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듀] ‘과정’ 쓸 수 없는 현행 학생부… “대학은 뭘 보고 학생 평가합니까?”
박지혜 조선에듀 기자
기사입력 2016.02.02 15:52


  • [교육계가 보는 ‘학생부 기재 규제 사항’]

    고교 교사들 “글자수·수상경력 제한 등 완화해야… ‘세특’ 등 일부 항목은 비공개로”
    대학 등 일각선 “양보단 질적 우선… 규제 푼다고 많은 학생이 혜택 볼지 의문”


    “학생부종합전형은 학교생활을 중심으로 학생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데, 현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기재 사항에는 학생 삶 일부를 외면하게 하는 요소가 많아요. 교내 수상의 경우 경력만 달랑 적게 하는데, 이 경우 대학이 아이의 고교 생활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 (대회 등을 준비한) 과정을 적지 말라니, 이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의미한 양적 기술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건 학교 현장에서도 인식하고 있어요. 교사들이 질을 중시해서 적으면 글자 수·입력내용 등 학생부 규제 사항을 풀어도 문제가 없을 거예요. 시행착오야 있겠죠. 시행착오는 넘어가면 되는데, (교육 당국은) 그게 두려운 거죠.”

    “핸드폰 싸게 팔면 불법이 되듯, 양심을 걸고 (학생부를) 잘 써주고 싶은 아이들이 있어도 정성을 다해 기재하면 이는 부당한 것이 돼요. 교육 당국이 공정보다는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거죠. 이는 교사 자율권 약화뿐 아니라 2015 개정 교육과정과의 괴리도 가져올 수 있어요. 평가방법 개선을 위해선 학생부 틀이 바뀌어야 합니다.”


    학생의 학교생활 전반을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지난해 대입 수시모집에서 27.7%(6만7231명)를 차지한 입학 전형이다. 2017학년도에는 그 비중이 29%(7만2191명)까지 늘어난다. 정부가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 사업 등으로 학생부종합전형 확대 방침을 펴는 만큼 앞으로도 그 비중은 계속 커질 전망이다.

    하지만 고교 현장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이 확대되는 데 비해) 현재 글자 수·입력내용 등 학생부 기재에 제한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에 제약이 많은 학생부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제대로 된 평가자료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학생당 평균 3개 참여하는 동아리활동, 500자 내로 기록 어렵다”
    교사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부분은 창의적 체험활동 등의 글자 수 제한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자율활동·진로활동(이상 1000자)·동아리활동·봉사활동(이상 500자) 등 특기사항과 봉사활동실적 활동내용(250자)란으로 이뤄지는데, 이 가운데 특히 동아리활동란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박혁상 서울 청원여고 교사는 “학생들은 보통 자율동아리 2개와 상설동아리 1개 등에 소속돼 있다. 현행 학생부 지침처럼 외부 활동 기재가 안 될 때는 동아리를 중점적으로 적어야 하는데, 동아리 담당교사들이 저마다 간결하게 쓰다 보면 내용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성환 서울 대진고 교사도 “자율 2개와 상설 1개 등 동아리 평균 활동 내역을 500자로 제한하면, 담당교사가 관찰한 학생의 개별적 특징을 기록하기 어렵다”며 “한 동아리 담당교사가 많은 내용을 적으면, 다른 동아리 활동은 아예 적지 못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교사들이 제시하는 방향은 적정 수준의 글자 수 완화다. 지창욱 원주 상지여고 교사는 “교육부 취지가 학생들이 동아리 1개 정도에 참여할 줄 알고 (500자 제한) 방침을 내리지 않았겠느냐”며 “동아리 1개당 500자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고 했다. 송선용 인천 광성고 교사는 “활동사항은 다 써주는 것이 정상인데, 일률적으로 글자 수 제한을 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동아리활동의 경우 장황하게 기재하는 것보다 700자 정도로 완화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자율과 상설 등 동아리별 섹션을 나눠 기재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박혁상 교사는 “동아리마다 몇 자 정도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 좋다. 한 공간 안에 교사들이 활동 사항을 적다보니 충돌이 일어난다”며 “교과학습발달사항처럼 동아리별 섹션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수상경력 등 입력내용 제한에 따른 ‘과정 결여’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수상 내역을 경력란에만 기재하도록 해 실적 위주 나열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부가 학생의 삶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자료가 아닌 학생 선발을 위한 평가적 도구에만 머물게 한다는 맹점이 될 수 있다.

    송선용 교사는 “사교육을 유발할 수 있는 외부 경시대회 참가 실적을 적지 못하게 하거나 글자 수를 제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며 “하지만 교내 경시대회까지 수상 실적만 기재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시대회를 준비하게 된 동기나 과정까지 적어야 대학이 아이의 고교 생활을 가늠할 수 있는데, 과정을 적지 않으면 무엇으로 평가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혁상 교사도 “수상 내역에서도 학생의 성실함을 보여줄 수 있는 서울학생모범상 수상 등을 기재하지 못 하는 게 아쉽다”고 전했다.

