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입시정책은 또 어떻게 바뀔까? 대선주자들마다 앞 다투어 입시과열, 사교육 부작용을 바로 잡고 교육 대안을 내놓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딱히 새로워 보이는 해법은 눈에 띄지 않아, 당사자인 수험생뿐만 아니라, 대학교, 자사고, 특목고, 일반고, 수도권, 지방 고교 등 공교육 일선부터 사교육 현장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얽힌 이해관계를 걱정하는 가운데 여전히 입시는 오리무중이다. 각자의 입장에 따른 추측과 기대가 난무하는 중에 특히 고교 저학년이나 중등 고학년은 수험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입시과열을 진정시키려면 사교육을 규제하면 되는가? 결론적으로 말해서 입시와 관련한 문제는 욕망의 문제다. 다른 이보다 더 잘되려고 하는 욕망이 입시과열의 근본 원인이다. 그렇다면 욕망을 줄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겠지만 말처럼 쉽지 않은 문제다. 우선 한국사회가 그렇게 넉넉하고 여유로운 사회가 아니다. ‘명문 대학’이란 표현 자체가 어폐가 있지만, 명문 대학을 나와서 수십 년을 일해도 수도권에 아파트 한 칸 마련하기가 빠듯하다. 또한 우리의 사회보장안전망이 아직 제 역할과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입시가 욕망의 차원인 반면 또 다른 이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소위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하기 힘든 현실을 알면서도, 그렇다고 대학진학마저 포기하면 더 어려운 상황에 부딪치지 않을까 하는 체험적 공포가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하여 ‘명문대 입시’에 집착하는 관성적 행태를 낳는다.
그런 의미에서 입시 과열을 진정시키려면 사실 먹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쟁구조야 불가피하다고 쳐도, 사회구성원이 사회적응에 지체현상을 겪거나 도중에 실패해도 극단적인 상황으로 가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가 믿음을 줘야한다. 먹고 사는 기본적환경이 안정되고, 사회안전망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다양성이 형성되고 과열경쟁이 완화된다. 요즘 최상위권 수험생들 중 상당수는 ‘서울대보다 의대를 더 선호한다.’ 의학에 관심과 열정을 가진 학생도 물론 많겠지만 전문직이면서 보수가 높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으로서의 의사에 대한 기대가 의대진학 인기의 가장 큰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시대에는 의사, 약사, 변호사 등의 전문직이 AI로 대체되고, 지금의 직종 중 상당수가 붕괴 혹은 사양 산업이 될 거라고 하지만 아직 수험생들의 입시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입시문제와 관련하여 최근 정치권에서는 교육공약으로, ‘국공립대학 통합, 학벌사회 완화’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과연 깜짝 놀랄만한 실효성이 있을지는 그간 필자의 경험론에 비추어 볼 때 회의적이다. 지난 정권에서 선진적 법률서비스의 대중화와 함께 한편으로는 학벌사회 완화를 목적으로 로스쿨 체제를 도입했지만 과연 로스쿨 체제가 학벌 구조를 완화시키는 데 기여했는지를 평가한다면 그리 높은 점수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기 힘들다. 오히려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 체제보다 학벌사회를 더 공고히 했다는 비판적 여론이 강하다. 이처럼 자신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타인보다 더 높은 학력을 원하고, 사회진출에 더 유리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막기란 힘들다. 정부가 학벌사회 타파를 직접 주도하기보다는, 경쟁력 있는 대학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 육성하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오히려 학벌사회 완화를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입시가 교육제도 안에서 과열되지 않고 정상적인 선발기능을 하려면, 사회체제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즉 입시를 생존의 문제에서 선택의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정치권에서 ‘학벌사회 완화 혹은 타파’를 외치는 이유도 이런 의미를 알고 있어서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순서가 틀렸다. 학벌사회 타파보다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가 우선이다. 선진 복지사회로의 이양, 경쟁력 있는 대학의 육성과 양산은 수험생의 대학선택에도 다양성을 높여서 입시의 과도한 경쟁을 진정시키고, 결국은 '입시 노(NO)답'에서 '입시 미(美)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종환의 주간 교육통신 ‘입시 큐’] ‘입시 미(美)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