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10대, ‘먼치킨’ 캐릭터에 열광하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3.30 11:56

-성장물보다 절대강자 주인공 등장하는 만화 ‘인기’
-전문가 “청소년들, 노력보단 ‘신분∙계급 더 중요하다’ 인식하기 때문”

  • 만화 '원펀맨'과 웹툰 '노블레스'(왼쪽부터)/원펀맨 공식 홈페이지ㆍ네오위즈게임즈
    ▲ 만화 '원펀맨'과 웹툰 '노블레스'(왼쪽부터)/원펀맨 공식 홈페이지ㆍ네오위즈게임즈
    “질듯 말듯 시간 끄는 성장물 말고, 남주(남자주인공)가 최강 ‘먼치킨’인 애니(메이션) 추천해 주세요.”

    최근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먼치킨(Munchkin)’ 만화 열풍이 뜨겁다. 인기 포털사이트 청소년 인기검색어에는 ‘먼치킨’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가 늘 상위권에 올라 있고, ‘추천해 달라’는 온라인 게시글만 하루 평균 수백건에 이른다. 먼치킨 만화의 주요 공통점은 ‘절대강자’ 주인공이다. 청소년들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엄청난 힘과 재능으로 단번에 적을 무력화시키는 주인공에게 큰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과거에도 꾸준히 나오던 먼치킨 만화가 요즘 더욱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치킨은 본래 규칙과 지침에 따라 협력해야 하는 TRPG(Tabletop Role-Playing Game) 게임 등에서 '혼자 모든 걸 해결하며 게임 진행을 방해하는 게이머'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다가, 근래에 ‘극단적으로 강한 캐릭터’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먼치킨은 지난해 가장 많이 검색된 국어사전 표제어에도 이름을 올렸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운영하는 사전 서비스 공식 블로그가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국어사전에서 많이 검색된 단어 10위를 공개한 결과, ‘먼치킨’이 9위를 차지했다. 대표적인 먼치킨류에는 어떤 상대도 주먹 한 방으로 끝내는 주인공 ’사이타마’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 ‘원펀맨’,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을 가졌지만 사용할 때마다 자신의 생명력을 잃어가는 주인공 ‘라이(카디스 에트라마 디 라이제르)’의 일대기를 담은 웹툰 ‘노블레스’ 등이 있다.
  • 먼치킨 만화의 인기 비결은 바로 ‘쾌감’이다. 청소년들은 먼치킨 캐릭터를 통해 엄청난 쾌감을 얻는다고 입을 모은다. 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강준성(15·서울 영등포구)군은 주인공이 처음부터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점이 먼치킨 만화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는다. “강력한 능력을 갖춘 주인공이 힘을 폭발해 악(惡)을 없애는 순간, 그 카타르시스는 정말 굉장해요. 일반 만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통쾌하고 짜릿한 기분이죠.” 중학교 시절부터 먼치킨 만화를 즐겨봤다는 이상민(17·인천 부평구)군은 “주인공이 수많은 시련을 거치고 더 강한 적들을 격파하며 최고의 위치에 올라가는 성장물 만화의 경우, 보는 내내 고구마 먹듯 답답하고 체할 것만 같았다”며 “반면, 먼치킨 만화는 시종일관 주인공 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 성장물에 비해 긴장감은 덜하지만, 보고 있으면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고 했다.

    대리만족을 충족시켜 준다는 점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이한휘(13·서울 양천구)군은 “공부, 외모, 성격,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갖춘 주인공의 모습에서 괴리감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대리만족을 느낀다”며 “주인공이 완벽하면 완벽할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사회적 배경’을 꼽는다. 최근 ‘흙수저’, ‘헬조선’ 등으로 불리는 현실 속에서 자신을 비관하는 10대들이 늘면서 이런 만화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소년 사이에서도 본인 능력이나 노력보단, 타고난 가정환경에 따라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계급론’ 등의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며 “성실함과 노력만으론 모든 장벽을 뛰어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이미 완성된 주인공에 더욱 열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오래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단기간에 쾌감을 선사한다는 점도 인기 요인이라고 귀띔했다. 입시 준비 등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는 청소년들에게 짧은 시간 쉽게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을 했을 거란 설명이다. 전 교수는 “먼치킨 만화는 주인공이 힘을 기르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생략하고 완성형 캐릭터를 바로 선보여 단기간에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며 “힘겨운 입시 경쟁을 겪으며 초조함과 조급함이 일상이 된 청소년들에게 이런 만화는 쌓아온 갈증을 쉽게 해소해주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