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빠&할마의 육아톡톡⑤] “손주와 여행을 떠나보세요”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10.19 16:27
  • 아이를 부모처럼 맡아서 교육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일컬어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조선에듀는 맞벌이 부부 시대에 실질적인 육아와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을 차례로 만나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네 번째 주인공은 어린 손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자 여행을 떠나는 ‘할마’ 이점우(71ㆍ사진)씨다.

    ◇3세 이전에 애정을 충분히 줘라.
    이씨는 대학교수인 첫째 딸이 임신하기 전부터 손주를 맡아주리라 공공연히 약속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착한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이씨는 서울, 경남, 충북 지역에서 1970년부터 34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누구보다 바쁘게 지냈다. 2남 1녀를 둔 워킹맘인 그는 늘 시간에 쫓겼다. 친정이나 시댁 그 어느 쪽에서도 도와줄 형편이 못돼 육아와 집안일은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제가 형편상 일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늘 아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놀아주는 것은커녕 기본적인 것조차 해주지를 못했죠. 제가 재직하는 학교 앞 운동장에 애들을 놔두고 출근하기도 하고, 친척에게 아이를 몇 달간 봐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그 과정에서 섭섭했을 만도 한데, 딸은 묵묵히 제 곁을 지켜주면서 집안일을 도왔어요. 반항하는 남동생들과 달리 늘 제 편이 되어줬죠. 공부하라고 한적도 없는데, 알아서 공부하고 아르바이트해서 학비도 벌었어요. 너무 일찍 철이 든 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립니다.”
    두 번째 이유는 딸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젊은 시절 늘 시간에 쫓겼던 이씨는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자녀의 특징을 잘 살펴 그들의 재능을 키워주는 호사(?)는 꿈조차 꾸지 못했다. 애정을 가지고 자녀를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그에게 후회와 죄책감으로 남았다. 이씨는 “바쁜 딸이 나처럼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은 엄마이길 바랐다”며 “딸을 대신해 손자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교직 경험과 석ㆍ박사 과정에서 접한 아동학을 바탕으로 손주를 누구보다 더 열심히 맡아서 키우겠노라 장담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인 사위를 대신해 딸과 함께 살면서 손주 맡을 준비도 철저히 했다. 손자 지훈이를 낳은 딸을 산후조리원도 보내지 않고 호기롭게 산후조리부터 육아까지 모두 맡았다. 스스로 극성이었다고 평가할 만큼 그는 최선을 다했다. 조부모 교육 수업은 물론 이유식을 먹이는 시기에는 구청에서 이유식 강의까지 들을 정도였다. 틈틈이 육아책과 아동학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육아관도 세웠다. 이씨는 “아동학 이론에 의하면 생후 3년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한다”며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손자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육아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혹독했다. 일단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강의하느라 바쁜 딸을 대신해 24시간 아이에게 메어 있다 보니 힘에 부치는 순간이 잦았다. 취미생활은 커녕 동덕여대 평생교육원에서 강의하던 본업조차 하기 버거웠다.
    “제 생활이 전혀 없다 보니 어느 순간 짜증이 났어요. 아이가 마냥 예뻐 보이지 않더군요. 제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딸이나 남편과 의견충돌도 자주 했지요. 건강하고 즐겁게 육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어린이집을 해결책으로 생각했어요. 다행히 가족이 제 의견에 동의해줘서 손자를 돌 지나고부터 어린이집에 보냈습니다. 만약 지금 육아 때문에 힘든 조부모가 있다면 현실적인 것을 고려해 차선책을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부모나 조부모가 오랜 시간 곁에서 끼고 있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만약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몇 시간을 같이 있느냐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아이와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니까요.”

  •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손자 지훈이와 함께 있는 이점우씨.
    ▲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손자 지훈이와 함께 있는 이점우씨.
  • 스위스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내려와 호수에서 손자와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
    ▲ 스위스 노이슈반슈타인성에서 내려와 호수에서 손자와 물놀이를 즐기는 모습.
