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엄마 아닌 ‘늦은 엄마’라 불러다오” 나이 많아 서러운 늦둥맘들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7.02.22 16:31

-신조어∙줄임말 등으로 세대차이 느껴
-전문가 “온라인보단 오프라인 모임으로 소통해야”

  • “29개월 아들을 둔 72년생, 늦둥맘(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엄마를 일컫는 말)이에요. 며칠 전부터 아이가 갖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장난감이 있어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어요. 마침 한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 중고 장터에 찾던 물건이 올라온 걸 보곤 반가운 마음에 곧장 사이트 회원가입을 눌렀는데, 그만 울컥했어요. 전 가입 요건도 되지 않는 엄마더라고요. 76년생부터 가입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죠. 나이 들어 아이 낳은 게 죄도 아닌데, 왠지 서러워요.”(김지현· 가명·서울 마포구)

    ◇“내 나이가 어때서, 육아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최근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늦둥맘들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임산부 4명 중 1명은 나이가 35세 이상인 ‘고령 산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고학력화 현상과 혼인 연령이 늦어지면서, 출산 나이도 동시에 높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나이 어린 엄마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울해하는 늦둥맘들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첫 아이를 낳고 현재 육아휴직 중인 늦둥맘 김미숙(가명·46)씨는 “며칠 전 아이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갔는데, 주위 엄마들이 ‘할머니가 젊어서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며 “제가 속상한 것보다, 행여 우리 아이가 나중에 나이 든 엄마를 부끄러워하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두 돌 된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민지영(가명·45)씨는 젊은 엄마들에 비해 ‘체력적 한계’를 가장 많이 느낀다고 했다. 민 씨는 “회사 내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들은 퇴근 후 집에서 책도 읽어주고 주말엔 여기저기 체험하러 다닌다고 하는데, 저는 집에 돌아오면 아이와 놀아주긴커녕 밀린 집안일 하기도 버겁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고민은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진다. 모바일 메신저나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 등에서 신세대 엄마들이 자주 사용하는 신조어, 줄임말 등을 이해하지 못해 당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에 첫 아이를 출산한 이강희(가명·44)씨는 아이의 유치원 친구 엄마들과 친해지기 위해 단톡방(단체 메신저 대화방)에 들어갔다가 알 수 없는 외계어로 가득한 대화 내용을 보곤 깜짝 놀랐다. 이 씨는 “며칠 전 ''애유엄브(애는 유치원 보내고 엄마끼리 브런치)'하러 가요.' '오늘 문센(문화센터) 끝나고, #G(샵지=시아버지) 생선(생일선물)사러 송현아(송도현대프리미엄아울렛) 같이 가실 분 있나요?' 같은 글이 올라왔는데, 도통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며 “한두 번은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겠지만,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신조어와 줄임말을 알려달라 말하기도 민망한 노릇”이라고 한숨지었다.

    이런 상황은 학부모가 되면 더욱 두드러진다.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두 딸을 키우는 최진아(가명·52)씨는 지난해까지 학교 학부모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다른 젊은 엄마들과 정보를 교류하며 학교 돌아가는 상황이나 교육 트렌드 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최 씨는 “이젠 ‘왕언니’ 역할도 지친다”며 올해는 잠시 활동을 쉬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다른 학부모회 엄마들과 기본 10살 이상 차이 나요. 그렇다 보니, 하기 어려운 일들은 제가 총대를 메고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어요. 예컨대, ‘담임 선생님께 드리기 어려운 건의사항을 ’왕언니’가 대표로 말해달라’는 식이에요. 본인이 하기 어려운 말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기 어려운 법인데, 자꾸 저더러 말하라고 하니 부담스러워요.”

    ◇“육아에도 연륜의 힘 필요해”

    물론 늦둥맘이라는 점 때문에 서러움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 시기를 현명하게 넘긴 선배 늦둥맘들은 연륜의 힘을 장점으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올해 중학교 1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을 키우는 김정희(가명·55)씨는 아이 키우면서 젊은 엄마들이 가진 활력만큼이나 세월이 주는 지혜와 경험도 컸다고 귀띔했다. 김 씨는 “아이 교육에 늘 조급해하는 젊은 엄마들과 달리, 연륜 있는 엄마들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여유로운 것 같다”면서 “아울러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안정돼 있어 아이가 바라는 걸 쉽게 해줄 수 있단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아이 덕분에 더 젊게 사는 것 같다고 말하는 엄마들도 있다. 장은주(가명·52)씨는 10살 정도 차이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엄마 나이는 아이 나이에 따라 가는 것 같아요. 우리 아이가 5살이라면 엄마도 5살인 거죠. 엄마 대 엄마로 만나 이야기하면, 나이, 학력, 직업 등의 구분 없이 모두가 똑같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일 뿐이에요. 나이 어린 엄마들이라도 제가 보고 배울 점이 많고, 저 역시 알려줄 수 있는 부분이 있고요. 젊은 엄마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요즘 유행도 미리 알고 더 젊게 사는 것 같아요.”

    ◇전문가 “엄마들 관계, 아이 친구관계로 이어져”

    전문가들은 아이가 학교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엔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 부모의 역할이 크다고 말한다. 엄마들 간의 유대관계가 아이들의 친구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일부 늦둥맘 중에서는 아이를 위해 모임에 나가고 싶지만,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괜한 소외감이나 세대차이를 느낄까 두려워 온라인으로만 소통한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임재인 서울수마음클리닉 원장은 이런 고민하는 늦둥맘들에게 온라인보단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 대면하라고 조언한다. 임 원장은 “문자나 통화로만 대화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며 “될 수 있으면 시간을 내 주위 엄마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더불어 임 원장은 늦둥맘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자’의 역할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했다. 젊은 엄마들보다 사회 경험이 더 많은 늦둥맘들이 다양한 조언을 해주며 서로 이해하고 친해지는 기회를 만들라는 것이다. 임 원장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언하되, ‘경청’이 먼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자칫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으로 각인되지 않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엄마의 노력은 아이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임 원장은 “아이 중에서도 간혹 ‘우리 엄마가 다른 친구 엄마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하지만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자주 어울리고 그 무리에서 인정받고 있단 사실을 알면, 아이의 자존감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