    학교 현장이 원하는 것은 명확한 기준을 토대로 한 학생부 기재 사항의 완화다. 그래야 과정 중심의 학생부 기록이 이뤄지고, 이것이 현 대입 정책의 안정화로 이어진다고 본다. 송선용 교사는 “올림피아드 등 외부 경시대회에 목을 매는 일부 지역 학생들 때문에 규제가 생긴 것인데, 지금처럼 기준 없이 규제만 있는 학생부로는 고교와 대학 모두 불편하다”며 “(지금 규제대로라면) 봉사활동도 외부활동을 못 적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교사들은 비교적 긴 기간 동안 학생을 수시로 관찰하며 관련 정보를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누가기록’이 대입 평가 시 가장 차별화되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도 보고 있다. 누가기록은 학생이 배워온 과정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음에도, 현재 학생부 반영 영역에서 제외돼 대입 전형 자료로는 쓰이지 않고 있다. 이수시간을 합산하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된다.

    안성환 교사는 “대학들이 입시에서 변별력을 갖기 위해 학생부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과 독서·동아리활동 등을 보려는 상황에서 ‘누가기록’은 가장 좋은 평가도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 학생부 작성에 대한 지침과 규제는 공정보다는 평등에 가깝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 맞물려 평가방법 개선을 이뤄내기 위해선 학생부 기록 틀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부 규제 사항이 사라졌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양적 나열’ 문제도 충분히 개선 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대학들은 글자 수 등 학생부 양이 많은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질적인 것을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의미한 양적 기재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교사들도 충분히 인식하는 부분이다. 교사들이 질을 중시해서 적으면 제한이 풀려도 전형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규제가 풀렸을 때 시행착오는 일어날 수 있는데, 이를 교육 당국이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 풀면 고교 간 경쟁 과열될 것”
    한편 현행 규제 사항에 크게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지창욱 상지여고 교사는 “동아리활동을 제외하고는 (학생부 기록이) 크게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자수 제한 등을 풀면 획일화된 기재 내용만 더해지는 껍데기만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목·자사고에서는 일반고의 과잉 경쟁을 우려했다. 경기지역 한 자사고의 고 3 진학담당교사는 “교내 동아리의 경우 200개가 넘는다. 학생 한 명당 3~4개씩 활동하는데, 그러한 내용을 관찰해 기록하려면 교사 업무가 마비될 것”이라며 “다른 활동 사항에서도 일반고가 더욱 전략적으로 기재할 수 있어 과도한 경쟁이 유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서울 한 특목고 교사는 “우리 학교는 학생부 양이 적은 편이지만 대입 수시 실적이 좋다. 자수·내용 제한 안에서도 잘 소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고교별 양적 경쟁으로 가지 않도록 지금과 같은 제한이 있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어 “제한이 풀렸을 때 어떤 학생은 많이 작성해주고, 또 다른 학생은 적게 써주는 등 ‘차별’ 문제도 제기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측 “학생부 기재 내용 현재로도 충분”
    그렇다면 학교가 평가한 기본 데이터(학생부)를 해석하는 대학은 이러한 기재 사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대부분이 “지금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종호 동국대 입학사정관은 “평가자 입장에서는 내용이 간결한 게 더 좋다. 제한을 풀어 학생부를 30장씩 쓴다고 평가자가 학생을 더 잘 파악하는 게 아니다. 글자 수 제한이 있는 지금도 천편일률적인 ‘붙여넣기’식 내용이 더 많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부분 교사가 행정업무 등으로 바빠 학생을 제대로 관찰할 시간이 없는데, 제한을 풀면 정상적 업무 진행이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한 이공계특성화대학 입학사정관은 “과거 입학사정관전형 초기, 제출서류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을 시절에 기타 증빙서류 등을 받아보니, 의미 없는 자료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이공계중심대학 지원자들은 수학·과학 대회 등과 관련된 것을 빼면 제출할 자료가 없다. 제한을 푼다고 많은 학생이 혜택을 볼지는 생각해볼 문제”라고 꼬집었다.

    서울권 한 대학 관계자도 “대부분 대학이 학생부 외 자료를 더 받고 싶어 하지만, 현행으로도 문제될 건 없다. 학생부종합전형 외 특기자 전형 등으로 학생의 여러 특성을 평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교육계 한 관계자는 “대학들이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 사업비 등을 받는 만큼, (대학 관계자들이) 학생부 제한 등 현 나라 정책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교육계에서는 ‘학생부 공개’에 대한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 사립대 입학처 관계자는 “학생 평가 시 학생부의 ‘창의적 체험활동’ ‘세부능력 특기사항’ ‘독서활동상황’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주로 보는데 ‘~에 참여했다’는 식의 단편적 기술이 많다. 교과 빼고는 평가에 활용할 만한 기록이 많지 않다는 뜻”이라며 “일부 항목은 비공개로 전환해 교사들이 자기 의견을 많이 기술하도록 했으면 한다. (교육 당국에서도) 이러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종호 입학사정관은 “학생 특성이 잘 드러나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세부능력 특기사항’ 항목 정도는 비공개로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무엇보다도 교사들이 학생과의 소통·관찰을 통해 ‘핵심내용’을 잘 적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서울 한 일반고 교사도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생부 내용이 공개되다 보니 교사의 의견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란’과 ‘객관란’ 등을 구분해 교사란은 대학에만 공개되도록 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