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시 20여일 앞두고…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 놓고 설왕설래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8.25 09:11
  • 다음 달 2017학년도 대입(大入) 수시모집 개막을 앞둔 가운데, 수시전형의 한 평가요소인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놓고 입시 현장에서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학생 선호도 높은 서울 소재 대학들이 이번 수시부터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잇달아 폐지하자, 반대로 이로 인해 발생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다.

    최근 수험생이 많이 찾는 대형 커뮤니티에선 ‘A대학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의 부작용’이라는 글이 1만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해당 글은 서울 상위권 대학으로 분류되는 A대학이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 이후 2015학년도 논술전형 합격자의 수능 백분위 평균 점수가 비슷한 수준의 다른 대학에 비해 40~70점가량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주된 내용. 해당 글엔 수능 최저학력기준 옹호 혹은 반대 의견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렸다. ‘수능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이 어느정도인지 확인하는 시험인데,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로 그 수준을 확인할 수 없는 학생이 입학했다’ ‘이미 수능이 얼마나 덜 실수하는 지 평가하는 시험으로 전락한지 오래인데, 그게 무슨 말이냐’라는 주장 등이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옹호론자들의 핵심 주장은 ‘공정성·객관성 확보를 위해서’다. 고3 자녀를 둔 학부모 이미애(47·가명)씨는 “많은 학부모와 수험생이 수시 혹은 학생부 종합전형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해서다.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시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선 객관성 확보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현 입시 상황에서만 보면,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수능 최저학력기준밖에 없다”고 했다.

    재수생 김유진(19·가명)씨는 “EBS 문제를 아주 유사한 형태로 출제하는 게 현재 고교 현장 내신의 수준”이라며 “현장에서 느끼는 내신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이고 이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 능력도 점점 떨어지는 데, 학업역량을 판단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수능 최저학력기준)마저 없애버리는 게 맞는 일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수험생 김민혁(서울 B고교 3년)군은 “‘왜 떨어졌는지도 모르는 게 수시이고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말이 있다”며 “수시가 아무리 정성평가라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지금 상황에선 수능 최저학력기준뿐인 것 같다”고 했다.

    일부에선 인재 발굴 측면에서도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유명 대입 전문 학원장 C씨는 “대학은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로 경쟁률 상승효과만 얻을 뿐, 최소한의 학업역량을 갖춘 인재를 발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시에서도 ‘역전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수능 최저학력기준이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입시 업체 대표는 “경쟁자보다 내신 점수가 근소하게 떨어지거나 비교과 활동이 다소 서툴었다면, 그대로 낙오시키는 게 아니라 구제할 방법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고교 3년간 내신·비교과 활동이 부족했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메워줄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했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를 주장하는 수험생·학부모, 교육계 관계자들은 “입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시 준비생 이수웅(가명·경기 D고교 3년)군은 “그동안 학생들이 선호하는 많은 대학이 수시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두는 바람에 이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입시 준비에 허덕였다”며 “이제 여러 대학이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속속 폐지하면서 내신과 비교과 활동 등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고, 부담도 크게 줄었다”고 했다.

    수능 최저학력기준 옹호론자들의 주장과 달리, 해당 기준만으로 학업역량을 판단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E대학의 한 입학사정관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은 계열·학과가 원하는 영역의 등급만 요구한다. 예컨대 공학계열 학과라면 수학·과학탐구 영역 등급만 보는 식이다. 만약 어떤 학생이 해당 학과가 원하는 두 개 영역의 등급은 충족했지만 다른 영역의 등급이 형편없다면, 과연 그 학생의 학업역량은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그동안 모호했던 각 수시전형의 색깔이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로 분명해졌다는 입장도 있다. 서울 F대학의 한 입학사정관은 “그동안 주요 대학 논술 전형 합격자들이 ‘논술 실력과 수능 성적도 갖춘 학생’이라고 표현한다면, 앞으로는 ‘논술 실력이 아주 우수한 학생’으로 바뀔 것”이라며 “수능 최저학력기준 폐지만으로도 각 수시전형의 정체성을 찾는 효과를 거뒀고, 학생들도 전형에 맞는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