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률 가장 낮은 한국? 독해력 떨어지는 실질문맹 수험생 늘고 있다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7.14 17:58
  • 경기도 A고교 국어 교사 김수진(가명)씨는 지난해 고3 야자(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던 중 국어 비문학 지문(地文)을 붙들고 씨름하던 B군을 봤다. 과학·기술 지문을 보던 학생은 유독 한 문장에만 밑줄을 그어댔고, 그 문장의 특정 단어에도 동그라미를 여러 번 덧그렸다. 이후 학생의 시선은 1~2분가량 해당 문장에 더 머물렀다. 다음 문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그대로 연출됐다. 김씨가 이유를 묻자, B군은 이렇게 말했다. “분명히 (문장을) 읽긴 했는데, 이해가 잘 안 돼서요.”

    교사 김씨는 “그 이후 야자 감독할 때 국어 지문을 보거나 문제 푸는 학생들을 더 유심히 보게 되는데, 열에 일곱은 지난해 봤던 그 학생과 비슷한 행동을 했다”며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문장을 읽고도 뜻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는 이른바 ‘실질문맹 수험생’이 늘고 있다. 실질문맹은 말 그대로 ‘실질적인 문맹’이라는 뜻으로, 글을 읽을 수는 있지만 해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문해력(文解力·글을 읽고 해석하는 능력)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실질문맹 수험생 확산의 증거로는 지난달 치른 2017 수능 6월 모의고사 국어영역 채점 결과가 대표적이다.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에 따르면, 이번 모의고사 국어 영역 표준점수 최고점은 141점. 입시 기관들은 보통 표준점수 최고점이 130점을 넘으면 ‘시험이 어려웠다’고 평가하는데, 이보다 무려 11점이나 높은 것이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이번 6월 모의고사 국어 영역 표준점수 최고점은 지난 10년간 집계된 수능 국어 표준점수 최고점보다도 높았다.

    권규호 이투스 국어영역 강사는 “문해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은 지문이 조금만 길거나 문장이 짧아도 낯선 주제·단어를 담고 있으면 해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번 6월 모의고사 국어 영역은 길고 생소한 주제·형태의 지문이 많이 나왔고, 표점(표준점수) 최고점은 예년보다 치솟았다. 문제 난도는 크게 높았다고 보지 않는다. 결국 상당수 수험생의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고 했다.

    홍준석 스카이에듀 국어영역 강사는 “길고 생소한 지문의 등장만으로 표준(표준점수) 최고점이 이렇게 높게 나왔다는 것은 문해력 약한 수험생이 생각보다 더 많이 분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은 수험생이 실질문맹 상태에 이른 이유는 뭘까. ‘학교 속의 문맹자들’의 저자인 엄훈 청주교대 교수는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어렸을 때부터 이해가 동반되지 않는 읽기를 반복하다 보니, 단어들 자체의 의미에만 집착해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터널 비전’ 현상이 심화했다”고 진단했다.

    홍 강사는 “문해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문장 내 정보를 의미단위로 쪼개 읽기 때문에 쉽게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문장 내 정보를 단어별로 세분화해버린다. 한 문장 안에서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이해가 더뎌지는 것이다”고 했다.

    이번 6월 모의고사 국어 영역 1~2번에 해당하는 지문 속 문장 ‘타이포그래피의 조형적 기능이란 글자를 재료로 삼아 구체적인 형태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기능을 말합니다’를 예로 들면 이렇다. 문해력이 뛰어난 학생들은 ‘타이포그래피의 조형적 기능이란/ 글자를 재료로 삼아/ 구체적인 형태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기능을/ 말합니다/’와 같이 의미단위를 중심으로 구분해 내용을 파악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타이포그래피의/ 조형적 기능이란/ 글자를/ 재료로/ 삼아/ 구체적인 형태의/ 외형적/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기능을/ 말합니다’와 같이 읽을 때 너무 많은 정보로 구분해 버리는 것이다.

    홍 강사는 “수험생들은 지금부터라도 의식적으로 의미단위로 쪼개 읽는 훈련을 통해 정보 처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예비 수험생들은 뻔한 얘기지만 꾸준한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향상시켜야, 훗날 수능에서 길고 생경한 지문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