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부가 중고교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을 오늘(28일) 공개했다. 베일에 가려진 집필진 31명의 명단도 함께 밝혔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개발했다”고 강조했지만 학계에서 건국 시점, 박정희 정권의 미화 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1948년 건국, 대한민국 정통성 강화 VS 보수 시각 반영
교육부가 밝힌 역사 국정교과서의 핵심은 대한민국의 정통성 강조다. 이 부총리는 “이념적 갈등을 해소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건국 시기와 관련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수정했다. 북한에 대해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국가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북한 정권 수립’으로 바로잡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명확히 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됐다’는 표현이 보수 학계인 뉴라이트의 ‘건국절’ 개념을 수용하는 개념이라는 비판을 제기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한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관계자는 이날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명기하는 등 친일 및 독재 미화 등이 반영된 국정교과서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시위를 벌인 ‘국정화교과서 반대 청소년행동(틴즈디모)’의 엄재연(강원 속초고 3)군은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서 국정교과서를 개발했다고 하는데 하나의 해석만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게 말이 안된다”며 “학생이 역사적 사실을 두고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박정희 정부, 경제 성장에 대한 긍정적 측면 강조
이승만, 박정희 정부의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한미 상호 방위 조약 체결’이나 ‘대한민국 수립 초기 의무교육과 문맹퇴치 노력’ 등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은 이전보다 강조됐다.
박정희 정부의 5·16 군사 정변 관련 내용도 논란이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5·16 군사 정변’에서 쿠데타 주도 세력이 내세운 혁명 공약은 본문 해설과 거의 같은 분량으로 노출할 만큼 비중이 크게 표현됐다.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한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한다’는 등 미사여구로 포장된 혁명 공약이 청소년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이다.
480여개 역사교육단체가 연합한 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이날 오후 2시 30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를 다루는 제목이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경제·사회 발전’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위기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극복됐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정희 정권 독재에 면죄부를 주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기존 교과서에 자주 등장한 쿠데타 이후 박정희 소장이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찍은 사진이 빠진 것도 “부정적인 박정희의 이미지를 순화하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경제 성장도 이병철, 정주영 등 기업인을 소개하는 식으로 긍정적인 점에 초점을 맞추고 정경유착 등 부정적인 측면을 줄였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도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의 역할을 존경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포함시켰다”며 “한편 초기 노동운동의 근로 조건이 열악했다든가 유신 때 노동 운동을 탄압하는 등 고도성장의 그늘을 서술하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31명의 집필진이 중학교 ‘역사’ 고교 ‘한국사’ 집필
교과서 내용과 함께 이날 공개된 집필진은 총 31명이다. 고등 한국사 교과서에 27명,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31명이 각각 집필에 참여했다. 당초 46명으로 알려진 인원의 3분의 2 수준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대의 특성, 분야 등을 고려해 중학교, 고등학교를 구별하지 않고 집필진이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공통적으로 집필했다”고 밝혔다.
한편 근·현대사 집필진의 보수적인 이념 편향 탓에 논란이 일고 있다. 근·현대사 집필진 11명 중 4명이 뉴라이트 계열로 알려진 ‘한국현대사학회’ 소속이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이민원 동아역사연구소장,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 등이다.
현대사 집필진에 정통역사학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점도 지적을 받고 있다. 6명의 집필진 모두가 법학, 정치학, 경제학, 군사사학 등을 전공했다.
도종환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더불어민주당 간사를 포함한 교문위 야당 의원들은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공개 후 국회 정론관에서 회견을 열어 집필진의 역사관 편향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도 의원은 “오늘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는 박정희 치적을 강조하는 ‘박근혜 교과서’이며 대한민국의 임시정부 역사와 항일독립운동사를 축소한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였다”고 했다. -
<국정교과서 집필진 현황>
-
현장 검토본은 국정교과서 전용 홈페이지(historytextbook.moe.go.kr)서 오는 12월 23일까지 확인할 수 있다. 검토본에 대한 의견도 이날까지 수렴할 예정이다. 휴대전화나 공인인증서, 공공 아이핀으로 본인 인증을 거치면 의견을 제출할 수 있고 이 의견은 공개되지 않는다. 접수된 의견은 국사편찬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의 검토를 거쳐 2017년 1월 말로 예정된 최종본 확정 시 반영될 수 있다.
내년 3월로 예정된 국정교과서 적용 시기는 오리무중인 상황이다. 교과서의 향후 현장 적용 방안 및 시기는 국민 의견 수렴이 끝나는 내달 23일까지 결정될 예정이다. 교육부는 국정, 검정교과서 혼용이나 국정교과서 적용 시기를 1년 늦추는 등 대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 부총리는 국정교과서 현장 적용에 대해 “원래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다”면서도 “현장에서 혼란 없이 역사 교육이 이뤄지도록 가능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안 중) 아직 결정된 바가 없어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다.
공개된 국정교과서… 1948년 건국 등 이념 논쟁에 불씨 지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