    ◇32개월 된 손자와 함께한 70일간의 유럽 여행.
    이씨는 손자가 32개월이 될 무렵에 70일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결심했다. 아동학에서 3세 이전은 지적ㆍ정서적 발달에 매우 중요한 시기로 구분된다. 이 시기에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며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아이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생각해보니 손자가 너무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더라고요. 아침 9시에 어린이집에 가서 오후 6시에 돌아와 저녁 먹고 잠을 잤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매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경험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딸이 안식년을 맞아 석 달 정도 여유가 있었어요. 더 늦기 전에 손자에게 초점을 맞춰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와 24시간을 함께 하는 여행을 떠나기로 했죠.”
    물론 그도 떠나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다. 아직 기저귀도 못 뗀 유아가 해외여행에 잘 적응할까. 긴 일정을 건강하게 잘 다녀올 수 있을까. 이씨는 걱정한 만큼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경제적인 이유를 고려해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를 거쳐 서유럽과 북유럽, 동유럽과 남유럽을 돌아 모스크바를 끝으로 둘러보고 돌아오는 빡빡한 일정을 짰다. 몇 달 전부터 꼼꼼하게 일정표를 짜고 그에 따라 교통편과 숙소를 예약했다. 딸은 여행가이드, 남편은 손자의 안전, 이씨는 식사와 빨래를 맡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거나 아이가 아프면 바로 돌아오자고 합의했다. 그는 “호텔에서 숙박하고 국적기를 타는 편한 여행이면 좋았겠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며 “밥도 현지에서 모두 해서 먹어야 하는 아이에게는 지극히 불편한 여행이지만 한번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한 여행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일단 아이가 어른 못지않게 잘 따라왔다. 손자는 매일 10시간이 넘는 행군에도 뒤처지지 않았다. 힘들어도 유모차에서 낮잠 한번 자고 일어나면 지친 기색이 사라졌다. 누구보다도 잘 먹고 잘 잤으면, 여행 기간 단 한번도 아프지 않았다.
    “아이는 정말 매일 성장했어요.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인 여행 일정 속에서도 참 잘 버텼죠.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서 조금 어색해했지만, 여행 후반에는 뭐든 도전하려고 하고 경험하려고 노력했어요. 제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캐리어를 들어줄 정도로 배려심도 커졌죠. 매일 아침 눈을 반짝이며 ‘할머니, 오늘은 또 어디 가볼까?’라고 물어보던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기뻤던 것은 온종일 엄마와 함께 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는 점이에요. “
    여행 이후 지훈이는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해내는 근성이 생겼다. 경제관념이 생겨서 돈의 소중함도 안다. 그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놀랄 정도로 달라졌다”며 “어떠한 상황도 불평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행동이 가장 기특하다”고 말했다.
    손자를 위한 여행이었지만, 이씨도 얻는 것이 많았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체면 때문에 선뜻하지 못했을 행동도 손자 덕분에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선입견 없이 대상을 바라보는 눈도 생겼다.
    “영국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근위병 교대식 행진이 이뤄질 때, 신이 난 손자가 갑자기 일어나 그들을 흉내 내며 행렬을 따라갔어요. 전 세계에서 온 수백명의 관광객이 손자를 쳐다보더라고요. 아이가 당황하지 않게 저와 남편도 일어나 손자와 똑같이 행동했어요. 그러자 나중에는 관광객들이 박수를 쳐주면서 저희를 따뜻하게 바라봐주더라고요. 손자 덕분에 더욱 인상 깊은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어느새 그렇게 손자는 훌륭한 여행 파트너가 됐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씨는 손자를 데리고 유럽을 한 번 더 갔다. 최근에는 하와이도 다녀왔다. 앞으로도 이씨는 손자와 함께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도 자주 갈 계획이다.
    “손주에게 용돈을 주거나 선물을 사주는 것보다 함께 경험을 해보면 좋겠어요. 짧은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하기에는 여행 만한 것이 없지요. 만약 여행을 망설이는 조부모가 있다면 손주를 일단 믿고 시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놀랍고 감사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