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빠&할마의 육아톡톡②]“태어나 3년간은 꼭 손주곁에 있어주세요”
방종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9.28 12:21
  • 아이를 부모처럼 맡아서 교육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늘고 있다. 이들을 일컬어 할빠(할아버지+아빠), 할마(할머니+엄마)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다. 이들은 대개 억척스럽게 자녀를 키우며 우리나라 교육 열풍을 주도했던 50~60대 베이비붐 세대다. 본인들의 이런 경험이 손주 교육에 열정을 쏟는 배경이 됐다. 조선에듀는 맞벌이 부부 시대에 실질적인 육아와 교육을 담당하는 이들을 차례로 만나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두 번째 주인공은 발달심리학 전공을 살려 손자와 애착을 형성한 심리학자 ‘할마’ 조혜자(65)씨다.

    ◇태어나 3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조씨는 9년 전 미국에서 직장에 다니던 큰딸이 손자를 낳으면서 미국을 오가며 육아를 도왔다. 이화여대 등에서 심리학 강의를 했던 그는 딸의 출산 임박 소식을 듣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향했다. 이런 결정 뒤에는 그의 실경험이 한몫했다. 조씨가 둘째 딸을 낳은 다음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친정부모님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딸이 어렸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너희 아이들은 내가 길러주겠다”고 약속해왔다. 조씨는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딸이 눈치를 덜 보고 일하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며 “부모가 아기를 돌보는 일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 없다면 할머니가 도와주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육아를 선택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태어나 3년간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믿음 때문에다.
    “발달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태어나서 첫 3년은 다른 사람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뇌가 발달하는 시기예요. 초기에 따뜻하고 사려 깊은 돌봄을 받았는지가 한 사람의 정서적 안정과 평생의 대인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죠. 즉, 이 시기에 아기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어주고, 옹알이할 때 일일이 받아주고, 스킨십을 넘치도록 해줘야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에 손주에게 첫 3년만 투자한다면 남은 세월 동안 손주와 더 좋은 관계를 즐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상은 바람과 달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안 통하는 타국에서 첫 손자를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산 첫날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딸이 난산했어요. 쉽지 않은 출산이었지만, 산후조리 문화가 체계적인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별다른 조치 없이 출산 이튿날 바로 퇴원을 시키더라고요. 산모는 젖 물리는 법을 몰라서 끙끙대고, 아이는 계속 울고.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딸과 사위는 출산 경험이 있는 제게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겉으로 힘든 티를 낼 수 없었지요. 의연한 척했지만 혼자 있을 때는 다리가 풀리고 떨려서 주저앉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잠재해 있던 육아 기억이 되살아나 하나씩 손에 익기 시작했다. 육아에 대해 궁금한 점은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하나씩 해결해나갔다. 아이에게 손이 덜 가는 돌 즈음부터는 전공했던 발달심리학 책을 들여다보며 혼자 틈틈이 공부하면서 아이를 대했다. 그렇게 조씨는 비자가 허용하는 대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육아를 전담했다.
    “손자를 돌보면서 딸을 키우던 시대와 많이 달라졌음을 깨달았어요. 사실 우리가 아이를 키울 땐 육아지식에 의지하지 않아도 됐어요. 그저 여러 식구와 어울려 살며 마당이나 골목길에 나가 마음껏 뛰어놀게 한 것이 전부였으니까요. 그러나 이젠 전혀 달라졌어요. 흉흉한 세상이라서 마음대로 밖에 내보낼 수가 없죠. 아빠ㆍ엄마가 직장에 나가면서 아이는 어린이집이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죠. 아이들은 먹을거리와 장난감이 넘쳐나는 환경에서 자라지만, 마음은 허전하고 외롭기가 쉬워요. 대가족과 많은 형제 속에서 살면서 여러 식구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던 시절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는 손자에게 다른 무엇보다 애착 관계에 중점을 두고 사랑 표현을 많이 했습니다. 스킨십을 많이 하고 늘 사랑한다고 얘기해줬습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 돌보는 것을 잊지 말아야
    조씨가 손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고비가 있었다. 특히 몸이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육아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잦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있었기에 육아 스트레스를 나눌 상대가 없다는 점도 충동을 부추겼다. 생각이 많아질 때마다 조씨는 아이와 몸을 쓰고 신나게 놀아주면서 에너지를 발산했다. 틈틈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교회에 찾아가서 다양한 외부 활동도 했다.
    “아이를 돌본다는 것은 한시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주의를 기울인다는 것을 말해요. 부모도 하기 쉽지 않은데, 조부모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죠. 아이를 안고, 업어주다 보면 온몸 이곳저곳에서 비상 신호를 보내오죠. 저는 한국에 갈 때마다 늘 정형외과에 가서 진료를 받곤 했어요. 몸이 안 좋을수록 내 건강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양제나 비타민을 꼭 챙겨 먹고,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쌓아두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제가 행복해야 딸도 손자도 모두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또 힘들 때마다 딸과 사전에 충분히 의논해서 본인의 역할에 대해 조율했다. 그는 “육아는 장기전이기 때문에, 각자 지치지 않으려면 사전에 부모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육아를 두려워하는 조부모에게도 사전에 자녀와 충분한 대화를 해서 어느 선까지 육아를 도울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 씨는 “예를 들어 일주일 내내 아이를 맡을 것인지, 아니면 주 5일만 맡을 것인지 또는 집안 살림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명확히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며 “무리하게 맡아서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 처음부터 할 수 있는 것만 맡는 것이 현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육아 십계명’을 만들어 늘 마음에 새겼다. 손자를 과잉보호하지 않으며, 자신은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 십계명의 골자다.
    “아직 엄마 노릇에 서툰 딸이나 며느리 대신 갓 태어난 손주를 돌봐주다 보면 종종 자신이 아기 엄마가 된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어요. 제 주변에서는 늦둥이를 본 것 같다고 여기는 할머니도 있죠. 아기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탓에 이것저것 간섭하고 싶고, 자신의 육아 방식을 강요하고 싶어지죠. 그러나 할머니는 할머니일 뿐 엄마가 아닙니다. 할머니가 손주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고 아이 부모의 육아관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 서로 상처를 입고 관계가 상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조혜자 씨가 실천한 육아 십계명>
    1. 할머니는 아이 엄마가 아니다.
    2. 아이의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3. 아이의 부모가 원하는 교육관을 따르고, 일관성을 유지한다.
    4. 할머니 자신의 신체적ㆍ심리적 건강을 돌본다.
    5. 아이가 울면 즉각 반응해준다.
    6. 많이 안아주고 스킨십을 한다.
    7.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
    8. TV나 비디오에 아이를 맡기지 않는다.
    9. 아이의 질문에 성심껏 대답한다.
    10.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많이 이야기하고, 책을 읽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