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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물리 공식 외우는 대신 세상에 없는 제품 만들어보라"

〈특별취재팀〉
김연주 기자
박승혁 기자
최원우 기자
김지연 기자

2017.01.02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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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신년특집]
[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1] 서울대 교수들의 도전

서울대 '창의적 제품 개발' 수업
학생들, 발로 뛰며 전문가 만나 공기청정 오토바이 헬멧 등 톡톡 튀는 상품 직접 만들어내
창의성 점수도 실제로 높아져 "중·고교때부터 이렇게 배워야"

서울대 39동 지하 2층 아이디어팩토리. 3D 프린터와 절삭기까지 갖춰진 공대생들의 공간이다. 지난 11월 기계항공공학부 박명선(3년)·김민규(4년)씨는 하루 11시간씩 이곳에서 지냈다. 곧 중국 베이징에서 '글로벌 창의적 제품 개발' 수업 최종 발표회가 있는데, 이때 선보일 '아로마 디퓨저'를 만드는 작업이 막바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시간을 설정하면 로즈메리 등 5가지 향을 자동 분사하는 제품이다. 두 학생이 스마트폰으로 화상 전화를 걸자 홍콩과기대 학생 4명이 등장했다. 박씨가 영어로 "기계를 다시 만들 테니까, 동작 코딩 좀 바꿔달라"고 하자 화면 속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문제 찾고 해결"

이 수업은 한 학기 동안 서울대·홍콩과기대·칭화대·베이징항공항천대 등 4개 대학 학생 60여 명이 조를 이뤄 세상에 없는 창의적인 제품을 제작하는 과정이다. 학생들은 평소엔 화상이나 채팅으로 회의를 하고, 3개국 교수 10명이 일주일에 한 번 돌아가면서 화상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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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창의적 도전자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자 -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대 공대생의 창작 공간인 ‘아이디어 팩토리’에서 학생들이 직접 만든 로봇을 들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 학생들은 지난 한 학기 동안 ‘이 세상에 없지만 꼭 필요한 로봇 제작’에 도전했다. 그 결과 치매 환자 치료 로봇, 기러기 아빠와 유학생들의 감정을 읽는 로봇, 맞벌이 부부 자녀와 놀아주는 숨바꼭질 로봇 등이 줄줄이 탄생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 도전자가 절실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 교육 현장에도 변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태경 기자

이 수업은 '창의성 교수 모임'의 일원인 김성우 공학연구원 교수가 제안해 지난해 만들었다. 김 교수는 요즘 다국적 수업을 운영하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학생들을 도와주랴, 연구를 못 할 지경이다. 주위에선 "수업을 안 해도 되는 연구 교수가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의아해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치고 2014년 다시 서울대에 돌아왔는데, 커리큘럼 등 변한 게 하나도 없어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물리·화학·수학 등 이론 위주 강의가 대부분이고, 학생들이 교수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려웠다. 질문과 토론 없는 수업 속에 학생들은 방치돼 있었다. 시대가 원하는 엔지니어상(像)은 변했는데 교육은 그대로였다. 김 교수는 "욕심 있는 애들은 수업은 안 듣고 동아리 같은 데서 혼자 공부하고 있는 것이 내 학부 때랑 똑같았다"며 "안 되겠다 싶어서 이런 수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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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대 공대 아이디어팩토리에서 ‘글로벌 창의적 제품 개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본인들이 개발한 ‘아로마 디퓨저’와 ‘공기청정 오토바이 헬멧’을 보면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처음 학생들에게 실생활에서 해결할 문제를 찾아보라고 하니 우산, 유모차, 버스 등 뻔한 얘기만 나왔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 전문가를 만나보고 부딪칠수록 참신하고 수준 높은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세 먼지를 걸러주고 신선한 공기가 나오는 '공기청정 오토바이 헬멧' '1인 가구 아침 배달 시스템' 같은 제품이 만들어졌다. 조시현(자유전공학부 2년)씨는 "경영학 수업 때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배웠는데 이번 수업에서 직접 체험하니까 생생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준현(재료공학부 3년)씨는 "문제를 찾고 해결책 제시까지 스스로 해보면서 실무 능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교수진이 2015년 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평가했더니 시작할 때 5.30(7점 만점)에서 끝날 때 6.42점으로 높아졌다.

"이런 수업을 중·고교 때부터 했어야"

시간 투자가 어마어마한 수업인데도 학생들의 강의 만족도(4.71·5점 만점)는 공대(4.11), 서울대(4.19) 평균보다 높다. 무엇보다 "많이 배우고, 느끼고, 창의성이 좋아진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다.

공기청정 오토바이 헬멧을 개발한 최재용(기계항공공학과 3년)씨는 "이런 수업을 중·고등 때부터 받았으면 진짜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씨는 "한국 애들은 좋은 학점 받고 졸업해 취직하는 게 목표인데, 홍콩과기대 학생들은 학점은 덜 챙기고 자기가 좋아하는 수업이면 열심히 하더라"며 "점수에 매달려 사는 우리 애들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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