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특기자 양성한다는 정부… 기업은 ‘글쎄’
김세영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0.24 16:02
  • 다양한 스펙을 갖춘 공대 출신 취업 준비생들이 정작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다양한 스펙을 갖춘 공대 출신 취업 준비생들이 정작 프로그램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들이 SW(소프트웨어)특기자전형을 확대하는 추세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선정한 SW중심대학인 카이스트·성균관대 등 14개교는 2019학년도까지 SW 특기자 전형의 모집 정원을 총 438명(2017학년도 30명)까지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올림피아드 수상 실적 등을 요구해 사교육을 유발한다는 논란이 일었지만, 국가 미래를 좌우할 산업 분야의 영재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과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는 반색하면서도 갸웃하는 분위기다. SW 인재를 키우겠다는 의도는 좋으나,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대학이 제대로 교육해 내보낼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사람은 많은데 인재가 없다… 프로그램 못 만드는 공대생 다수

    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은 “SW분야를 포함한 이공계 졸업생은 이미 넘쳐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공대 졸업자 수는 인구 1만 명당 10.9명으로, 프랑스(5.8명)·독일(5.5명)·영국(4.4명)·캐나다(3.7명)·미국(3.3명) 등 선진국의 2~3배에 달한다. 프라임(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 대학)사업 등으로 전국 이공계 학과도 크게 증가해 2017학년도엔 공학 관련 학과가 1603개나 된다. 여기에 얹어, 정부가 SW특기자전형으로 2019학년도 기준 438명을 선발하겠다는 계획을 추가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불만은 뽑을 만한 신입사원이 없다는 데 있다. 한 대기업의 IT 계열 연구소 관계자는 “공대생 숫자를 늘릴 게 아니라 질(質)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15년가량 IT 업계에서 근무한 이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신입사원 지원자의 ‘스펙’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공인 영어 인증 시험부터 각종 자격증과 어학연수 경험까지 다양한 조건을 갖춘 인재가 넘친다. 하지만 이런 스펙은 실무 능력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그는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목표가 아니라 취직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것처럼 보이는 스펙이 다수”라며 “화려한 스펙이 곧 실무 능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학점은 높은데 정작 프로그램 하나도 못 만드는 공대생이 적지 않다. 에듀테크 스타트업 소프트펍의 박희종 대표는 “대학에서 컴퓨터 언어는 배우지만, 그걸 실제로 어떻게 활용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라며 “학점이 4점대로 만점에 가까울 만큼 높은데 간단한 프로그램 제작을 시켜보면 난감해하는 지원자도 많다”고 했다.

    수도권 대학 컴퓨터공학과에 재직 중인 교수는 “실제로 기업에 근무해본 경험이 없는 교수들이 이론만 가르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그 이론도 케케묵은 내용이라 현실적으론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업계 트렌드를 파악하고 실무 역량을 키우려면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산학 협력을 현장 중심으로 내실 있게 진행해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 교수는 “최근 산학 협력을 활성화한다고는 하지만, 막상 기업에서 잡일만 하다가 실망하고 오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대학과 기업 모두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에서 스펙 쌓고 대기업으로

    대학이 제공하지 못하는 실무 경험을 스타트업에서 얻으려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IT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K씨는 “그간 인턴십 제도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경험과 훈련을 제공했지만, 대기업에 가기 위한 ‘스펙 쌓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동료로 키우고 싶어 인턴에게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정작 학생들은 ‘대충 시간만 채우고 경력 한 줄 추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눈에 보여 속상했다”고 했다.

    기껏 신입사원을 뽑아 일을 가르쳐 봤자 1~2년 만에 경력직으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중견 벤처 대표 P씨는 “처음에는 오래도록 함께할 동료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신입사원을 뽑아 훈련시켰는데 정작 일을 할 줄 아는 시기가 되면 대기업으로 가더라”며 “몇 번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이제는 경력직만 뽑는다”고 말했다. 9년째 IT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벤처 대표 K씨는 “대기업의 경직된 문화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인재들이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면서도 “솔직히 대기업에 지원했다 떨어진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스타트업으로 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복지와 급여 면에서 스타트업이 대기업보다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대생 대다수가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것으로 알려진 해외 명문대 상황과는 차이가 크다.

    ◇대학에서 협업 프로젝트 경험 늘려야

    산업계는 학생들이 질 높은 산학 협력과 성실한 인턴십 등을 통해 실무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수영 퀄슨 대표는 “단순히 SW 스킬을 배우는 데서 더 나아가 기획 감각까지 길러내는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되면 학생과 기업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IT 대기업을 거쳐 현재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김도현씨는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협업 능력”이라며 “교내외에서 다양한 협동 프로젝트를 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IT 업계에는 여럿이 힘을 모아 완성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대부분인데, 남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협동하지 못하는 이들은 적응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