 3~4년간 고생할 아이를 생각하니 어쩔 수 없었다”면서 “같은 여자로서 번거로움과 고통을 잘 알기에 시술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상 연령이 점점 낮아져 청소년에게도 행해지고 있다. 대부분 매달 반복되는 생리통으로 인해 학업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고등학교 2학년생 이지원(가명∙서울 강남구)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매달 ‘밑이 빠지는 고통’을 겪었다. 결국 이양은 지난 겨울 가족의 동의하에 임플라논 시술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생리통이 심해서 생리 기간만 되면 공부하기가 어려웠어요. ‘수능 날에도 이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자, 엄마가 허락해주셨어요.”

실제로 생리통을 겪는 환자들 가운데 10~20대의 비율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를 보면 생리불순, 무월경, 생리통 등 월경과 관련된 병증을 겪는 20~30대가 2010년 이후 연평균 1.56%씩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생리통 환자는 2007년 8만6787명에서 2011년 12만7498명으로 47.9% 늘었다. 이 중 특히 10대의 비율은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이에 대해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요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생리통과 관련한 피임 시술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김영신 헤라여성의원 원장은 “주로 피임이 목적이지만, 최근엔 생리통과 배란통, 생리 전 증후군(PMS∙Premenstrual syndrome) 등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더러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존재한다. 임플라논 역시 호르몬에 의한 피임법이다 보니 부정출혈, 두통, 현기증, 체중 증가 등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호전되지만, 증상이 지속되고 환자가 불편을 심하게 호소한다면 즉시 제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병구 에비뉴여성의원 원장(대한산부인과의사회 공보이사)은 “먼저 자신이 앓는 질병력, 복용 중인 약물, 현재 사용 중인 피임법 등에 대해 전문의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개인 특성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찾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면서 “엄마 또는 주변 지인이 권유했다는 이유로 쉽게 시술을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자녀의 행동에 일거수일투족 관여하려고 하는 엄마의 그릇된 모성애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임재인 서울수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자녀의 아픔을 그냥 넘길 순 없었겠지만, 지나치게 도움을 주거나 쉬운 방법만 제시하려는 의도가 오히려 아이에게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면서 “아이를 믿지 못하고 자녀의 생리 현상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일명 ‘헬리콥터 맘(Helicopter Mom)’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헬리콥터 맘이란, 자녀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녀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맴돌면서 자녀를 지켜보고 통제하며 자녀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서는 엄마를 뜻한다.

덧붙여 그는 이런 현상의 이유로 ‘자녀에 대한 불신과 부모의 지나친 욕망’을 꼽았다. 그는 “이런 현상이 청소년기부터 계속되면, 아이가 성인이 돼서도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면서 "자녀를 사랑하는 것과 자녀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철저히 구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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