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매칭 ‘소개팅 앱’에 빠져드는 ‘N포 세대’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4.12 10:59

-자연스러운 만남 어려워지자 스펙 검증한 현실 만남 원해

  • 계급 소개팅 앱에서 전화번호 교환에 성공한 이성들이 커피숍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손현경 기자
    ▲ 계급 소개팅 앱에서 전화번호 교환에 성공한 이성들이 커피숍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손현경 기자

    '광화문 얼짱’님께 ‘여의도 보이’님의 OK가 도착했습니다. 로그인 후 확인해보세요.”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스카이피플(SKY PEOPLE)’을 설치하자 취재원 연락으로만 울리던 기자의 스마트폰이 이성이 보낸 쪽지(카드)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스펙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요즘 시대는 연애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이라며 스펙 매칭 소개팅 앱을 소개해준 친구의 말에 가입했지만 ‘승인’ 절차는 꽤 까다로웠다. 직접 체험해보니, 실제로 가입 과정에서 자신의 대학이나 직장을 인증하는 검증 철자가 있었다. 해당 소속 인트라넷에 접속하거나 학생증 또는 사원증 사진을 올려야 했다. 이후 성격, 몸매, 얼굴 평가도 이어졌다.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기가 예전보다 힘든 ‘N포 세대’에게 상대적으로 감정 낭비가 덜한 ‘스펙 매칭 소개팅 앱’이 인기다. 최근 이들은 가벼운 만남이 대부분인 기존 데이트 앱과 달리 학벌, 직업 등 스펙을 인증할 수 있는 ‘계급형 소개팅 앱’을 찾아 나서고 있다.

    “얼마 전 친구의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서 소개팅을 부탁했더니 ‘취업하면 해줄게. 나도 뭐 할 말이 있어야지’라는 대답을 들었어요. 씁쓸하더라고요.” (취업준비생 김영권·28)

    일각에서는 김씨처럼 “사랑에도 계급을 따지는 거냐”라며 지적하지만, 포기하는 게 일상이 돼버린 ‘N포 세대’들은 “이왕이면 검증되고 신뢰할 수 있는 만남을 하고 싶다”고 강조한다.

    출시 3년째인 ‘스카이피플’은 남성의 경우, 학벌이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 등 일명 ‘스카이’(SKY) 출신이라야 가입이 가능하다. 지난해엔 대기업과 전문직 종사자까지 가입 범위를 넓혔다. 여성은 4년제 대학 출신자나 전문직 종사자면 가입할 수 있다.

    “기존 결혼정보 회사는 몇만 원부터 몇십만 원까지 월 회비를 꼬박 내야 하는데 소개팅 앱은 그런 경제적인 부담이 없어요.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으면 커피 한 잔 값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죠. 나와 스펙이 맞는 이성 정보를 계속 받을 수 있으니 ‘가성비’가 높아요. 소개 요청을 안 받아주는 이성이 있으면 ‘커피 한잔 쏟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에요.” (소개팅 앱 가입자 ‘힝돌이’)

    실제로 스카이피플의 24세 이하 가입자 수는 지난 1년간 매달 약 320%의 증가율로 급증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계급이 더 축소된 소개팅 앱도 인기다. 서울대 동문끼리 연결해주는 소개팅 앱 '스누매치'의 경우 가입 시 서울대 이메일 계정으로 인증을 받고 내부 구성원끼리 소개팅을 받는다. 타 대학생 가입도 가능하지만, 외부 매칭 기능을 허용해야 주선된다. 일정 수준의 프로필을 입력하고 서울대생임을 인증하면 조건에 맞는 매칭 상대로부터 하루 2~3건 정도의 대시가 꾸준히 들어온다.

    전문가들은 연애에서조차 만남의 비용을 따지게 된 배경에는 ‘생산성 없는 데이트는 사치’라는 ‘N포 세대’의 ‘현실적 고민’이 담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계급 소개팅 앱은 명료한 목적과 신뢰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피할 수 있다고 청춘들이 나름대로 판단한 것”이라며 “상처받는 것에 지친 청춘들이 감정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감정노동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의 청년들은 피로감에 많이 지쳐 있다.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노동’으로 보고 이를 버겁게 느끼며 이러한 과정을 사치이자 낭비로 생각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성과의 진지한 만남에 학벌격차나 계급을 두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