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코딩은 의미 없어… 컴퓨터적 사고력 키우자
김세영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8.03 16:18
  • 사진=이지선 교수 제공
    ▲ 사진=이지선 교수 제공
    “프로그래머가 미래에 가장 먼저 로봇으로 대체될 직업이라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단순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기계도 할 수 있다는 거죠. 아이들에게 정해진 순서에 맞춰 프로그램 짜는 요령을 가르치는 건 이제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컴퓨터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합니다.”

    코딩 교육 전문가인 이지선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는 최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코딩 교육 강의 수요가 늘었다고 했다. 2015 개정 교육 과정에 따라 2018학년도부터 중등 과정에 SW(소프트웨어) 교육이 필수로 도입되면서 변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코딩이란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을 뜻한다. 이 교수는 “부모들이 코딩 교육을 궁금해하고 어려워하며, 동시에 오해하고 있다”고 했다. 프로그래밍 결과물보다 컴퓨터적 사고를 익히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최근 그가 번역해 펴낸 ‘헬로 루비: 코딩이랑 놀자!’(린다 리우카스 지음·길벗어린이)는 이 같은 생각과 일치하는 책이라고 했다.

    ◇ 코딩,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컴퓨터적 사고

    컴퓨터 없는 현대인의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이런 경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얼마나 진취적인 직업을 가질 것인지도 컴퓨터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력에 좌우될 것이라고 한다. 컴퓨터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즉 컴퓨터적 사고(computational thinking)를 아이들이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그것을 통해 창의적인 작업을 해내야 한다는 얘기다.

    이지선 교수에 따르면 코딩 교육의 목표는 컴퓨터적 사고를 체득한 뒤 자기 판단 하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즉 아이들이 ‘컴퓨터는 명확하고 세분화된 명령만 알아듣고, 규칙과 순서에 따라 움직이며, 작은 오류만으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함으로써 논리적인 생각의 틀을 갖고 더 나아가 컴퓨터를 활용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는 “이런 점에서 요즘 대부분 수업이 ‘정해진 프로그램 만드는 법’에 초점을 두는 모습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보통 학교나 학원 코딩 수업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프로그래밍 자격증을 따도록 하지만, 이런 교육은 아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프로그램 짜는 요령은 수업 없이도 익힐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된 일종의 프로그램 설계도인 오픈소스를 이용하면 간단한 프로그램 정도는 누구나 금방 제작할 수 있지요.”

    그는 “코딩 교육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어떻게 제작할 것인지를 혼자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컴퓨터적 사고를 익힌 뒤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만드는 경험을 반복해야 합니다.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컴퓨터의 원리가 이러하니, 이렇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컴퓨터와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접목하면 이런 것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깨닫습니다. 그것이 코딩 교육의 목표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주어진 상황을 변화, 발전시키는 창의적 인재로 거듭날 수 있죠.”

    그러려면 부모가 ‘코딩을 배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어른 세대는 자녀가 스스로 학습할 시간을 주질 않아요. 하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시간을 들여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며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도록 해야 합니다. 예컨대 ‘코드닷 오알지(code.org)’가 무료로 제공하는 문제를 풀면서 학습하거나 스크래치(Scratch)를 활용해 머릿속 생각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컴퓨터적 사고를 습득하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교수의 번역서 ‘헬로 루비: 코딩이랑 놀자!’의 주인공인 루비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책 속의 루비는 컴퓨터적 사고를 통해 보석 찾기라는 목적을 달성한다. 루비는 ▲5개의 보석 찾기라는 큰 문제를 작은 갈래로 나눠 정리하고 ▲순서대로 계획을 세워 ▲누군가에게 적시에 적확한 부탁을 하고 ▲규칙을 찾고 ▲공유(共有)의 중요성을 알고 ▲계획이 실패했을 때 오류 수정을 한다. 루비의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컴퓨터적 문제 해결 방식을 배운다.

    ◇초등 저학년이라면 기기없이도 코딩 교육 가능해

    코딩 교육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릴 때 학습을 시작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6~7세 전엔 동화 등을 활용한 언플러그드 교육(기기 없이 하는 코딩 교육)으로 컴퓨터적 사고를 익히고 나서 본격적인 코딩 교육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이후에도 컴퓨터 사용 제한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의 딸은 초등 3학년 때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현재 5학년인 아이는 방과 후 교실에서 친구들과 스크래치를 이용한 코딩 교육(하루 2시간)을 받고 있다. 그 외엔 수업 과제를 위해 일주일에 2번, 한 번에 2~3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 전부다. 그것도 부모가 옆에 있을 때만 쓸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컴퓨터 외에 TV 시청은 일주일에 2시간(주말)만 허락하고, 휴대전화는 전화기 용도로만 한정합니다. 저뿐 아니라 IT 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부모가 기기 중독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이렇게 교육합니다.”

    시간 제약을 두는 대신 커리큘럼은 풍성하고 자유롭게 구성한다. 온라인에 공개된 프로그램이나 영상을 보며 아이 마음대로 콘텐츠를 만들게 한다. “딸아이는 스크래치·아두이노·메이키메이키·레이저 커팅기·3D 프린터를 두루 해보고, 그것을 응용해 만들고 싶은 것을 결정하고 완성합니다. 막힐 때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검색을 돕거나 스스로 문제를 잘게 쪼개 논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할 뿐이죠.” 그는 “이 과정을 항상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친구들과 공유하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컴퓨터를 실제 조작하는 것 외에 컴퓨터에 관한 책읽기도 권할 만하다고 했다. “컴퓨터의 역사, 프로그래밍의 역사, IT 업계 유명인의 자서전 같은 것에 흥미를 보인다면 함께 관심을 갖거나 응원해주세요.” 미래 기술을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추천했다. “우리 집에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를 같이 봤습니다. 아이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개인용 컴퓨터가 없던 1968년에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특히 놀라워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