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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계 아이가 목놓아 울었다. 강남역 파리바게트였다. 커다란 갈색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헝클어진 긴 검은 머리칼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소년의 어머니인 듯한 인도계 여성은 잠시 음식을 주문하러 간 상태였다. 아이를 엄마에게 데려다주고 싶었다.
나는 와튼스쿨 경영학 교수 Kartik Hosanagar를 만날 약속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는 인도계였다. 혹시 저 아이와 엄마가 그 교수의 가족은 아닐까? 하지만 인도인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 사이 소년은 엄마에게 뛰어갔다.
교수를 만나고 두 가지에 놀랐다. 그 여성은 교수의 아내가 맞았다. 교수의 아내 Prasanna Krishnan은 세계적인 투자자이자 아이엠스쿨에 투자했던 티모시 드레이퍼와 함께 교육 관련 투자 일을 했다. 현재 그녀는 자신만의 에듀테크 사업을 하고 있다.
교수는 내게 아내가 만든 전자책 앱 ‘스마티팔’(SmartyPal)을 보여주었다. 한국에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스마티팔은 마치 게임같은 책 앱이었다.
학부모가 가장 싫어하는 매체가 뭘까? 게임이 아닐까? 가장 좋아하는 매체는 아마 책일 것이다. 대부분 학부모는 아이가 책을 보고 게임은 안 하기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 같은 책이 있을 수 있을까?
학부모와 교육자 모두 독서를 최고의 활동으로 뽑는다. 하지만 독서량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공개한 ‘2016년 독서교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생 중 59.1%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른은 더 심각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5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성인 연 평균 독서율은 65.3%에 불과하다. 성인 중 1/3이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는 책을 읽지 않는다. 책 말고도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이 게임이다.
미학자 진중권은 20세기는 ‘영화의 시대’라고 평했다. 모든 문화 콘텐츠가 영화를 흉내 냈다는 뜻이다. 진중권에 따르면 21세기는 ‘게임의 시대’다. 모든 문화 콘텐츠가 게임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영화 ‘엣지 오브 투마로우’에서 톰 크루즈는 게임을 하듯 죽으면 처음부터 도전을 반복한다. TV 프로그램도 시청자 참여를 도입하며 게임처럼 변했다. ‘포켓몬고’는 증강현실을 도입해 산책을 비디오 게임으로 만들었다.
책도 마찬가지다. 현재 전자책은 문자를 스크린에 옮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족하다. 기술에 가능성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인기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전자책이라면 종이책을 그대로 화면에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 기술에 가능성을 활용해야 한다. 하이퍼 링크를 통해 참고자료로 곧장 넘어갈 수도 있다. 동영상을 집어넣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종이책으로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텍스트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책에 게임의 형식을 적용하는 것도 전자책이라면 가능하다. 독자에게 스토리를 진행하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직접 선택하고 체험하는 게임과 비슷한 방식이다. 책을 읽으면서 게임의 압도적인 몰입감을 체험할 수 있다.
SmartyPal이 꼭 그랬다. SmartyPal이 무료로 제공하는 ‘Our Space Adventure’를 해 보았다. 우주여행을 다룬 흔한 동화책과 비슷한 내용이다. 하지만 책의 주인공은 독자 자신이다. 독자가 직접 참여해서 가고 싶은 장소를 선택하면 그곳으로 우주선이 이동한다. 직접 자신이 스토리 속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읽고, 모르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게임 같다. 하지만 독서다. -
부부와 이야기를 끝내고 집으로 오면서 계속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가 혼자서 울고 있을 때, 보통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에 관심을 돌릴까? 십중팔구는 스마트폰을 보여 줄 것이다. 책 자체가 지루해서가 아니다. 책이 빠르게 발전하는 다른 매체들의 혁신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뿐이다. 어서 책이 다른 매체의 발전을 따라오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일상에서 책에 푹 빠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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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피니언 전문가 칼럼
[김은우의 에듀테크 트렌드 따라잡기] 게임은 책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