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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호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미국 우주왕복선에 대해서 설명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우주왕복선의 개발 동기부터 살펴보면, 아폴로(Apollo)호 이후 NASA는 우주탐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12명이 상주 가능한 우주정거장을 1975년까지 건설하고, 이후 50명에서 100명이 상주 가능한 우주정거장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우주 정거장을 만들어 운영하려면 지구와 우주정거장을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우주왕복선이 필수적이었죠. 또한 비용절감을 위해서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한 재사용 우주 비행체(Reusable Vehicle) 제작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닉슨 대통령은 NASA의 개발 계획을 전면 보류하게 됩니다. 그래서 NASA는 우주정거장 계획을 뒤로 미루고 일단 우주왕복선 제작을 계획하게 됩니다. 개발하려는 우주왕복선의 목적도 연 50개 정도의 인공위성을 우주궤도에 실어 나르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해 닉슨 대통령 주도 아래 정부 승인을 1972년 1월 5일에 받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주왕복선이 일회성이 아니라 재활용이 가능하고 날개 구조를 가진 우주 비행체라는 점입니다.
3년의 기획 및 9년의 연구개발 기간을 거친 다음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는 1981년 4월 12일에 첫 비행을 하게 됩니다. 4번의 성공적인 비행 후 미국 독립기념일인 1982년 7월 4일에 레이건 대통령은 우주왕복선이 ‘Fully Operational (완전히 운영 가능함)’ 하다고 선언을 하죠. 1985년에는 우주왕복선이 4대 콜롬비아(Columbia)호, 챌린저(Challenger)호, 디스커버리(Discovery)호, 그리고 아틀란티스(Atlantis)호 규모로 본 대열을 갖추게 됩니다(https://en.wikipedia.org/wiki/Space_Shuttle).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미국 우주왕복선이라고 하며 ‘미국’을 넣어서 부르는 이유는 당시 러시아도 미국과 같이 ‘눈보라’라는 의미를 지닌 ‘Buran’이라는 우주왕복선을 자체 개발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왕복선을 구별하기 위해서죠. 러시아의 Buran은 1988년에 한 차례의 무인 시범비행까지 성공적으로 완료했으나, 예산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본격적인 우주비행에 투입되지는 않았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Buran_(spacecraft)). -
컬럼비아호, 챌린저호, 디스커버리호, 그리고 아틀란티스호 등 4대의 미국 우주왕복선이 교대로 우주 궤도를 왔다 갔다 하던 중, 1986년 1월 28일에 챌린저호가 발사 후 공중 폭발을 하면서 소중한 7명의 우주인 생명을 앗아가게 됩니다. 이로써 미국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은 큰 위기를 맞게 되죠. 우주왕복선의 안전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NASA는 서두르지 않고 한가지 한가지씩 확인을 거듭하며 안전성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철저히 보완한 끝에 1988년 9월 29일에 비행을 재개해 안전성을 확인하고 그 임무를 계속 수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4대의 진영을 갖추기 위해서 1991년에 인데버(Endeavour)호를 추가로 제작하게 됩니다.
이렇게 미국 우주왕복선이 활발히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에, 미국 의회는 드디어 우주정거장 건설 계획을 승인하게 됩니다. 다만 부족한 예산 부분을 러시아, 유럽 그리고 일본 등 총 15개국과 함께 충당하기로 하면서 이름도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명명하지요. 국제우주정거장은 1998년 12월 4일에 본격적인 건설을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저는 보잉연구소에서 일하던 때였는데, 지난 호에 말씀드렸듯이 대한민국은 왜 참여를 안 하는지 마음이 무거운 시기였습니다.
아무튼 미국 우주왕복선은 2000년 10월 11일 100번째 비행을 성공적으로 이루는 역사적인 쾌거를 달성합니다. 우주왕복선의 미션 성공률을 당초 1/98의 확률로 예상했었으니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2003년 2월 1일 컬럼비아호가 지구 귀환 착륙 전에 공중 폭발을 하게 되면서 다시 소중한 7명의 우주인 생명을 앗아가게 되지요. 이로써 미국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은 이번에는 좌초 위기를 맞게 됩니다. 미국 우주왕복선을 제작할 당시인 1970년대에 예상 수명을 5~10년으로 예상했으니 오래 전에 프로그램을 종료시켰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NASA는 프로그램을 종료할 때 하더라도 미션 실패에 대한 이유는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의견을 모아 컬럼비아호 사고조사위원회(AIB)를 결성해서 분야별 전문가들로 팀을 이뤄 실패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규명해 내게 됩니다. 규명된 사항을 보완해 다시 2년이 넘어선 시점인 2005년 5월에 디스커버리호가 다시 비행에 성공하죠.
1970년대에 제작한 우주왕복선을 21세기 기술을 이용해 새롭게 만들자고 하는 의견도 많았지만 개발비용이 너무나 많이 들기 때문에 미국과 NASA는 우주왕복선을 더 활용하기로 결정하게 되고 6년이 지난 시점인 2011년 7월 21일에 아틀란티스호의 마지막 비행으로 미국 우주왕복선 30여년의 역사는 시대가 끝이 나게 됩니다. -
이번 칼럼은 저와는 유난히도 인연이 많았던 미국 우주왕복선에 대한 이야기를 끝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7살 때인 1969년에 NASA 아폴로 13호가 달에 착륙하는 장면을 TV로 시청하고, 이후 TV에서 ‘6백만불의 사나이’를 시청하면서 NASA라는 이름을 막연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대학에 진학한 1981년에 NASA 미국 우주왕복선의 첫 비행장면을 보게 되면서 막연하게 NASA는 굉장한 곳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미국 UCLA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 해인 1988년에 지도 교수님 덕분에 미국 우주왕복선의 착륙 현장을 NASA를 방문해서 직접 보게 됐습니다. 우주왕복선이 착륙할 때는 음속폭음(sonic boom)이라는 굉음이 들렸는데(이는 초음속 전투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나는 소리와 유사한 것) 그 충격파는 매우 강했고 또한 짧은 시간 내에 두 번의 굉음이 들려 놀랍고 신기했어죠. 나중에 문헌 조사를 해보니 이중 음속폭음이라 하여 우주왕복선의 경우는 두 번 들린다고 하더군요. 다만 그 장면이 결국에는 우주왕복선의 착륙 장면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직접 본 기회가 되었지만, 그날의 가슴 뭉클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졸업 후 취업한 보잉연구소에서는 실물 크기에 우주왕복선 Mock-up에 들어가 볼 수가 있었고, 1998년에는 우주왕복선의 성능 향상을 위한 연구 개발에도 직접 참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체험했죠 2000년에 NASA 책임연구원으로 이직한 다음에는 컬럼비아호 사고를 접했고 사고의 원인 규명을 하는 연구 현장을 직접 지켜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 서울대학교 임용 이후에는 한국에서 아틀란티스호의 마지막 비행을 NASA TV를 통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제게 미국 우주왕복선이란 1) 지구에서 우주로 왕복하는 비행체이면서 캡슐 형태가 아니고 날개를 단 형태로 지구에 귀환하여 자연스럽게 착륙 2)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한 시스템 3) 1회 비행에 7,000억 정도가 소요 4) 7명의 우주인이 왕복하는 우주선이고 17.6일의 최장기 비행 기록 보유 5) 기존 계획과 달리 30년 임무 수행 등의 면에서 그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NASA 이야기 ⑥] 미국 우주왕복선(The US Space Shut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