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우

[김은우의 에듀테크 트렌드 따라잡기] 계산기는 미국 수학 교육을 어떻게 바꾸었나

조선에듀

2016.07.19 10:48

해당기사 크게보기 해당기사 작게보기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미국에서의 첫 번째 수업 날이었다. 1교시는 영어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다.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영어에 자신이 있었던 내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2교시는 수학이었다. 원래 자신 없던 과목이다. 좋아하지도 않았다. 시큰둥하게 수업에 들어갔다.

그 날은 시험 날이었다. 인수분해 시험을 본다고 했다. 다들 계산기를 꺼내고 있었다. 수학 시간에 계산기는 처음 보았다. 당연히 나는 계산기가 없었다. 암산으로 풀었다. 나는 가장 먼저 시험을 풀었고, 만점을 맞았다. 이후 나는 학교에서 제일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되었다.

한국과 미국 수학 교육의 가장 큰 차이는 계산기의 유무다. 미국은 계산기를 허용한다. 현실에서는 모두 계산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일리 있어 보인다. 현실 사회에서는 모두 엑셀과 계산기를 사용하니 학교에서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계산기의 장점도 있다. 계산에 자유로우니 심화 문제를 내기가 편하다. 학교 시험에서 서술형 문제를 낼 수도 있다. 계산기가 없다면 암산 시간을 감안해야 하니 서술형 시험을 내기는 어려워진다. 깊이 있는 사고력을 묻기에는 학생들이 계산기가 있는 편이 좋다.

단점도 있다. 계산기를 쓰다 보면 계산기에 의존하게 된다. 암산 실력이 줄어든다. 미국 학생들은 평균적으로 한국보다 암산 실력이 떨어진다. 암산이 느리고 부정확하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미국에서 오래 공부할수록 암산 실력이 줄었다.

아만다 리플리는 교육 전문 기자다. 전 세계에서 함께 보는 표준화 시험인 PISA 점수가 높은 나라들을 취재해서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라는 책을 썼다. 그녀가 취재한 나라는 한국, 핀란드, 그리고 폴란드였다.

세 나라 모두 공통점이 있었다. 수학 수업에서 계산기를 쓰지 않았다. 아만다 리플리는 ‘기본기를 충실하게 다진 학생들이 수학을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결론지었다.

암산은 수학의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기본이다. 계산기 없이 암산을 훈련한 학생들은 암산력이 더 뛰어났다. 결과적으로 수학 실력조차 더 뛰어났다.

혹자는 미국이 고등 수학은 더 탁월하지 않으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반만 맞다. 미국에서 수학 점수를 견인하는 것은 이민자들이다. 특히 어린 시절 암산을 철저하게 단련한 아시아계다.

최근에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미국이 1위, 한국이 2위를 수상했다. 미국 대표팀의 인종 구성이 재미있었다. 전원이 아시아인이었다. 암산을 어릴 때부터 단련한 중국인, 한국인, 인도인이 미국의 심화 학습을 받아 최고의 인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인간은 계산할 필요가 없다. 기계가 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에게 계산기를 교육 과정부터 주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기계가 해주는 일이라도, 사람이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때문이다. 수학적 창의를 꽃피우려면 계산 훈련은 필수다. 계산기를 활용한 심화 학습 덕분에 미국의 엘리트 수학자는 세계 최고다. 암산과 심화 모두 필요하다.

계산기는 아주 단순한 기술이다. 하지만 그 기술을 도입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교육 전체가 바뀐다. 맞춤법, 문법 검사기는 어떨까? 알파고가 글쓰기 첨삭을 해준다면 학생은 글쓰기를 배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일까? 계산기를 준 미국 학생과, 계산기 없이 암산을 훈련한 핀란드, 한국, 폴란드 학생의 수학 실력은 천지 차이다. 신기술을 수업에 도입하기에 앞서 신중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기사 이미지
※에듀포스트에 실린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메일발송 해당기사 프린트 페이스북 트위터

목록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