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유학기제가 낳은 중학교 토론식 수업, 정작 ‘토론’은 쏙 빠졌다는데…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9.28 17:22
  • 초등생 때 많은 교내외 토론대회를 경험했던 윤성빈(가명·서울 A중학교 1년)군은 올 초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기대가 컸다.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으로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수업운영을 토론, 실습 등으로 개선한다는 보도와 학교의 안내를 접했기 때문이다. 윤군은 “그동안 선생님 말씀만 듣다가 끝나는 조용하고 지루한 수업보다는, 교실의 생기가 넘치고 집중도 잘 되는 토론식 수업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여러 토론대회를 체험하며 느꼈다”며 “따분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중학교 수업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토론을 매일 하고 교실의 활력도 넘칠 것이라고 생각하니 설렜다”고 했다.

    하지만 기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현실 속 교실에선 교사가 교과서 특정 단원의 핵심 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교과서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개념을 찾아낸 뒤, 관련 내용을 돌아가면서 적힌 그대로 읽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후엔 곧바로 다음 진도를 나갔다. 다른 과목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윤군은 “이러한 수업 형태는 ‘토론식 수업’이 아니라 ‘교과서·개념서 속 내용 찾아 한 명씩 읊기’ 아닌가”라며 “자신만의 생각을 풀어내고 또 반론을 제기하며 열띤 공방을 펼치는 ‘진짜 토론’은 내가 있던 교실 안에선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토론 없는’ 토론식 수업

    교육 당국이 자유학기제 전면 시행 후 중학교에 토론식 수업을 확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 현장의 수업 형태는 ‘토론식 수업을 가장한 진도 빼기 수업’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논쟁과 열띤 공방을 벌여야 하는 토론식 수업에 정작 ‘토론’은 없고, 교과서 페이지만 넘기는 수업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김준혁(경기도 B중학교 1년)군은 “2학기 때부터 수학 시간에 토론을 활용한 팀 프로젝트형 수업을 진행한다며 책상을 모으고 모둠을 구성했는데, 선생님은 두 달째 토론을 제안하기는커녕 진도만 나가고 있다”며 “공부 환경만 토론이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놨을 뿐, 현재 수업은 학원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무늬만’ 토론식 수업도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중1 자녀를 둔 한 디베이트 학원 강사 이 모 씨는 “아이가 사회 시간에 토론 수업을 한다며 주제를 보여줬는데, 찬반이 갈리기 어려운 내용이었다”며 “교사들이 발표와 토론의 개념을 헷갈리고 있으니 토론식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겠나”고 했다.

    ◇교사 “커리큘럼 때문에…” 학생 “소수 의견에 움직이는 교실 분위기 탓에”

    교사들은 정해진 교육과정 때문에 토론식 수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C 중학교의 이정민(가명) 교사는 “교사 입장에선 학기 초 정해 놓은 한 학기 또는 1년치 커리큘럼을 계획대로 소화해야 하는데,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면 절대로 진도를 나갈 수 없다”며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토론식 수업을 권장하고는 있지만, 이는 현장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일방적인 얘기”라고 했다.

    서울 D 중학교의 정진영(가명) 교사도 “진도를 나가며 단계별 지식을 습득해야, 주요 교육·평가 과정인 수행평가를 소화하고 시험을 치를 수 있다”며 “토론식 수업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교과서 지식을 익히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중요 평가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유는 다르지만, 다수 학생도 토론식 수업 진행이 어렵다는 것에 공감한다. 신민준(가명·서울 E중학교 1년)군은 “초등학교 때부터 강의식 수업에 길든 학생들이 갑자기 시작된 토론식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성빈(가명·충남 천안 F 중학교 1년)군은 “‘수업 시간에 질문도 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누가 나서서 토론에 참여해 주장을 펼칠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김지안(가명·서울 G 중학교 1년)양은 “토론식 수업에선 공부 잘하는 학생이나 적극적인 학생들의 주도로 수업이 진행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참여하고 싶지만 용기가 부족한 학생들은 소외감을 느끼거나 분위기에 눌려 몇몇 목소리 높은 학생들의 의견을 따를 게 분명하다”고 했다.

    ◇“‘내 생각’이 중요한 교육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적인 구조 문제를 지적한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의 조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선 시험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요. ‘배운 지식을 얼마나 잘 외우고 있느냐’를 평가하는 데에만 오로지 초점을 맞추고 있죠. 토론은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이를 꺼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며 열띤 공방을 벌이는 과정입니다. 하지만 시험이 최대 목적인 우리나라의 수업에선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리한 개념을 그대로 외워 말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 아래에선 토론식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긴 어렵다고 봅니다.”

    해법으로는 ‘체질 개선’을 꼽는다. 이 소장은 “토론식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진도만 나가는 ‘겉핡기식 수업’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대신 교사가 하나의 주제나 사건을 제시해주면 학생이 직접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분석해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학생이 스스로 ‘생각 근육’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수업으로 바뀌어야 제대로 된 토론식 수업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