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열공했더니 아이도 열공하더라"
이윤정 인턴기자 yjlee@chosun.com
기사입력 2010.12.29 09:51

엄마·아빠표 공부법
사교육보다 부모 생각이 더 중요…
논술지도 과정 이수 등 먼저 공부…체험활동·독서 함께하며 교감도…

  •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생의 사교육 참여율은 87.4%다. 사교육 도움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어린이는 10명 중 1명 남짓에 불과하다. 초등생 1명의 주당 평균 사교육 참여 시간도 8.6시간으로 중학생(8.3시간)이나 고교생(4.3시간)에 비해 높다. 초등생의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며 나타나는 문제는 여러 가지다. 당장 가계 지출이 늘고 부모와 자녀 간 대화 시간은 줄어든다. 학부모들은 고민에 빠진다. ‘어떻게 해야 사교육비를 줄이면서 아이와 좀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정답은 엄마·아빠가 직접 아이 교육에 팔을 걷어 붙이는 것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현명한 자녀교육법을 고심하는 학부모를 위해 소년조선일보가 나섰다. ‘ 열혈 학부모’ 구수현·정나연 씨가 말하는 ‘우리 아이 내 힘으로 가르치기’ 비법을 낱낱이 공개한다.  편집자 주

    #1 지원이 엄마 구수현 씨 딸보다 먼저 공부하다

    지난달 22일, 서울 영훈국제중 합격 발표가 있었다. 떨리는 맘으로 발표를 기다리던 구수현 씨(41세)는 큰딸 유지원 양(서울 연희초 6년)의 합격 소식을 듣고 기쁨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구 씨는 지원이가 초등 4학년이던 지난 2008년부터 사실상 딸의 과외 교사 노릇을 해왔다. 기왕 가르칠 것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자신의 실력부터 갈고 닦았다. 처음엔 독서교육과 공부법 지도에 관한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고, 차차 분야를 넓혀갔다. 현재 그가 취득한 자격증과 수료증은 6개나 된다.



  • 구수현 씨가 딸 유지원 양과 함께 작업한 체험보고서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구 씨는 “보고서를 책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모녀간의 정이 새록새록 쌓였다”고 귀띔했다. / 이윤정 인턴기자
    ▲ 구수현 씨가 딸 유지원 양과 함께 작업한 체험보고서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구 씨는 “보고서를 책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모녀간의 정이 새록새록 쌓였다”고 귀띔했다. / 이윤정 인턴기자
    그가 처음부터 ‘열공 엄마’ 였던건 아니다. 구 씨 역시 처음엔 다른 학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지원이에게 학습지 과외를 시키고 종합학원에 보냈다. “ 지원이가 네 살 때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다섯 살 2학기 때부턴 유치원으로 옮겼죠. 일곱 살 되던 해 여름엔 한글·수학 학습지를 시키면서 미술학원과 피아노학원에 보냈고요. 학습지 선생님은 1주일에 한 번씩 집으로 와 15분씩 아이를 가르쳤죠. ‘ 이만 하면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키고 있다’ 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구 씨는 학원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한 무리 아이들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다. 힘없이 축 처진 어깨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내 아이의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섰다. 그날 이후 구씨는 딸을 직접 지도해보기로 결심했다.

    다행히 지원이는 책을 좋아했다. 구 씨는 독서 지도부터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당장 독서지도사 초·중급과정을 각 6개월씩 1년간 공부해 자격증을 땄다. 20차시에 걸쳐 ‘한국사 편지’ (박은봉 글, 책과 함께 어린이)를 공부한 끝에 역사논술지도사과정도 수료했다.

