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네이버 검색 1위 ‘숙제’
박기석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7.18 16:05
  • #1. 지난 6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생 김가영(가명)양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와서 컴퓨터를 켰다. 포털 사이트에 접속한 김양은 ‘사라져가는 곤충과 식물’을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김양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검색을 마무리했다. 첫 번째 페이지에서 나온 정보를 통합교과 여름 교과서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별다른 수고 없이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10분 안에 완성했다.

    #2. 충북 지역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인 홍성인(가명)씨는 지난 13일 학생들이 해온 음악 과목 수행평가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형문화재’를 조사해오라고 시켰는데 20여명 중 약 30% 정도가 인터넷에서 검색한 듯 내용과 순서가 거의 같았다. 심지어 관련 정보가 들어있는 인터넷 사이트를 그대로 인쇄해온 학생도 있었다. 홍씨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컴퓨터를 쉽게 접해서인지 숙제나 수행평가를 컴퓨터 검색만으로 손쉽게 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지난 12일 오후 1시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청소년 인기 검색어 1위는 ‘사라져가는 곤충과 식물(18.9%)’이었다. 초등 2학년 통합 교과 ‘여름’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으로 교사들이 주로 숙제로 내주는 내용이다. 결과물을 수행평가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은 주제다. 이 밖에도 10위 내 절반이 교과 관련 내용이었다. ▲3위 상제나비 사는곳(초 2 통합·10.7%) ▲7위 네온의 성질과 쓰임새(초 6 과학·8.1%) ▲9위 샤르트르 대성당 영역(초 6 미술·6.7%) ▲10위 인형을 든 마야 특징(초 6 미술·6.1%) 등이 숙제나 수행평가와 관련된 검색어다.

    일선학교 교사들은 숙제나 수행평가시 인터넷만 의존하는 학생들 때문에 베껴온 숙제를 골라내는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숙제를 온라인에서 대충 베끼는 가장 큰 이유는 숙제를 제대로 할 시간이 없다는 데 있다. 한국인구학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초등생은 약 151.7분 동안 학교 밖에서 공부했다. 학교 밖 공부 시간은 사교육에 참여하는 시간과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포함한다. ‘2016 청소년통계’에 따르면 2015년 초등생 10명 중 8명(80.7%)은 사교육을 받았다. 이는 중학생(69.4%), 고등학생(50.2%)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학부모들이 숙제나 수행평가의 의미를 낮게 평가하는 것도 문제다. 서울의 한 중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지원(가명)군은 “수행평가는 보통 엄마가 대신 해준다”며 “그러면서 수행평가할 시간에 ‘학원에서 문제나 더 풀고 오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생물 교사인 안정재(가명)씨는 “식물의 싹을 틔우는 숙제를 내줬는데 한 학부모로부터 ‘이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숙제를 내주면 공부는 언제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며 “국영수 문제풀이만 공부라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과제를 내는 교사에게 볼멘소리를 하는 학부모도 많다. 중 1 자녀를 둔 박유나(가명·44·서울 강남구)씨는 항상 비슷한 시기에 여러 과목의 수행평가가 동시에 이뤄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학생 평가를 마무리하는 학기 말에 수행평가를 급하게 진행하기 때문에 과제를 대충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교에서는 담임교사가 과목별 수행평가 일정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다른 과목 일정을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일정이 겹치는) 수행평가 폭탄을 맞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수행평가에 대한 인식 변화를 요구했다. 생각하거나 노력하기 싫어하고 온라인에서 자료를 그대로 긁어오는 실태가 문제라는 것이다. 정철희 학습디자인연구소장(중앙대 원격평생교육원 교수)은 “요즘 대입은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세이기 때문에 아이가 교과와 연계된 활동 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키워주는 게 중요하다”며 “어릴 때부터 수행평가를 통해 계획을 세우고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해주면 좋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