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학습력 높이는 건강 플러스] ④ 화병(우울증)
김세영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7.29 14:57

짜증 내는 우리 아이, 사춘기 아니라 화병?

  • #중학교 3학년 여학생 A양은 최근 한 달간 신경질이 늘었다. 부모에게 갑자기 짜증을 내는가 하면 심하게 대들기도 했다. 부모는 ‘버릇없다’며 아이를 호되게 혼냈다. 그 후로 A양은 문을 잠그고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불면증도 생겼다. A양은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생기고 무능한 것 같다. 나 자신이 너무 싫다”고 했다.

    #고교 1학년인 남학생 B군은 몇주 사이에 급격히 무기력해졌다. 스케줄에 비해 과도한 피로감을 호소했고 두통이 생겼다. 부모에게도 이유 없는 신경질을 냈다. 매일 아침이 전쟁이었다. 급기야 B군은 등교를 거부했다.

    #학교 안팎에서 모범생으로 알려진 고교 1학년 여학생 C양은 요즘 집중력이 떨어져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다. 모든 게 귀찮아졌다고 했다. “사실은 지금까지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도 말했다. 이어 학교 성적이 곤두박질 쳤다. 부모는 딸의 변화를 ‘사춘기’라며 내버려뒀다가 성적표를 확인하곤 뒤늦게 소아청소년정신과를 찾았다.

    ◇학습력 저하·짜증·게임 중독 등 중2병과 유사한 증상이 많아 면밀히 관찰해야

    중년 여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화병이 영역을 확장해나가는 추세다. 급작스레 울화가 치밀거나 예민해지고 모든 게 귀찮아지는 전형적인 화병 증세를 보이는 이들의 연령 분포가 넓어진 것이다. 사실 화병은 정식 진단명이 아니다. 정신과에서는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화병은 한국 문화에서 통용되는 우울증의 또 다른 표현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층은 청소년이다. 유아·청소년기에 발생한 우울증을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차후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2016년 부산 청소년 통계 조사에 의하면 중·고교생 가운데 20.9%가 화병(우울증)을 경험했다.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다. 요즘엔 이 같은 현상이 6세 이하 유·소아에서도 나타난다.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많다.

    우울증의 원인은 다양하다. 부모가 우울증 환자인 경우처럼 유전적 요인도 있고, 학교 폭력·학업 경쟁 같은 스트레스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이연정 순천향대 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청소년기에 우울증에 빠지면 집중력이나 학습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두통 같은 신체적 불편감을 동반하기도 한다”고 했다. 침울한 기분 드는 대신 짜증이나 게임 중독 등 다른 형태로 발현되는 가면성(假面性) 우울증이 대부분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주변인에게 사소한 일로 화를 버럭 내거나 어른에게 크게 대드는 경우가 흔하다. 모범생 중엔 부모 감정에 맞추려고 자기 기분을 감추고 내면에 화를 쌓아가다가 일순간 ‘폭발’하는 케이스도 있다. 심한 경우 자퇴나 자살 시도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학부모가 ‘중2병’이라거나 ‘사춘기’라는 생각으로 쉽게 생각하다가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나중에 문제 되지 않을까’ 하며 병원을 멀리하다가 병을 키우기도 한다. 그러나 의료 기록은 범죄 수사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 외에는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에 의해 철저히 비밀이 보장된다. 이 교수는 “일시적 우울감에서 더 나아가 일상을 위협할 정도로 계속되는 우울 증상은 우울증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침울한 기분이나 사춘기 증상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보통은 성적이 떨어지거나 주변 누군가의 죽음을 겪는 등 원치 않는 일이 발생해 우울한 감정이 생기더라도 빠르게 극복해냅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이 같은 우울감이 오래 지속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줍니다.”

    치료는 비(非)약물적 방식과 약물적 방식으로 나뉜다. 이 교수는 “경증일 경우 원인에 따라 사회성 치료 및 가족 문제 치료 등을 상담 위주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초등 이하는 미술 치료나 놀이 치료도 한다. 그는 “우울증을 오래 방치해 심각한 상태에 이르거나 자살 시도를 한 사례처럼 중증도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겐 약물치료를 병행한다”고 했다. 소요 기간은 개인 차가 크다. 짧게는 몇주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치료를 빨리 시작할수록 기간을 줄일 수 있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평소 가족 간 대화 시간을 자주 가지면서 아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변화를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학부모가 아이와 대화할 때 공감을 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이에게서 지속적인 감정 변화가 느껴진다면 잘 살핀 뒤 늦지 않게 병원을 찾는 것이 병을 초기에 잡는 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