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지는 학교 폭력, 초등 현장에 번지는 ‘초4병’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8.17 17:14
  • 또래에 비해 몸집이 작고 조용한 성격의 초등 4학년 김지후(가명)군. 김 군은 올해 학기 초 점심시간에 책을 읽다가 봉변을 당했다. 당시 같은 반 남학생들이 전쟁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장군 역할을 하던 A군이 느닷없이 공격 대상으로 김군을 지목하는 바람에 너댓명에게 몰매를 맞은 것이다. 다행히 멍이나 상처가 나진 않았지만, 김군의 마음엔 그보다 더 큰 생채기가 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반 학생들이 갑작스런 공격에 당황하는 김군의 반응을 보며 깔깔댔기 때문이다. A군은 부들부들 떨던 김군에게 다가가 “그냥 게임이야”라고 했다. 반 친구들은 또 웃었다.

    이후 김군의 일상은 180도 달라졌다. ‘사건’을 계기로 A군을 비롯한 반 학생들이 김군을 대놓고 얕잡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덩달아 ‘폭력’도 벌어졌다. 이들은 난데없이 김군의 뒷목을 손날로 치거나 옆구리를 세게 쿡쿡 찔렀다. 듣도 보도 못한 욕설도 함께 퍼부었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괴롭힘은 계속됐다. 반 학생들의 SNS나 메신저에선 김군을 흠집 내는 말이 매일 나돌았다. 폭력의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급기야 성추행까지 더해졌다. 김군은 “죽고 싶다”고 했다.

    최근 ‘학교폭력 저연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학교폭력 발생 시기가 기존 중·고등학교에서 초등학교 시기로 수직하강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2016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 폭력 경험 학생 약 3만9000명 중 약 67.9%(약 2만6400명)가 초등학생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는 전국의 초등 4학년부터 고교 3학년까지 총 432만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따라서 초·중·고교 학교급 중 초등학교의 학교 폭력 발생률이 가장 높은 셈이다.

    첫 학교폭력 피해 사례는 초등 4학년 때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6월 학교폭력 예방 단체인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의 ‘2015년 전국 학교폭력 실태 조사 연구’에 따르면, 초등 입학 이전부터 고2까지 학교폭력 첫 피해 시기를 조사한 결과 초등 4학년이 14.9%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했다. 교육부 조사에서도 초등 4학년의 학교폭력 발생률(3.9%)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초등학교 현장에선 “이제 ‘초4병’이 번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초4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공격성·폭력성이 극대화하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로, 최근 유행한 ‘중2병’에서 파생됐다. 김민재(서울 A초교 4)군은 “작년과 올해 친구들을 비교해보면, 대체로 까칠해진 게 사실”이라며 “많은 아이가 사소한 일에도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다”고 했다.

    공격성 띤 초등 4학년이 늘어나는 이유는 빨라진 사춘기와 잦은 유해 미디어 노출이 꼽힌다. 10년차 초등학교 교사 이수진(가명)씨는 “요즘 초등 4학년의 성장 상태는 중학생 못지않고, 사춘기도 좀 일찍 찾아오는 편이다. 따라서 사춘기 때 나타나는 공격적인 성향이 이 시기에도 발생하는 것 같다. 고학년에 접어드는 4학년 때엔 학습 난도도 올라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도 늘어난다. 이 부분도 초등 4학년생의 공격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차민희 청예단 학교폭력SOS지원단 통합지원팀장은 “성적·폭력적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기가 점점 어려지면서, 덩달아 학교폭력도 초등 4학년을 비롯한 저연령 시기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점점 어려지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선 교육과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차 팀장은 “현재 학교 현장에서 진행되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효율성 떨어지는 전달식 강의 위주로 진행된다. 학교 현장에선 연극·인형극·뮤지컬 등이나 체험을 통한 예방 교육 등 좀 더 실효성 있는 교육 형태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학교폭력의 저연령화를 해소하기 위해선 학부모 교육이 중요하다. 학교폭력 유형과 이해, 보호자의 역할 등의 내용을 담아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의무 교육을 제공하는 정책적 개선이 시급한 시점이다”라고 했다.

    더불어 가정교육도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차 팀장은 “학교폭력의 뿌리가 뽑히지 않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방관자’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를 당하는 학생을 보고서도 이를 지켜보는 학생이 방관하기 때문에 폭력이 중단되지 않는 것이다. 방관자를 줄이기 위해선 학부모들이 가정 내에서 자녀가 학교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어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이타심’을 꾸준히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