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상의 입시 속 의미 찾기] 멋진 신세계에 멋진 반론을 펼 수 있을까?
조선에듀
기사입력 2016.07.1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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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ES24 제공
    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오늘은 2016학년도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이 읽은 도서 6위 멋진 신세계(올덕스 헉슬리) 편입니다. 이 책은 2015학년도에도 6위 2014학년도에는 9위였습니다. 3년 연속 탑 10에 들어간 유일한 문학 작품입니다. 3년 연속 탑 10에 들은 비문학 작품은 이기적 유전자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외에는 없습니다. 꾸준한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선 문과와 이과 학생, 문학파와 비문학파를 모두 만족시키는 폭 넓은 작품성과 선명한 주제의식이 가장 큰 요인일 것입니다. 20세기 초반에 쓰였지만 21세기인 현재에도 최고의 미래소설로 칭송될 정도로 탁월한 작품이지요. 작가가 작품 속에서 그려낸 유전자조작이나 체외생식을 통한 인간의 ‘생산’은 생명복제가 가능해질 정도로 생명공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과생들은 이 부분에 주목해서 현재의 기술 수준과 소설 속의 묘사를 대비함으로써 전공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반면 문과생들은 비판적 메시지에 좀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래 우리가 만날 사회는 모든 인간이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통조림 캔처럼 획일적인 사회입니다. 동일성이 다양성을 압도하고 일체의 차이가 무시되고 있지요. 소마는 어떤가요? 소마를 통해서 비판의식, 인간이 가치 진보 행복 자유 인간의 존엄성 등을 생각할 틈새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멋진 신세계는 역설적인 제목이고 미래는 결국 겉으로는 유토피아 속으로는 디스토피아인 우울한 사회인 것이지요.

    작품성 만큼 재미도 있지요. 특히 생명복제 등의 관련 영화 등을 자연스럽게 인용하며 가독성 있게 자소서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다음 사례를 보시지요.

    사례 1)
    중학교 때 이 책을 읽을 때는 내용이 어려워서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본 ‘아일랜드’라는 영화에서 철저하게 통제되는 복제인간 사회 속 주인공이 그 틀을 깨며 전개되는 이야기에 ‘멋진 신세계’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학생은 복제 인간을 다룬 영화 ‘아일랜드’와 연결시켜 흥미진진하게 자소서를 풀어나갔습니다. 요즘 영화가 아닌 시간이 지난 영화 그래서 교수님들은 익숙한 영화 ‘아일랜드’를 활용함으로써 차별화에도 성공했다고 여겨집니다. 생명과학과 지원자나 의대 지원자들은 복제연구에 관련되어서 책에 기술된 내용을 슬쩍 건드려 주었더라면 전공적합성 면에서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겠지요.

    세 번째 이유는 책을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사례를 보시지요.  

    사례 2)
    작가가 멋진 신세계에서 예측한 과학발전에 따른 부작용이 현대에 이미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과학과 사회의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현재만 하더라도 심각한 환경 오염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 이상 기후 등의 과학 문제들은 비인간화 현상 같은 사회문제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사회이든 아니면 그렇지 못한 사회이든 인간이 가진 아름다운 심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상당수 학생들이 이 작품 속에 그려진 미래 사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메시지를 그대로 추종하다보면 결국 과학과 인간은 양립이 불가능하기에 둘 중에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하는 배타적 관계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윤리와 양심을 과학자가 잃지 않고 철학과 윤리가 과학을 적절하게 견제할 수 있다면 과학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존엄성은 분명 함께 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제가 면접관이라면 이런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펴고 싶습니다.

    “올더스 헉슬리가 이 책을 쓸 때는 복지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다. 질병과 빈곤으로부터 개인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의 국가의 역할 아닌가? 과학 기술은 복지를 위한 수단적 측면이 크지. 그런 측면에서 국가가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 개인의 복지를 개선해 준다면 결과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자연스럽게 지켜지는 것 아닐까?”

    제가 이 학생이라면 교수님께 이렇게 재반론을 펼 것 같습니다.

    “헉슬리가 이 책을 통해서 미래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전망한 것이 아니라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류를 디스토피아의 구덩이로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한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런 미래가 도래하지 않는다면 헉슬리 같은 사람이 이런 책을 써서 인류에게 경고를 했기에 인류는 그런 미래를 피할 수 있었던 결과로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헉슬리를 포함한 SF 소설의 거장들은 대개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전망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겠죠. 헉슬리가 이 책을 쓴 84년 전보다 과학 기술이 발전했지만 자유 사랑 평화 등의 기존 휴머니즘적 가치들이 줄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인류는 전보다 풍요로운 것도 사실이고 전보다 자유롭고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저는 그 요인이 민주주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헉슬리의 이 소설이 쓰인 시대에는 쏘련이나 독일 같은 파시즘 전체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크게 위협할 때여서 이런 미래를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최소한 전체주의라는 체제는 아주 극히 예외적인 체제로 북한 같은 일부 정부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새로 쓴다면 전체주의라는 공포보다는 극단적 개인주의와 고립감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적 공허감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새로운 디스토피아가 탄생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야만인 존과 무스타파 총통의 논쟁이었습니다. 존은 불행해질 권리를 개인적으로 요구하고 무스타파는 행복해질 권리를 사회가 주겠다고 합니다. 저는 분명 인류는 과학기술 뿐 아니라 자유 평화 사랑 등 정신적으로 진보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지만 단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행복 만큼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인류는 전보다 자유롭고 평화를 누리는 시간도 길어졌지만 그렇다고 인류를 구성하는 개인 한 명 한 명의 행복지수가 같이 늘어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 감정이고 남과의 비교를 통해서 얻게 되는 상대적 감정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요?  

    멋진 신세계와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멋진 음악을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70년대 초반 영국에서 활동했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는 프로그레시브 락 그룹입니다. 그룹 이름도 멋진 신세계이고 앨범 타이틀도 같은 제목입니다.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컨셉트 앨범이며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에게 헌사된 것이지요. 소마,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등 책의 중요 모티프들이 곡 제목입니다. 전체적으로 사이키델릭하면서 신비롭습니다. 전부 연주곡으로 가사 없이 악기만으로 책의 스토리와 이미지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눈을 감고 들으면 머릿 속 극장에서는 책의 내용이 마치 영화 장면처럼 전개됩니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이실지 궁금하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8tY--tvCR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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