    효과는 이내 나타났다. 글짓기 대회에 나간 지원이가 상을 도맡아 타오기 시작한 것. 지원이가 초등 6년간 받은 교내외 상은 줄잡아 60개에 이른다. 구 씨가 틈틈이 익혀둔 북아트(book art·책을 직접 만들고 꾸미는 작업) 기술도 효과를 발휘했다. 체험보고서 과제를 딸과 함께 책으로 펴내 좋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구 씨는 얼마 전부터 자신이 배운걸 다른 학부모와 나누는 데 열심이다. 딸이 다니던 연희초등에서 독서수업 명예교사로 2년간 활동했고 상담봉사에도 참여했다. 요즘은 이진아도서관 독서회 프로그램을 통해 중등논술을 배우는 틈틈이 서울시 학부모지원센터에서 학부모 상담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공부하는 엄마’ 가 되며 저 스스로 교육에 대한 생각이 많이 넓어진 것 같아요. 되새기거나 배우지 않으면 원칙이 흔들리기 쉽죠.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는 엄마가 되겠습니다.”

  • 정나연 씨와 아들 은교 군 군
    ▲ 정나연 씨와 아들 은교 군 군
    #2 은교 아빠 정나연 씨 '아빠표 사교육' 만들다

    정은교 군(서울 창도초 3년)은 재간둥이다. 생후 40개월에 이미 한글을 깨친 후 한자 공부를 시작했고 초등학교 입학 전 한 영재기관에서 실시한 테스트에서도 상위 1%의 영재성을 인증받았다. 학교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모범어린이상을 여러 번 받았고 최근엔 도봉구의회로 부터 봉사정신이 뛰어난 어린이로 표창도 받았다.

    주변에선 ‘모범 어린이’ 은교의 비결을 궁금해한다. ‘ 비싼 학원에 다녔겠지 좋은 과외 선생님을 만났겠지’ 생각하기 쉽지만 은교는 지금껏 한 번도 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니,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아빠표 사교육’ 만큼은 열심히 받았기 때문이다. 핵심은 독서다.

    은교 아빠 정나연 씨(45세)는 늘 아들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히 아들 은교도 아빠 옆에 앉아 책 읽는 시간이 늘었다. 읽은 책 내용을 서로 얘기하다보니 대화가 풍부해졌고 부자간에 함께하는 시간도 늘었다. 정 씨도 ‘책 읽는 아들’ 의 모습이 마냥 흐뭇했다.

    매주 토요일, 도봉산에서 이뤄지는 자연학습도 빼놓을 수 없다. 은교는 아빠와 함께 돋보기 하나를 들고 산 곳곳을 둘러본다. 갈참나무와 상수리나무의 차이점도 알아보고 엉겅퀴와 민들레꽃도 관찰한다. 이끼 틈에 살고 있는 작은 풀벌레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책에서 본 곤충의 실물을 만날 때면 신나서 곁에 있던 등산객이 깜짝 놀랄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통에 정 씨가 당황한 적도 여러 번이다. 정 씨는“도봉산에 다니면서 은교의 집중력이 크게 늘었다”고 귀띔했다.

    정나연 씨가 은교에게 시킨 또 하나의 교육은 체험학습이다. 경복궁·국회의사당·서대문형무소·농업박물관…. 정 씨는 은교를 데리고 서울시내의 거의 모든 박물관과 궁궐을 찾았다. 올해만 해도 50곳이 넘는 곳을 방문했다. 나들이가 가능했던 건은교가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방과 후 시간을 여유 있게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정 씨는 사전에 방문 장소에 대해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은교가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최근 정나연 씨의 자녀교육법은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제2회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 성공사례 우수상에 당선됐다. 김중희 심사위원장(서울 고산초등 교장 선생님)은 심사평에서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녀와의 협의를 통해 동기를 부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고 말했다.

    정나연 씨는 “은교를 가르치며  ‘아빠표 사교육’ 이 교육 효과 면에서나 자녀의 정신 건강 면에서 효과가 우수하다는 걸 알게 됐다” 며 “족집게 과외나 비싼 학원보다 부모의 올바른 생각과 의욕이 자녀를 바르게 이끄는 길이란 걸 보여줄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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