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상의 입시 속 의미 찾기] 영화 ‘컨택트’ 속 시간과 선택 이야기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7.03.13 10:11
  • 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학부모와 학생 여러분께 동시에 권하고 싶은 좋은 영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저는 얼마 전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Arrival)를 보았습니다. 테드 창의 원작 소설이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 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수업 때문에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심도 있게 다룬 소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를 먼저 읽었습니다. 소감을 말씀 드리자면 일단 교육적으로도 아주 좋은 영화였어요. 시간 언어 의사소통 융합 삶 선택 등의 키워드로 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듯 합니다. 문과 이과 학생 남학생 여학생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표할 소재가 참으로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수많은 키워드 중에서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시간’입니다.

    여러분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과거에서 자신(현재)에게 다가와 자신을 스쳐 지나가 미래로 향해 날라가는 마치 화살과도 같은 존재 아닌가요? 과거에서 미래로 방향이 정해져 있는 시간은 비가역적, 따라서 되돌릴 수 없는 것이고요, 우리는 지나온 과거만을 알 수 있고 경험하지 않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만약 미래가 정해져 았다면 그 미래를 피할 길이 없다는 이야기가 성립되기도 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였던가요? 당신이 다시 태어나서 지금의 인생을 그대로 되풀이해서 다시 한 번 산다고 할 때 그 인생을 선택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말을 한 이가.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니체가 환생해 영화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이 질문을 그대로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이 영화는 선형적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비선형적 시간을 살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에요.  일단 영화의 출발은 테드 창이 강하게 영향 받은 작가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딧세이 시리즈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 같습니다. 모노리스를 연상케 하는 조형물이 떡 하고 12개 국가에 나타나거든요. 세계적인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외계인이 인간과 닮은 존재일 확률은 지극히 낮다고 전망했어요. 그 편견을 처음으로 깬 소설이 아서 클라크의 스페이스 오딧세이였다고 합니다. 저는 스페이스 오딧세이처럼 처음에는 조형물 자체가 외계인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보니 조형물 안에 외계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계인과 의사 소통(정확히는 왜 왔는지 목적이 궁금해서)을 위해 언어학자인 여주(에이미 아담스)를 미 정부가 통역사로 불러 옵니다. 언어학자인 여주는 이론물리학자인 남주(훗날 자신의 남편이 되는, 어벤저스의 호크 아이랍니다)의 도움을 받아 우주인과 소통하려고 하죠. 이 외계인은 헵타 파드. 7개의 다리를 가진 종족으로서 우리와는 다른 비선형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여주의 소통 방식이 흥미로웠는데,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묻지 않고 친해지기 방법을 사용하죠. 낯선 존재와 만나 대화를 시작하려면 어느 한 쪽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나 지구인들은 두려웠죠.

    여주는 먼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그 다음에는 상대의 이름을 묻는 방식으로 외계인의 언어가 아닌 외계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 헵타 파드 덕분에 주인공은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됩니다. 헵타 파드가 지구에 온 이유는 지구를 공격하거나 식민지로 만들거나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 아니었어요. 도와주려고 온 겁니다. 그들의 도움은 비선형적 시간을 선형적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바로 미래를 보는 눈이었죠. 왜 외계인은 수많은 지구인 중에서 그녀에게만 그 능력을 준 것일까요? 일단 외계인이 지구 생명체 모두를 도와줄 수는 없잖아요? 결국 자신과 의사소통, 즉 자신들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만 도와줄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그녀가 선택된 겁니다. 물론 12개 국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외계인과 소통하려고 했는데 저마다의 이유로 실패하게 됩니다. 미국만 성공한 것을 보면 이 영화가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연 중에 팍스 아메리카나의 정서를 띄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요. 특히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하는 국가로 중국을 설정한 것은 현재의 세계 정세를 많이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계인의 진심을 유일하게 이해한 덕분에 그녀는 비선형적 시간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살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미래의 기억이 현재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거죠, 이것은 언뜻 보면 행운 아닐까요? 미래를 알면 당연히 미래에 닥칠 비극을 피할 수 있잖아요?

    실제 주인공에게는 피할 수 있는 두 번의 운명적 선택의 순간이 주어집니다. 처음은 종으로서 인류의 보존과 관계된 선택(우주인과 전면전을 벌이려는 중국을 막는 선택이니 이때는 당연히 도움을 받아야겠죠)입니다. 또 한 번은 개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인생의 반려자를 선택하는 순간이었어요. 후자의 선택이 문제였어요. 그 반려자 사이에서 낳게 되는 아이는 너무나 사랑스러웠지만 치명적인 유전병 때문에 일찍 죽게 될 운명이었죠. 여주는 그 결과를 알고도 그 남자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이미 경험한 미래를 다시 한 번 경험하면서 딸과 함께 했던 행복과 기쁨의 순간들 그리고 딸의 죽음을 통한 하늘이 무너지는 처절한 슬픔과 고통을 모두 그대로 체험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영화에서 그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물어볼 필요도 없지요. 바로 자신의 삶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딸이 아니라 삶이라 표현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만족해하고 그럼으로써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시간은 유한하다고 하지요. 선형적 시간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비선형적 시간의 관점에서는 시간이 아닌 순간들이 쌓여서 영원이 됩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그리고 아파했던 딸과의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영원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비극을 당당하게 받아들였던 것 아닐까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도키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찍 죽을 운명을 지닌 아들이 미래에서 찾아와요. 그리고 젊은 아버지에게 “나를 낳아 줘서 고맙다”고 전합니다. 모름지기 영화 감독과 작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내 글을 읽는 혹은 내 영화를 보는 독자 혹은 관객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게 궁금하지 않을까요? 시간 이야기 하다 결국 선택으로 넘어왔네요. 

    인간은 선택하는 동물입니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나중에 후회하기도 하고 올바른 선택 때문에 안도의 숨을 쉬기도 하지요. 그런 점에서 결국 이 작품은 외계인이 등장하는 SF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영화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묻는 삶의 철학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원작 소설 제목이 ‘당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는 거겠죠. 그런데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영화 속 주인공 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살다 보면, 결론을 알아도(100%의 확률로 비극 혹은 파국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아도)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분명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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