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기획]교사·강사 간 ‘문제 거래’ 논란… “법적으로 문제 전혀 없어” vs. “내신 유출 가능성”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7.05 11:46
  •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 매매’ 관행 놓고 격론]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암묵적으로 이뤄지던 학원 강사와 현직 교사 간 ‘문제 거래’ 관행이 수면 위로 드러난 가운데, 교육 현장에서 ‘공교육과 사교육의 문제 매매’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이하 ‘6월 모평’) 국어 영역 문제 유출 혐의를 받는 유명 학원 강사 이모(48)씨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현직 교사들에게 돈을 건네고 문제를 사들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사실로 확인된 학원 강사와 현직 교사 간 문제 매매

    경찰 조사와 학원가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2010년부터 6년여간 경기도의 한 고교 국어교사인 박모(53)씨에게 문제 제작을 맡겼다. 박씨는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자신이 직접 문제를 만들거나 현직 교사 6~7명에게 재의뢰하는 식으로 출제를 완료해 이씨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씨는 이를 6·9월 수능 모의평가 직후 혹은 11월 수능 직전 등 수능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제작하는 모의고사 문제집에 주로 활용했다. 한 문제당 출제비는 7~10만원. 이씨가 6년간 박씨에게 건넨 돈은 약 3억원으로 추정된다. 박씨가 현직 교사들에게 준 금액은 수천만원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현직 교사와 학원 강사 간 문제 거래에 대가성이 있는지 수사하는 중”이라고 했다.

    교육 관련 전문인 김희환 변호사는 “학교 교사의 문제 거래가 직무와 관련된 금품수수로 밝혀진다면, 해당 교사는 중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금품수수는 성폭행·상습폭행·성적조작과 함께 교원의 4대 비위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학원 강사도 자신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현직 교사와의 문제 거래를 암시하면서 문항 완성도가 높다고 광고하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 부족·문제 완성도’란 미명하에 수년간 교사와 공공연한 거래

    학원가에선 수년 전부터 학원 강사와 현직 교사 간 문제 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져 왔다. 대치동 A학원 관계자는 “이모 강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유명 강사가 현직 교사들과 문제를 거래하는 건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라고 했다. B학원 관계자는 “학원 강사뿐 아니라 학원들도 (현직 교사들에게) 의뢰하고 있다”며 “너무 많이 공개된 사안이라 은밀한 얘기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일부 강사들은 아예 학생들 대상 현장 강의에서 문제 거래 사실을 여러 차례 언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학원 강사들에 따르면, 현직 교사들에게 출제 의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부족해서’라고 한다. 이른바 ‘일타 강사’로 불리는 C씨는 “학원 강사들은 강의료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강의 준비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출제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가 벅차다. 결국 누군가에 의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중 가장 적합한 대상이 바로 출제 경험이 많은 현직 교사들이다”라고 했다.

    문제의 질(質)을 높이기 위한 까닭도 있다고 한다. 특히 학원 강사들은 높은 문제 완성도를 위해 현직 교사 중에서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모평 검토위원 출신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원 강사 D씨는 “모평 검토위원 출신들은 평가원 주관 모의고사 문제 제작 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수능과 비슷한 형태의 문제들을 만들어내는 기술적인 능력이 있다”며 “오랫동안 수능 문제를 분석한 입장에서 볼 때 문제의 퀄리티도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했다. 이번 6월 모평 문제 유출 혐의 사건에 연루된 박씨도 검토위원 경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적 문제없고 정당한 대가 치렀다” vs. “교사가 만든 문제 학원 가서 돈 주고 풀라는 꼴”

    현재 현직 교사에게 문항을 사는 학원 강사들은 이러한 거래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강사 C씨는 “현직 교사와 문제 거래를 하는 많은 학원 강사가 대부분 출판사를 갖고 있다. 출판업으로 사업자 등록도 끝낸 상황이다. 강사의 의뢰로 현직 교사에게 문제를 받아 모의고사 문제집을 만들어주는 회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강사와 현직 교사 사이에 출판사가 존재하는 사례다. 어쨌든 두 사례 모두 강사가 돈을 내고 현직 교사의 문제 저작권을 사서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는 거다. 따라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문제를 사고 파는 행위가 이뤄졌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 소지가 될만한 건 없다고 본다”고 했다.

    일부 교사들도 비슷한 의견이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 E씨는 “교사의 겸직은 엄금 사항이지만, 그래도 출판만큼은 (교육계 자체적으로) 관용을 베푸는 편”이라며 “그동안 많은 교사가 일반 출판사를 통해 출제한 부분은 문제 삼지 않다가, 갑자기 학원 강사와 연결된 출판사의 의뢰로 문제를 만드는 것에 제재를 가하려는 건 다소 이상한 논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 G씨는 “사실 교사의 출제나 문제집 출판은 일반적인 일인데, 이번 사건으로 문제가 된다면 자유로울 교사가 몇이나 되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일부 학부모 사이에선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고교 2학년 자녀를 둔 김이나(가명·서울 양천구)씨는 “(학원 강사와 현직 교사 간 문제 거래는) 교사가 만든 문제를 풀려면, 학원 가서 돈 주고 풀어보라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며 “공교육이 사교육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꼴”이라고 토로했다. 고3 자녀를 둔 정지희(가명·서울 서초구)씨는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의 의뢰로 수능 모의고사 문제집에 들어갈 문제를 만든다면, 그 학교 고3 내신 시험 문제가 학원가에 유출될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학원가와 고교 현장에서도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대치동 F학원 관계자는 “그동안 (문제 매매가) 관행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됐던 게 사실”이라며 “내신 문제 유출 등 오해의 소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러한 부분에 대해선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울의 한 일반고 교사 G씨는 “이번 사례는 법적인 문제가 없더라도,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도덕적 비난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며 “앞으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질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