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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진상입니다. 독서에 관한 수많은 명언이 있지만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명언만큼 언제 어느 때고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는 없는 듯 합니다.
남아수독오거서라는 말을 남긴 두보에서부터 “나를 키운 것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다”고 말한 빌 게이츠까지 동서고금을 통틀어 모든 위인과 지성 가까이에는 항상 책이 있었습니다. 독서의 중요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이 바로 국내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서울대일 겁니다. 서울대 자소서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여러 항목들이 명멸했지만 독서 항목만큼은 단 한 해도 빠진 적이 없는 것이 그 증거겠지요. 얼마 전 언론에서는 서울대 지원자가 자소서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책, 베스트 20이 공개되었는데요, 오늘은 이와 관련, 독서 전문가로서 온라인 국어,영어 독해력 교정 훈련 사이트스터디포스(www.studyforce.co.kr)에서 특목고 대학 입시 컨텐츠를 맡고 계신 지슬기 팀장님과의 인터뷰를 2주에 걸쳐 싣겠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입니다. 참고로 서울대 자소서 독서 활동의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고등학교 재학 기간 또는 최근 3년간 읽었던 책 중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을 3권 이내로 선정하고 그 이유를 기술하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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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답 : 안녕하세요. 스터디포스(주) 언어과학연구소 지슬기입니다. 특목 대학 입시 컨텐츠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문 : 서울대 자소서는 해마다 양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 유독 독서 항목만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이 이유에 대해서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답 : 밤낮없이 국영수에 매달리는 고교생들에게 독서는 가장 쌓기 힘든 ‘스펙’입니다. 서울대는 웹진 ‘아로리’를 통해 “충분한 독서활동을 통해 연마한 우수한 독서능력은 성공적인 대학생활의 출발점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독서야말로 학업 능력과 지적 통찰력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검색 몇 번이면 수 많은 책의 리뷰를 볼 수 있고 그럴싸한 독후감도 완성시킬 수 있는 시대에 서울대가 독서 항목을 고수하는 이유는 단순히 글을 요약하고 감상하는 스킬을 확인하려는 것 보다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과정을 경험하고 깨달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책의 선정 ‘동기’와 ‘느낀 점’에서 해당 학생에게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지적 발전이 있었는가를 평가하는 것이죠. 자연스럽게 학생의 포부와 지원 학과에 대한 열의 역시 확인할 수 있겠지요.
문 : 한 권 한 권 이야기를 나눠 보시지요. 1위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입니다. 이 책을 서울대 지원자들이 그렇게 많이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답 : 서울대학교는 지원자들에게 학습 능력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서울대생으로서, 사회의 일환으로서 전인적인 가치관과 이 사회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이 책은 세계의 기아 문제가 정치, 경제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고 불합리함의 연속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원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사회에 얼마나 관심을 쏟고 있는지를 어필하기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문 : 이기적 유전자, 정의란 무엇인가, 오래된 미래, 침묵의 봄, 엔트로피 등의 책들이 리스트에 올라가 있습니다. 다소 어렵거나 딱딱한 주제의 책들인데요, 서울대 지원자들은 이들 책들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생각하시는지 팀장님의 의견을 말씀해 주시지요.
답 : 의과대 지원생이 가장 많이 읽은 ‘이기적 유전자’나 인문대생이 가장 많이 읽은 ‘정의란 무엇인가’등 위 책의 공통점은 지원 분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나름의 해결 방안을 모색했음을 증명하여 전공에 대한 전문성과 열정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또한 오래된 미래, 침묵의 봄, 정의란 무엇인가의 책이 가진 ‘윤리’라는 공통 화두는 본인의 가치관과 인성을 드러내주기 적합합니다. 하지만 이런 유명한 책들은 그만큼 차별화가 어렵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높은 사고력과 통찰력을 필요로 합니다. 선정 이유 역시 평이한 상황적 계기가 아닌 실제 본인이 연구 중인 것과 관련지어야 부각될 수 있습니다. 전공적합성을 꼭 전공과 관련된 분야의 도서에서만 찾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문 : 연금술사, 엄마를 부탁해, 멋진 신세계, 죽은 시인의 사회 등의 소설 작품도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데요, 이들 소설들이 서울대 지원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답 : 연금술사의 산티아고는 작은 마을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노인이 말한 ‘자아의 신화’, 표식을 위해 긴 여행을 떠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산티아고는 현실에 안주하는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자신 역도 이상과 현실에서 수없는 고민을 하며 깊은 갈등을 겪지만 마침내 우주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됩니다. 지원자들은 산티아고와 함께 여정하며 자신의 자아를 응원하였다고 합니다.
멋진 신세계는 병 속에서 배양되고 계급이 정해진 채 태어나 질병과 전쟁도 없이,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를 소개합니다. 우울함이 느낄 때면 소마라는 마약이 해결해주지요. 보호구역에서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고 자란 야만인 존은 이 강요된 유토피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하고 맙니다. 지원자들은 불행해질 권리를 박탈당한 이 멋진 신세계에 불편함과 함께 동경도 느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권리에 대해 재고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을 겁니다.
산티아고가 자아를 찾는 여정부터 강요된 유토피아에서 자살을 선택한 야만인 존까지, 지원자들의 독서활동에는 모두 인간 존재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습니다. ‘존재’에 대한 질문은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해주며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린다면 더없이 훌륭한 독서 활동이 되겠지요.
물론 모든 독서가 진로나 자아 성찰과 연결될 필요는 없습니다. 힘겨운 수험기간을 겪으며 당연히 엄마에게 부탁만 하던 수험생들이 읽은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에 대한 감사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닐 겁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내 주변을 돌보고 살피는 따뜻한 감성을 끌어내줄 수 있지요.
다양한 관점으로 소설을 해석하는 자세도 중요합니다. 사범대 지원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죽은 시인의 사회’를 살펴보지요. 전통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며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디엠’은 한 아이의 자살을 불러왔고 결국 교사는 퇴출되었습니다. 사범대생이라면 학생의 입장이 아닌, 질서적 측면도 고려해봐야 할 것입니다. 창의적인 것이 언제나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지요. 여러 관점에서 소설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음에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지공신공 입시연구소 소장, 수시의 진실 저자, sailorss@naver.com
[신진상의 고등 공부 이야기] 서울대 자소서 독서 활동 베스트 20의 진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