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엄마, 나 결혼 안 할래”… '독신 선언'하는 여대생 늘어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6.02 15:51

-경기침체·취업난 탓에 결혼 지양

  • 조선일보 DB
    ▲ 조선일보 DB
    “엄마, 난 ‘독신(獨身)’으로 살 거야.”

    주부 최명희(가명·54·경기 수원)씨는 최근 대학생 딸의 이 같은 ‘독신 선언’에 고민이 깊다. 결혼이란 제도로 평생 자신을 희생하며 살기보단, 자유롭게 제 꿈을 펼치며 살고 싶다는 딸의 확고한 의지에 말문이 막힌 것이다. 그는 “같은 여자로서 독신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막상 내 딸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당혹스럽다”면서 “또 어린 나이부터 독신을 논하니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아 우려스럽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사회적으로 결혼에 생각이 없는 비혼(非婚) 풍조가 퍼지는 가운데, ‘날 위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는 여대생들이 늘고 있다. 연애·결혼·출산 등을 포기한 일명 ‘N포세대’에게 결혼은 사치라는 것이다. 대학 졸업반인 딸을 둔 전혜순(가명·53·인천 남동구)씨도 얼마 전 결혼 대신 ‘자유연애’를 하겠다는 딸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이때 자유연애란, 결혼 제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애하는 것을 뜻한다. “아기를 참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은 꿈이 가득한 딸이었는데, 취업 준비를 시작하고 녹록지 않은 사회에 맞닥뜨리고 나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쌓인 것 같아요. 현실적인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결혼을 굳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죠. 사랑하는 사람과 실컷 사랑하되, 결혼은 안 하겠다는 딸이 걱정스러워요.”

    이렇듯 결혼을 포기하는 여대생들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청년 실업난 가중 등 결혼하기 어려운 사회적 환경을 꼽았다. 독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대학교 4학년생 김재은(가명·22·서울 동대문구)씨는 “취직도 못 하는 마당에 내 집 마련과 결혼, 출산은 뚱딴지같은 소리”라며 “집안과 집안의 만남으로 진행되는 한국 특유의 결혼문화와 여성이 가사노동과 육아를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 역시 독신을 선언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라고 말했다.

    더는 구시대적인 가부장제 구조에 맞춰 ‘개인의 행복’을 희생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심지어 현재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른바 '욜로(YOLO·You Olny Live Once)족'까지 등장했다. 이들은 단 한 번뿐인 인생,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보단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고 후회 없이 즐기자는 의미에서 나타났다. 자칭 ‘욜로족’인 대학교 3학년생 강현주(가명·24·서울 노원구)씨는 “과거에는 미래를 준비하며 사는 ‘개미’가 돼야 한다고 여겼는데, 요즘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베짱이’가 맞는 듯하다”면서 “결혼자금을 모으기 위해 혹은 결혼 이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모든 걸 인내하며 사는 삶보단,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실천하면서 살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대졸 여성의 혼인율은 2000년 이후 심각하게 줄어드는 추세다. 통계청이 지난달 23일 발표한 교육수준별 출생·사망·혼인·이혼 분석 자료(20세 이상)를 보면, 대졸 이상 여성의 혼인율(1000명당 혼인건수)은 2015년 한해 28.6명이었다. 2000년에 41.2명인 데 비해, 지난 15년간 약 31%(12.7명)가 감소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최근 들어 더욱 빨라졌다. 2010년 33.7명에서 5년간 약 15.1%(5.1명)나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이유로 가족이나 공동체의 가치보다 ‘나’에 대한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현 사회적 배경을 꼽았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사회는 가족, 또래집단 등 기존의 공동체주의가 점차 사라지고 개인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는 시대”라며 “특히 고학력·고소득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결혼 후 모든 살림의 부담을 떠안고 고군분투하는 삶보다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 맺음’에 대한 가치가 자연스레 줄어든 점도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다. 고 교수는 “최근 관계 자체에 염증을 느끼는 ‘관태기(관계+권태기)’를 겪는 청년들이 꽤 있다”라며 “과도한 경쟁과 취업난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에 대한 시간적·감정적 투자를 꺼리게 하고, 그 결과 결속의 상징인 ‘결혼’이라는 제도도 피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