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 학습력 높이는 건강 플러스] ⑮ 분노조절장애
박기석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0.21 11:16
  •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화를 조절하지 못하겠다고 호소하던 한 여고생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대화만 했다 하면 화를 냈죠. 심지어 부모가 ‘밥 먹고 나가라’는 말에도 화를 버럭 내버리더군요. 이 때문에 두통과 생리통까지 심해질 정도였어요. 이 학생은 ‘부모님이 자신의 진로에 관해 잔소리를 너무 해서 화가 계속 난다’며 ‘부모님과 떨어져 살 수 없으니 매일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분노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고 단지 ‘부모님 때문’이라고 단정 지어버려 문제가 계속됐던 거죠. 사실 근본 원인은 중학생 때까지 최상위권이었던 성적이 고교 입학 후 중하위권으로 하락한 데 있었죠. 그런데 최소 SKY 대학이 아니면 대학에 안 가겠다는 태도를 보였어요. 이런 상황이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전환돼 부모에게 분노를 퍼부었던 것입니다. 학습 목표를 현실적으로 수정하고 상담치료를 병행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중 2병, 초 4병 등 청소년의 반항이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 불안 장애, 가족 상담 등 치료를 15년 이상 담당한 강용혁 경희마음자리한의원장은 “갑자기 화를 심하게 내는 경우를 분노 발작이라고 한다”며 “당사자나 상대방이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분노의 정도가 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화를 내는 경우”라고 했다. “청소년기에는 부모 등 가족을 대상으로 화를 폭발시키는 경우가 많지만, 사춘기 문제라고 가볍게 넘기면 문제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래 얌전했던 아이가 과도한 분노를 보인다면 분노조절장애를 의심할 만하다. 이런 아이는 특정한 상황이나 주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상식적인 선을 벗어나 충동적이고, 폭발적으로 표출할 때가 잦다. 화를 내는 상황이나 명분 등이 일반적이지 않는 게 특징이다. 예컨대 ‘방 좀 치워라’라는 부모의 말 한마디에 욕설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며 폭발하는 식이다. 이때 주먹을 꽉 쥐거나 턱이나 다른 부위에 근육 긴장이 동반되는 모습도 나타난다. 부모를 노려보거나 눈 맞추는 것을 회피하는 등 분노를 신체언어로 표출하는 일도 있다.

    분노 표출 대상은 부모, 교사 등 주로 권위적인 기성세대다. 이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는 문제도 생긴다. 문제가 악화하면 친구, 자기보다 약자 등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나 다른 대상으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지적당하는 양상에 민감하다. 본인의 의견이 수용되지 못하는 느낌만으로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면서 공격적이거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주변 기물을 부수는 폭력, 부모나 타인에게 욕설·반항하는 형태로 이어지기도 한다.

    분노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서 책임과 원인을 찾으려는 태도도 보인다. 초기 단계에는 자신의 분노 폭발이 지나쳤다는 점을 인정하다가도 나중에는 주변 탓을 하는 경향이 심해진다. 이는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노력이 좌절되는 등 부정적 정서가 존재할 때 더욱 심해진다. 자녀에게 후속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말리거나 제재를 가할 때 더욱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한다.

    근본 원인은 주로 소통의 부재에 있다. 부모, 친구, 학교와의 관계에 소통이 부재하거나 좌절감을 느낄 때 증상이 나타나는 게 대부분이다. 증상이 최근 시작됐더라도 근본적인 원인은 훨씬 예전부터 누적됐던 경우가 많다. 아이가 부모를 더는 신뢰하지 않게 돼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부모가 홀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제삼자의 도움을 받아 소통하는 게 필요하다.

    우선 아이와 분노를 표출하는 대상 간에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강 원장은 “차갑게 식어버린 아이의 마음에 한 줄기 따뜻한 애착의 끈을 잇기 위해 치료자가 개입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적인 상담가, 치료자가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면 권위적 대상인 어른 등에 대한 조건 없는 반항심을 줄일 수 있어요. 그다음에는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분노조절장애는 단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모범적인 것만 요구했다 하더라도 훈육 방식에 차가움만이 존재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변하면 자녀는 부모를 다시 신뢰하게 됩니다. 얼어붙은 가슴을 조금씩 녹이고 그러면서 속 안에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학교 적응이나 부모잖아 간 관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첫 단계는 부모의 적극적인 경청이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눈을 맞추고 차분하게 듣는 일이다. 그러면서 부모가 아이의 분노에 어떻게 반응했고, 어떤 환경이 분노를 확산시켰는지 분석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 치료자가 서로 신뢰를 쌓고 협조할 때 분노조절장애가 해결 가능하다. 강 원장은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부모가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며 “아이만 뜯어고칠 게 아니라 부모가 옳다고 믿어왔던 양육방식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약물치료는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 후에 이용해야 한다. 양방에서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비정상적으로 과다 분비될 때 공격적인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세로토닌 분비를 줄이는 신경안정제 계통의 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한방에서는 교감신경의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는 화병 치료에 자주 사용하던 약재들을 활용한다. 분노조절장애는 단순히 약물만으로 없애기 어렵다. 근본 원인을 돌아보고 상담치료 등을 병행하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