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학생 번호 부르기 금지법 발의됐다는데…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1.29 15:40
  • “오늘은 29일이니까 29번 일어나서 책 읽어보자.” 교실에서 이름 대신 번호로 학생을 부를 수 없도록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22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설훈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 12명이 17일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18일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회부됐다. 이로써 일명 ‘학생 번호 부르기 금지법’이 향후 통과될지에 대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측은 수업시간에 번호로 학생을 부르는 행동은 학생이 자신을 비인격적 주체로 인식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설훈 의원은 “교사 편의를 위해서 수업 시간에 번호로 학생을 지칭하는 관행은 학생이 자신을 비인격적 주체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면서 “미국ㆍ영국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선진국은 학생에게 번호를 부여하지 않거나 부여하더라도 이름 대신 쓰는 경우가 없다”고 강조했다. 개정안에는 “교원은 학교생활기록 등 학생의 지도와 관리를 위해 학교가 사용하는 문서에 기재된 학생 개인의 고유 식별번호로 학생 개인을 지칭해 학생의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중3 아들을 둔 학부모 김성희(42ㆍ서울 노원구)씨는 “학창시절 선생님께서 번호를 불러서 발표를 시키거나 칠판 문제를 풀게 하는 경험을 자주 했었는데, 아들에게 물어보니 요즘도 그런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더라”며 “구태를 벗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학교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고 맞서고 있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백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교원들에게 학생의 이름을 모두 외워 부르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학생 이름을 모르면 학생을 외면하게 하여 교원의 교육활동만 위축시킬 뿐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최대 교원단체인 한국교육단체총연합회는 “교육 활동에서 비롯되는 호칭 문제까지 법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은 교원의 사기를 저하하는 행동”이라며 “현실을 도외시하고 법으로 교육활동을 통제하려는 법률만능주의적 발상인 만큼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한편 취지는 존중하지만 법으로 강제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학부모 이완근(44ㆍ 경기 용인시 수지구)씨는 “선생님 입장에서 조금만 바꿔서 생각하면 해결될 문제인데, 법안으로 만드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며 “옳은 일을 하겠다는 뜻을 앞세워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게 법률을 만들어 현실에 개입하려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립고등학교 국어교사 A씨는 “요즘 많은 선생님이 학생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노력한다”며 “학생의 이름을 아는데 번호로 부르는 일은 거의 없고, 학기초나 수업에 들어가지 않는 반을 시험감독할 때 등 이름을 모를 때만 번호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승호 아현산업정보고등학교 교장은 “소중한 인격체인 학생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교사의 의무이긴 하지만, 굳이 법으로까지 강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교육계의 자발적 노력이 옳다고 본다”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