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빠&할마의 육아톡톡⑥] “아이 부모를 믿고 따라주세요”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0.26 16:57
  • 조순영씨가 손자 기윤이, 세쌍둥이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 조순영씨가 손자 기윤이, 세쌍둥이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아이를 부모처럼 맡아서 교육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일컬어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조선에듀는 맞벌이 부부 시대에 실질적인 육아와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을 차례로 만나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여섯 번째 주인공은 세 쌍둥이 손자의 육아를 도운‘할마’ 조순영(69)씨다.

    ◇100만분의 1로 만난 기적 같은 손자들

    2009년 7월 29일은 조씨가 평생 잊지 못하는 날이다. 세쌍둥이 손자가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오후 7시 55분에 첫째 기헌, 7시 58분에 둘째 기환, 8시에 막내 기웅이가 차례로 세상에 나왔다. 기쁨도 잠시,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난 손자들은 엄마 품에 안겨 보지도 못한 채 신생아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 날이었죠. 28주 1일 만에 1kg 초반대로 아이들이 태어났어요. 임신기간 내내 며느리가 걷지도 못하고, 숨도 잘 쉬지못해서 링거를 달고 살았죠. 다행히 순산이었지만 미숙아였던지라 서울대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어야 했어요. 손바닥만 한 작은 몸 여기저기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는 것을 보니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세 아이가 모두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하고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었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조씨와 아들 내외의 몸은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으로 바빠졌다. 아들네 집은 청주. 아들과 며느리는 아이들에게 먹일 모유를 가져다 병원으로 나르기 위해 왕복 3시간 거리를 며칠 간격으로 오갔다. 조씨 역시 아들내외와 손주를 챙겼다.

    “세쌍둥이 손자가 몇 달간 신생아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입원 기간에도 병치레가 잦았어요. 태어난 지 40일 만에 전신마취를 하고 안과 수술을 하기도 했고요.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하고 아이들 걱정만 하는 며느리가 너무 딱해서, 제가 어떻게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인공수정이 많아서 세쌍둥이 태어날 확률이 조금 높아졌다지만, 저희 아들네처럼 자연임신으로 인한 확률은 거의 100만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렇게 귀한 손자들이 어렵게 저희에게 왔으니 어떻게라도 도움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몇 달 만에 퇴원하고부터는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됐다. 세 쌍둥이, 그리고 위에 첫째 아들 기윤이(10)까지 사내아이 넷을 돌보는 일은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했다. 하루 젖병 40개를 두 번씩 씻고 건조하고, 밤낮 없이 안고 먹이는 일상이 이어졌다. 아들과 며느리는 매일 쪽잠을 자기 일쑤였다. 결국 조씨는 아들네를 집 근처로 불러들였다.

    “아이들과 같이 살고 싶었지만, 당시 연세가 90이 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형편이라 그럴 수가 없었어요. 마침 그때 어머니가 낙상을 당하셔서 고관절 수술을 받고 한 달 이상 병원에 계셨거든요. 아들이 이사하고부터는 매일 아들 집에 가서 손자들을 돌봐줬죠. 그 이후부터는 등줄기에 땀이 가실 사이가 없었지요.”

  • ◇며느리와 메일 교환 하며 속 얘기 나눠
    조씨는 1970년에 KT에 입사해 1999년에 명예퇴직했다. 30년간을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워킹맘으로 살았다. 9대 종손의 종부로 일 년에 제사 8번 이상을 지내며 매일같이 바쁘게 지낸 그의 꿈은 늘‘편안한 노년을 보내는 것’이었다. 평소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취미생활을 하면서 젊은 시절 못 누린 여유를 누리고 싶었다. 퇴직 후 주민센터 등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갈 무렵, 맏아들이 세쌍둥이를 가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왔다.

    “처음에는 정말 많이 당황했어요. 모른 척 하고 싶었어요. 이제 조금 편안해졌는데, 또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속상했습니다. 그런데 고생하는 아들 내외를 보자 절대로 그냥 넘길 수가 없었어요. 특히 아들 넷과 혼자서 씨름하고 있을 며느리를 생각하면 너무 짠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죠. 바빠서 많이 챙겨주지 못했음에도 반듯하게 잘 커준 맏아들에게 진 빚도 내내 마음에 걸렸지요. "

    귀여운 네 명의 손자를 며느리와 함께 돌보면서 점점 생각이 변했다.

    "늙어서는 고독이 제일 무서운 병이라는 데, 그럴 사이 없이 사는 지금이 행복한 거 아니겠느냐고 말이에요. 지금이야말로 가장 절실하게 저의 힘이 필요한 가족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니, 그 어느 때보다 보람 있는 시기가 아니겠느냐고 생각했어요. 몸은 비록 고달프지만, 마음은 편안하니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조씨는 아이들과 함께한 일상을 매일 육아일기로 남겼다. 훗날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되살려주고 싶어서다. 글을 모아 2013년에 '할머니가 쓴 세쌍둥이 육아일기’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며느리와 메일을 교환하며 아이들과 함께한 일상을 서로 나눴다.

    “저는 진심으로 며느리를 존경해요. 아들 넷을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지금까지 한 번도 제 앞에서 짜증을 낸 적이 없어요. 아마도 시어머니인 제가 어려워서 스스로 조심했기 때문이겠죠. 그런 부분이 며느리에게 참 고마워요. 서로 부대끼고 오랜 시간 같이 있다 보면, 상대방의 단점이 보이고 실망하기 마련이에요. 저 역시 며느리에게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잔소리를 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그렇게 평생 서로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메일을 써서 주고받아요. 감정을 가다듬고 글을 쓰다 보면 한 번 더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지요. 주변의 많은 조부모가 손주 육아를 놓고 자식 내외와 갈등을 겪는 것을 봤는데, 본인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허심탄회한 대화는 기본이지요.”

    조씨는 아들 내외의 교육관을 존중한다. 어떤 방식으로 교육하든지 그들을 믿고 그대로 따르는 편이다. 그는 “자식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인 것 같다”며 “조부모가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기 보다는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손주를 곁에서 돌볼 자식의 의견을 따라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