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기 아닌 ‘딴 짓’ 권유하는 대학들
손현경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3.23 15:39

-고려대, 딴 짓 할 수 있는 공간 ‘파이빌’ 열어
-연세대·한양대·선문대 “도서관은 자유롭고 시끄럽게”

  • 매번 공강 시간마다 주변 커피숍에 들러 시간을 보내던 김가영(22ㆍ고려대 경영대학 3학년ㆍ가명)씨는 요즘 캠퍼스에 새로 지어진 파이빌(ㅠ-Ville)의 ‘공강 대피소’를 찾는다. 공강 대피소에서는 에코백 만들기부터 유튜브 동영상 제작, 학생들이 직접 만드는 커피 시음 등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심지어 김씨의 작은 원룸에 어울릴만한 인테리어 소품을 직접 만들고 판매할 수도 있다. 이곳은 공강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재학생을 위해 학교 측이 자유롭게 ‘딴 짓’을 할 수 있도록 마련해준 공간인 셈이다.

    ◇‘딴 짓 하는 학생 집합소’ 고려대 파이빌
    최근 몇 년 동안 각 대학은 취업률 높이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취업ㆍ창업지원센터 등 학생들의 졸업 이후를 돕는 시설과 공간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학들은 위기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학의 본질은 교육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취업과 창업만 권유하지 말고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교육 공간을 만드는 것이 그 중 하나다.

    그 최초가 지난 8월 고려대 캠퍼스에 세워진 38개의 컨테이너 박스 집합체인 ‘파이빌’이다. 규모는 1525㎡로 지상 5층 건물. 한마디로 파이빌은 대학생들이 자유롭게 딴 짓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한 마을이다. 이름에 걸맞게 촌장도 있다. 정석 파이빌 촌장(공과대학 기계공학부 교수)은 “파이빌은 함께 모여 토론하고 작업하면서 생각한 것을 구체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기술적 지원이나 교수와 학생 간의 네트워크 연결 등도 수월하다”면서 “창업을 배우고 싶은 학생은 선배 창업인에게 배우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파이빌 내에서)자유롭게 찾아보고 시도해보면서 그 속에서 스스로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곳을 찾은 학생들은 자기가 한 딴 짓을 전시하거나, 남의 딴 짓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 문화예술, 공연, 봉사, 창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학생을 위한 전용공간 '파이빌' /고려대 제공
    ▲ 문화예술, 공연, 봉사, 창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학생을 위한 전용공간 '파이빌' /고려대 제공
    ◇ 도서관에서 공부 안 하고, 상상하며 딴 짓 해도 된다?
    연세대 역시 최근 학생들에게 ‘딴 짓’을 권유하고 있다. 고려대처럼 독립된 공간은 아니지만, 딴 짓 하는 학생들을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다. 연세대는 오는 5월까지 중앙도서관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기존의 텍스트 소비 공간이 아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 할 수 있는 창의 공간으로 리모델링할 예정이다.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도서관은 책에 집중하는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소통 네트워크의 산실이어야 한다”며 “자칫 무겁고 재미가 없을 수 있는 ‘전공 및 창업 책’을 ‘사람의 책’으로 도서관에서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연세대는 제4공학관 일부를 활용해 ‘창의교육공간(가칭)’도 만들 예정이다. 이에 대해 김태연 공과대학 부학장은 “창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창의 기본 교육 전반과 개발, 인프라 구축을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오는 2학기부터 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한양대 도서관도 재학생들의 딴 짓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리모델링에 한창이다. 도서관의 메인 공간인 1층 로비 전체를 ‘크리에이티브 존(Creative Zone)’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김휘출 백남학술정보관 부관장은 “엉뚱한 아이디어와 딴 짓에 대한 열정이 있는 학생이라면 365일 언제든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며 “기존의 무겁고 조용한 분위기의 도서관이 아닌 역동적이고 생기발랄한 도서관으로 재탄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6월 오픈하는 크리에이티브 존은 ‘창의공간’과 ‘협업공간’으로 구성된다.

    지역대학도 정부사업의 힘을 빌려 ‘딴 짓’ 확대에 동참하고 있다. 선문대는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을 진행하면서 중앙도서관 1층부터 4층까지를 학생들의 ‘상상력 방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황선조 선문대 총장은 “변화하지 않는 대학은 발전할 수 없다. 변화의 중심에는 대학 구성원이 있고 그 핵심에는 학생이 있다”며 “이번 창의 학습공간은 학생을 위한 변화 중 하나다. 학생들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창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