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 텝스 만점자의 조언… “영어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것”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0.20 10:56
  • /임영근 기자
    ▲ /임영근 기자

    [영어 전문가도 쩔쩔매는 텝스에서 이공계열 출신 첫 만점 기록한 추호준씨]

    스물셋 공대생이 영어 전문가도 쩔쩔맨다는 국내 공인 영어 시험에서 만점을 받았다. 지난달 치러진 222회 텝스(TEPS)에서 최고점인 990점을 기록했다. 추호준(23·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3·사진)씨가 그 주인공이다.

    추씨는 지난 18일 조선에듀와의 인터뷰에서 “운(運)이 좋았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말했다. “사실 만점은 생각도 못 했어요. 듣기(Listening) 영역에서 헷갈리는 문제가 있었는데, 선택지 둘을 놓고 계속 고민했었거든요. 시험이 끝나고서도 그 문항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그래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운이 따랐던 것 같아요.”

    서울대가 주관하는 텝스는 이른바 ‘영어 고시(考試)’로도 불린다. 난도가 상당해서다. 서울대 텝스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999년 첫 시행 이후 17년간 990점 고지를 정복한 사람은 추씨를 포함해 단 다섯 명뿐이다.

    특히 추씨의 사례는 이례적이다. 이공계열 출신으로는 사실상 첫 만점자이기 때문이다. 텝스관리위원회와 각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역대 990점 만점자 중 세 명은 영어 강사, 나머지 한 명은 외고생이다.

    그는 만점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텝스 문(門)’을 두드렸다. 횟수는 10번 이상, 햇수로는 8년이나 걸렸다. “중 3때 처음 본 걸로 기억해요. 고교 입시가 계기였죠. 그 이후엔 만점이 목표였어요. 만점 받기가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고교 2학년 때 받았던 점수가 가장 아쉬웠는데, 985점이었어요. 이후엔 대입 준비하고, 신입생 생활 즐기느라 한동안 응시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군대에서 다시 (응시할) 동기를 얻었어요. 군인이라 응시료가 반값이었거든요(웃음). 당연히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고요. 덕분에 복학 후에도 목표를 놓지 않았어요. 매달 응시해서 반드시 만점을 달성하겠다는 다짐도 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목표가) 일찍 이뤄진 거죠.”

    추씨는 사실 초등 저학년 때만 해도 영어가 서툴렀다. 그는 “당시 제 영어 실력은 개(dog)와 같은 아주 쉬운 단어만 알던 수준”이라며 “영어를 아예 할 줄 몰랐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영어 초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달라졌다. 미국행(行)이 계기였다. “아버지가 3년간 미국 연수를 가게 돼, 가족 모두 그곳으로 떠나게 됐어요. 당시 제가 있었던 지역은 미국 뉴저지의 외곽이었는데, 그곳에선 한국 학생이 거의 없었어요.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엔 한 명도 없었죠. 영어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다행히 미국엔 이민자나 유학생을 위한 맞춤식 기초 과정인 ‘ESL’이 있는데, 그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어요. 영어만 익히고 사용하는 환경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도 점점 늘었죠.”

    ‘생존 영어’는 곧 ‘생활 언어’가 됐다. 추씨는 “2년간의 유학 생활 동안 거의 영어만 사용하다 보니 저절로 몸에 익더라”며 “한국에 돌아와서도 영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게 자연스럽게 유지돼 계속하게 됐다”고 했다. “영어와의 첫 만남이 대부분의 한국 학생과 달라서인지, 전 단 한 번도 ‘영어 공부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단지 ‘영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접했던 것뿐이죠. 예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비슷해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국어를 일상에서 사용하기 위해 익히는 거잖아요. ‘공부’가 아닌 ‘일상’으로 생각했던 게, 영어를 꾸준히 사용하고 활용할 수 있었던 이유였던 것 같아요.”

    추씨는 영어 실력 향상에 가장 큰 도움을 줬던 것으로 영어 원서를 꼽았다. 그는 이날 인터뷰 때에도 찰스 페로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의 책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를 가져왔다. 추씨는 “남들이 뻔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말로 영어 원서를 읽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관심 분야를 다룬 영어 원서를 읽으면 좀 더 오래 붙들 수 있다”고 했다. 추씨의 사례를 예로 들면, 어렸을 적 모험 소설을 좋아했던 그가 ‘나의 산에서(My side of the mountain)’나 ‘더 해쳇(The hachet)’과 같은 책을 원서로 읽는 식이다. 추씨는 “두 책은 어휘가 크게 어렵지 않아 입문용으로도 적합하다”고 했다.

    위키피디아 영어판도 추천했다. “전 어떤 개념이나 지식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위키피디아 영어판에서 검색해요. 자료가 풍부해서 관련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있거든요. 특정 분야에 대해 검색을 했다는 것은 관심도 있다는 것이니까, 당연히 집중도 될 거고요. 또 여러 정보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지식도 확장할 수 있어요. 한국어로 된 정보보다는 영어로 쓰인 정보를 보는 습관을 들이면 (영어를 익히는 데) 더 효과적일 거예요.”

    추씨는 “청소년들이 앞으로 내신·수능용 영어 학습에만 열중하지 말고, 영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고 했다. “수능 영어 만점 받은 사람 중에서도 영어를 제대로 쓸 수 있는 분들은 정작 많지 않아요. 영어를 익히는 목적이 문제 풀이였기 때문이죠. 이젠 수능 이후는 물론 더 멀리까지 봐야 해요. 요즘 대학교에선 대부분의 전공 서적이 영어로 돼 있고,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도 많아요. 취업 때나 그 이후에도 당연히 영어 능력은 필요하죠. 앞서 얘기했듯이, 영어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대로 쓸 줄 안다면 점수도 당연히 따라올 거예요. 영어를 익히는 목적을 바꾸고,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영어로 꾸준히 접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