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D-48] 고 3 엄마들의 분투기
김세영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9.30 16:09
  • #고교 3학년 아들을 둔 김모(46·서울 강남구)씨는 매일 오전 9시 반쯤 집을 나서 자동차로 15분쯤 걸리는 사찰로 간다. 그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준비하는 아들의 대학 합격과 건강을 기원하며 108배를 한다. 올 초부터 거의 빠짐없이 해온 일이다. 김씨는 “집에 있으면 아이 생각에 불안해져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절을 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져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맞춤형 간식 준비·집안 습도 조절까지

    수능(11월 17일)을 50여일 앞둔 요즘, 고3 부모들이 수험생만큼 분투하고 있다. 사실상 지난해 겨울부터 시작된 자녀의 수험 생활에 끝이 보이면서 ‘막판 전투’에 힘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부는 자녀가 직접 하지만,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한 보조 역할은 부모 몫이라는 생각에서다.

    부모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녀를 돕고 있다. 아이 상태를 유심히 살펴 맞춤형 요리나 간식을 준비하는 건 기본이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 3학년에 재학 중인 딸을 둔 김모(서울 강남구·49)씨 가족 식단은 딸 입맛에 좌우된다. 김씨는 “딸이 잘 먹는 반찬 위주로 유기농 재료를 활용해 만들고 ‘먹고 싶다’는 게 있으면 그날 바로 재료를 사다 조리한다”며 “최근엔 뭘 먹어도 느끼하고 속이 좋지 않다고 해 새콤달콤한 과일주스를 아침저녁으로 갈아준다”고 했다.

    부쩍 예민해진 자녀의 기분을 맞추느라 전전긍긍하는 부모도 많다. 고 3 딸을 둔 김모(서울 노원구·48)씨는 “원래 유순했던 아이가 9월 수능 모의평가를 망친 후 눈에 띄게 짜증이 늘었다”고 했다.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구는 아이를 보며 처음엔 싸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화낼 만한 요소를 최대한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요즘 김씨는 딸이 야간 자율 학습이 끝나고 귀가하는 밤 11시 반이 되기 전에 온 집안을 정리해둔다. 그는 “습도조차 짜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제습기까지 돌린다”면서 “아이가 불쾌하지 않도록 화장실까지 뽀송뽀송하게 말린다”고 했다.

    주말엔 마사지숍이 붐빈다. 프랜차이즈 마사지숍에서 일하는 김모(서울 강남구·27)씨는 “고 3 수험생 자녀를 1~2주에 한 번씩 데려오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며 “오래 앉아 공부하는 바람에 어깨나 골반 통증을 앓는 아이들이 많아 맞춤형 프로그램도 내놨다”고 말했다. 이 가게에서 제시하는 수험생 관리 프로그램은 10회 기준 40만원 선(회당 40여분)이다. 지난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진학한 김모(20)씨도 이곳에서 서너 번 마사지를 받았다고 했다. 

    다수 절·교회·성당 등엔 수험생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거나 수험생 엄마 기도 모임이 있다. 서울 봉은사에서는 지난 8월부터 백일기도를 시작했다. 수능을 한 달 앞둔 10월 22일엔 단체로 3000배 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가톨릭 신자인 김모(경기 고양·49)씨는 가족들 저녁을 챙겨 먹인 뒤 집을 나서 수능 백일기도를 위해 성당으로 향한다. 고 3자녀를 둔 엄마들 10여 명이 ‘고정 멤버’다. 김씨는 “아이가 공부를 포기하려 할 때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어 더 열심히 나갔다”며 “아이가 힘든 과정을 겪으며 바르고 선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고 했다.

    ◇엄마들 육체 피로 극에 달해… 자신부터 돌봐야


    현재 고 3 부모들은 지금 가장 힘든 점이 육체 피로라고 입을 모은다. 새벽에는 아이의 아침식사를 챙기고, 밤에는 아이가 야간 자율 학습이나 독서실 학습이 끝나 귀가한 다음에야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수면 부족으로 인한 피로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워킹맘은 피로가 극에 달해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9·부산 해운대구)씨는 “새벽에 나가 이튿날 새벽에 들어오는 딸에게 끼니와 간식을 먹이고 낮엔 가게 일까지 하려니 체력이 버티질 못 한다”고 했다. 그는 “아이와 병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 링거라도 맞아야 할 판”이라고 덧붙였다.

    자녀를 명문대에 보낸 선배 엄마들은 “너무 아이에게 매달리지 마라”고 조언한다. 올해 연세대에 딸을 보낸 서모(50·서울 강남구)씨는 “초조한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수험은 아이 역량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며 “아이가 집에 오면 일과에 대한 수다를 떨며 평소처럼 지내려고 했다”고 전했다.

    명문대에 진학한 학생들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신모(19)양은 “지난해 이맘때쯤 부모님께서 교회에 매일 새벽 기도를 가셨는데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이 됐다”며 “어차피 공부는 내가 하는 거라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에 다니는 엄동근(19)군은 “부모님께서 가끔 야식을 갖고 기숙사에 오셨는데, 간식 자체보다도 가족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곤 했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이 한 번도 ‘어서 먹고 가서 공부하라’고 재촉하신 적이 없는데, 오히려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