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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들 중 최하위이다. 최근 영국의 자선단체인 ‘칠드런스 소사이어티’와 요크 대학이 발표한 ‘2015 좋은 유년기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전반적으로 행복하지 않다”고 대답한 어린이들의 비율이 15개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외모에 대한 만족도 역시 꼴찌였고,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 또한 14위로 거의 꼴찌에 가까웠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왜 불행할까? 입시 위주의 경쟁적인 학습문화와 성취주의에 찌든 직업문화를 그 원인으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과 직장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을 성공과 실패로 규정하고 있어 어려서부터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거나, 입시의 압박을 견뎌가며 공부에만 몰두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이런 문화가 아이들의 자존감에도 상처를 준다는 사실이다. 자존감(self-esteem)은 자신의 가치를 존귀하게 여기는 감정이다. 우리 부모들은 흔히 아이들의 비교의식을 자극하며 자신의 가치를 존귀하게 여기지 못하도록 압박한다. “다른 아이들도 100점 맞았니?” “이번에도 그 아이가 또 1등 했니?”라는 말들로써 은근히 아이들의 자존감 형성을 방해한다.
과도한 외모지상주의도 문제다. TV에서 예쁜 것이 착하다는 논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가 하면, 외모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문화가 고착화되고 있다. 아이들은 다양한 매체들이 내세우는 예쁘고 잘생긴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 자신의 외모가 그 기준과 다르면 ‘나는 못생겼다’는 낮은 자존감을 갖는다. 연예인의 화장이나 옷차림을 지나치게 따라한다든지 중학생 때부터 성형수술을 받는 현상은 이렇게 낮아진 자존감을 채워보려는 심리적 반응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왜곡된 문화와 기준들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려 결국 ‘나는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긍정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행복과 자존감의 상관계수는 0.6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여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행복하기 어렵다. 자존감을 연구한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Nathaniel Branden)도 “자존감이 낮으면 어려움을 겪을 때 두려움과 우울함에 압도당할 가능성이 높지만, 자존감이 높으면 덜 우울하고, 빨리 극복할 수 있어 금방 행복감을 되찾는다”고 말한다. 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보다 비교적 더 행복하다.
따라서 아이들의 자존감을 길러주려면 사회가 정한 행복의 기준을 강요하기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 곧 기쁨의 성품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기쁨의 성품은 “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즐거워하는 것”(좋은나무성품학교 정의)이다.
실제로 자살을 결심한 학생이 기쁨의 성품을 배운 뒤 자존감을 회복한 사례가 나타난 경우도 있다. 필자가 속해있는 사단법인 한국성품협회에는 초중고 학생들에게 성품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수업을 들은 한 학생이 첫 수업 당시에 자존감이 극도로 낮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러나 성품 강사로부터 “너는 존재만으로도 존귀하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점차 기쁨의 성품을 회복하고, 결국 새 삶을 얻은 것 같은 행복을 되찾은 사례가 있다.
이처럼 우리 아이들에게 행복을 돌려주려면 먼저 가까이에 있는 어른들이 기쁨의 성품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만을 가르쳐왔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여기고 즐거워하는지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부모나 교사부터 기쁨의 성품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나 교사에게 기쁨의 성품이 있어야, 아이들에게도 기쁨의 성품을 일깨워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성품이 주는 행복을 경험한 사람만이, 좋은 성품을 가르쳐 줄 수 있다는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좋은 인성을 키우는 이영숙 박사의 부모성품코칭] 자존감을 높이는 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