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힐링스토리] ‘루저’들의 위기의식에 대해서
맛있는 공부
기사입력 2014.11.24 09:22
  • “아버지,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버지 일 그만뒀는데도 계속 용돈 받아쓰기 죄송했어요. 취직하고 싶어 그렇게 애를 썼는데, 어느새 서른이 넘었네요. 이제 받아주는 곳도 없고, 다시 도전할 용기도 제겐 없습니다.”

    뉴스에 보도된, 한 청년이 생을 마감하며 남긴 유서의 일부다. 청년의 자살률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자살률은 유래가 없는 것이다. 사회에 자신이 디딜 공간이 조금도 없음을 깨닫고서 마지막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적 불행이 아니다. 에밀 뒤르켐이 이미 오래전《자살론》에서 밝힌 것처럼 ‘사회적 타살’에 가깝다. 개인의 생의를 반하는 사회 압박과 좌절의 사회구조가 계속될 때 생명이나 신체의 존엄마저 망각할 정도로 인간의 정신은 허약해질 수 있다. 최근 청년들의 자살은 정확히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잘난 사람들은 빛을 발하며 산다. 사회와 미디어는 잘난 이들의 빛으로 채워져 있다. 세상은 인재를 바라고, 스타를 원하며, 세상은 성공한 이들을 경배한다. 인생에서 패한 루저(loser)들은 사회의 그림자 편에, 그늘에 머물며 숨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루저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지만, 세상은 소수의 위너들을 위해 짜여 있다. 경쟁에서 패한 루저들이 겪는 가장 일상적인 감정은 열등감, 질투, 불안, 우울이다. 루저들이 경험하는 불안은 우울증만큼이나 치명적인 문제들을 일으킨다. 뉴스 사회면의 불편하고 충격적인 사건들을 대개는 그들의 불안이 빚어낸 것들이다. 개인의 실패와 부정적 심리는 서로 꼬리를 물고 커져, 심각한 정신질환에 이르게 하고, 세상을 향해 나서지 못하게 생의 의욕을 증발시킨다. 그리고 일어나선 안 될 일들이 적힌 사회면 페이지를 장식한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도 불안은 있지만, 루저들이 경험하는 불안은 근본부터 다르다. 루저들의 불안은 저기 높은 곳에 다다르기 위해 경쟁하고 분투하다 소진되는 삶에서 밀려드는 불안과는 전혀 다르다. 자기존재를 고민하는 실존적 불안이 아니라 생존의 위협에서 오는 동물적 불안이다. 루저들의 불안은 자기 존재가 정말로 지워질 것만 같아 두려운 실질적 위기감이다. 세상과 소통되지 않아 갑갑함을 느끼고, 세상이 언제든 자신을 소멸시켜버릴 것만 같아 느끼는 짙은 현실적 불안이다.

    선두에 서서 앞서 나가며 경쟁을 벌이는 이들이 느끼는 불안은 사실 따져보면 환각에 가깝다. 1등을 하지 못하고, 10등이나 20등을 한다고 삶의 위기가 진짜로 밀어닥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맨 아래 100등에 가깝거나 꼴찌인 자에게는 자신이 지금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으며, 언제든 세상과 타인들이 자신을 아주 작은 이권에조차 끼지 못하게 막을 것이라는 생존의 위협에서 파생된 구체적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사회적 지표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구의 10% 이상은 이런 루저의 불안을 경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내 경험상 이들에게는 심리상담이 무용하다. 내가 루저들의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넘겨짚을 수 있는 이유는 심리상담을 위해 찾는 이 상당수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현석씨는 전형적인 루저의 삶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부모님 바람대로 실업계 고등학교 대신에 인문계에 진학했지만, 성적은 바닥권이었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특별히 바라는 것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이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겨우 지방 전문대에 입학했지만, 군대를 갔다 온 후 의욕은 더 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휴학한 상태로 3년이 흘렀다. 부모 등살에 억지로 공무원 시험을 몇 번 보았지만, 붙을 리 없었다. 지금 현재 거의 은둔형 외톨이에 가깝게 지내며 시간이 흐르는 대로, 아무 자기의지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게 우울증은 10년 가까운 지병이었고, 부모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심리상담을 받으러 왔지만, 내게 당신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 힘든 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부모님의 경제력이 소진될 때 자기 삶도 끝날 거라고 단정했다. 현석씨는 자신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가 있는데 지금 한국사회에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심리문제는 사회구조적 문제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했다. 언젠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분발해서 이 상태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누군가 내 자리를 차지하겠죠? 누구를 넘어뜨려 내 자리에 앉히는 건 또 무슨 의미인가요?”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