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우리 아이 사진 지워주세요” ‘하이드런츠’가 된 엄마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3.08 15:42

- 자녀의 사생활 지켜주기 위해 SNS 접는 부모 늘어
- 전문가 “‘디지털 주홍글씨’로 남지 않게 신중히 생각해야”

  • #. 세 살배기 딸을 둔 강은희(35·서울 강서구)씨는 며칠 전 우연히 타인의 블로그에서 딸 사진이 게시된 것을 보곤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문화센터에서 같이 수업을 듣던 아기 엄마의 계정이었다. 본인 아이의 사진을 찍다 옆에 있던 강씨의 딸도 함께 찍혀 올라간 것이었다. 강씨는 “댓글을 통해 사진을 내려달라고 하고, 앞으로 블로그에 영상이나 사진을 올릴 때엔 주변 아이의 얼굴이 나오지 않게 주의해달라고도 부탁했다”며 “요즘 같이 험한 세상에 불특정 다수에게 내 아이 사진이 퍼진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찝찝하고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SNS 통해 자녀 신상 노출될까 걱정돼요”

    최근 자녀의 사생활에 대한 내용을 감추려는 ‘하이드런츠(감추다(hide)와 부모(parents)의 합성어)’가 늘고 있다. 하이드런츠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SNS에 올리는 ‘셰어런츠(공유하다(share)와 부모(parents)의 합성어)’와 반대된 개념으로, 자녀의 신상 노출을 걱정해 사회관계망서비스(이하 ‘SNS’) 활동을 접는 부모를 뜻한다. 하이드런츠가 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는 자녀의 사진이나 개인 정보 등이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9개월 된 딸을 키우는 주부 이선아(39·서울 은평구)씨는 “결혼 전엔 SNS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친구를 맺고 사진을 전체공개 하는 것이 전혀 겁나지 않았는데, 엄마가 되니 아이에게 혹여 해가 될까 두렵다”며 “흉흉한 세상에 살다 보니 거주지에 대한 정보나 아이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SNS 계정을 전부 비공개로 전환했다”고 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온라인 상에 자녀 사진을 올리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키우는 장은영(40·대구 수성구)씨는 아이가 커서 부모가 SNS에 올린 사진이나 신상정보, 과거행적 등으로 인해 곤란한 일을 겪진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한다. “요즘엔 작정하고 신상을 털기 시작하면 한 시간, 아니 5분도 채 안 걸려 이름과 나이, 사는 곳, 직업, 활동반경 등까지 알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부모가 무심코 올린 사진이 아이에게 평생 꼬리표로 따라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어느 것 하나 함부로 온라인 상에 올릴 수 없어졌어요.”

    범죄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을 키우는 워킹맘 한수진(41·경기도 평택시)씨는 며칠 전 지인의 SNS를 보다가 심장이 철렁했다. 어린 두 남매의 목욕 사진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한씨는 “누나가 벌써 6살이고 동생도 4살인데, 발가벗은 사진이 SNS에 올라온 것을 보곤 너무 놀랐다”며 “아이 엄마는 ‘SNS 친구들과 친척들만 볼 수 있게 설정해둔 사진’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딸을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혹시라도 사진이 퍼져 소아성애자 등에게 악용될까 염려스러웠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아이들의 사진을 수집해 범죄 대상으로 삼은 한 인터넷 카페가 경찰에 적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프랑스에선 자녀 동의 없으면 징역형 또는 벌금 물기도

    해외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고 있다. 유럽에서는 과거 자신이 올린 정보를 비롯해 제3자가 게재한 글에 들어간 본인의 사적 정보까지도 모두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보장하고 있다. 특히 사생활 보호법이 엄격한 프랑스는 이를 더욱 강력하게 규제한다. 부모가 자녀 사진을 동의 없이 SNS에 올리면, 최대 1년의 징역형과 벌금 4만5000유로(약 5500만원)에 처할 수 있다는 등의 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 법 전문가들은 부모가 자녀의 초상권을 보호할 법적 책임이 있다고도 주장한다. 프랑스 인터넷 관련법 윤리 전문가인 에릭 델크루아(Eric Delcroix)는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를 통해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장성한 자녀가 부모를 상대로 인터넷에서 자신의 어렸을 때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소송을 걸 수 있다"면서 "자녀가 다 컸을 때 부모가 올린 유아기, 청소년기 사진을 보고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자녀에게 ‘디지털 주홍글씨’로 남을 수도⋯ 신중하게 올려라”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부모가 ‘SNS는 전파와 공유의 목적을 가진 매체’라는 점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SNS에 콘텐츠를 게시하는 행위는 언제든 이를 공유하고 내려받아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염흥열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부모가 처음엔 좋은 의도로 아이의 사진을 올릴 수 있지만,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달라지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른바 ‘디지털 주홍글씨’를 아이에게 남겨주지 않으려면 당장 눈앞에 상황뿐 아니라 먼 훗날까지도 내다보고 게시하라”고 조언했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대표변호사 역시 온라인 상에 올린 아이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할 시,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신중히 생각하고 올리라고 조언한다. 김 변호사는 “SNS에 전체 공개한 콘텐츠는 다른 사용자가 검색이나 조회, 사용, 공유해도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 도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SNS에 올린 사진을 무단으로 복제했을 때 형사상의 법적 처벌은 어렵기 때문에, 아이 사진을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신중히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