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도 실력이야”에 반기든 이화여대 첫 직선제 총장 탄생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5.29 15:27

-최경희 전 총장 물러난 지 219일만…김혜숙 교수 제16대 총장으로

  • 김혜숙 이화여대 신임 총장 /조선일보 DB
    ▲ 김혜숙 이화여대 신임 총장 /조선일보 DB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비선 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은 ‘최순실 게이트’와 함께 자신을 둘러싼 ‘학사 농단’이 하나 둘 드러나는 과정에서 국민적 분노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었다.

    정씨가 어린 시절부터 누려온 온갖 특혜와 이런 것들을 당연시하는 그의 ‘안하무인’ 행태는 대학입시 스트레스를 받는 중고생들과 ‘흙수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에 이화여대 학생들의 줄기찬 사퇴 요구에 꿈쩍도 않던 ‘불통행정’ 최경희 전 총장도 정씨 의혹이 불거지자 더는 버티지 못했다. 결국 최 전 총장은 이대 130년 역사상 첫 중도퇴진 총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최 전 총장이 사퇴한 지 219일 만인 지난 26일, 학교법인 이화학당은 이사회를 열고 김혜숙(61) 철학과 교수를 이화여대 제16대 총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지난해 정씨 특혜입학 논란 등이 불거졌을 때 교수 시위를 주도하는 등 학생들과 함께 학교에 맞섰던 인물이다. 지난해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다. 이번 선거는 이화여대 개교 131년 역사상 최초로 교수와 교직원, 학생, 동창 등 2만4859명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치러졌다. 투표 결과 김 총장은 57.3%의 지지를 얻어 42.7%를 득표한 김은미 국제학과 교수를 14.6%포인트 차로 제쳤다.

    이날 곧바로 공식업무를 시작한 김 총장은 “기쁜 마음보다 상당히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지난해 여름부터 지나온 과정 안에서 저에 대한 어떤 신뢰와 기대가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구성원들 뜻을 모아서 여러 가지 안정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있듯이 이화의 원래 모습을 되찾고 명예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총장은 사실상 학생들이 지지하는 유일한 후보였다. 이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학교는 총장 선임 방식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꾸면서도, 총장 후보 자격을 임기 중 교원 정년(만 65세)에 이르지 않는 학내 인사로 한정한다는 기존 조항을 유지했다. ‘당선되면 4년 임기 내에 정년에 도달하는 김 교수의 출마를 막으려는 것’이라는 학내 반발이 거세게 일었고, 학교는 결국 지난 4월 이 조항을 폐지했다.

    김 총장은 취임하는 즉시 공식적인 업무로 ‘정유라 사태’에 대해 사과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직 학교 차원에서 단 한 번도 정유라 특혜 비리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한 적이 없는 것은 문제”라며 “취임 후 최우선적으로 총장 명의의 공식 사과를 함으로써 책임 있는 자세로 잘못된 과거와 단절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 총장은 지난 13~19일 총장 후보 정책토론회에서 ▲학생인권센터 설치 ▲상향식 평가제 ▲익명 청원제 등 학사운영(거버넌스) 투명화 ▲구성원 간 소통 강화 등의 공약을 강조했다. 그는 대학원생의 기초적 권리 보장 강령들을 명시한 ‘대학원생 권리장전’ 제정에도 동의한 만큼 취임 후 학사운영 방향에도 변화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987년 이화여대 교수로 임용된 김 총장은 스크랜튼대학 초대 학장, 인문학연구원 원장 등의 보직을 맡았다. 또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 한국철학회 회장, 한국여성철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 이화여대 학생들이 최경희 전 총장 사퇴 관련 대규모 시위를 열고 있다(위).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벽에 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줬던 교수들을 비난하는 글귀들이 쓰여있다. /손현경 기자
    ▲ 이화여대 학생들이 최경희 전 총장 사퇴 관련 대규모 시위를 열고 있다(위). 이화여대 의류산업학과 벽에 정유라씨에게 학점 특혜를 줬던 교수들을 비난하는 글귀들이 쓰여있다. /손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