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재] 초등학교 '디지털 도서관' 제대로 운영되고 있나?
최민지 인턴기자 merryclave@chosun.com
기사입력 2010.11.26 09:51

체계적인 도서관 교육 없고… 가르쳐주는 사서 선생님도 없고…
"내겐 너무 어려운 '도서 검색 시스템'"

  • #사례 1

    며칠 전, 서울 ㄷ초등학교 4학년 신희주 양은 수학 관련 책을 찾고 싶어 학교 도서관을 찾았다. 컴퓨터 검색창에 ‘수학’을 입력했다. 열 권이 넘는 책 중 ‘수학귀신’(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지음, 비룡소)을 읽기로 마음먹고 도서번호를 확인했다. 853엔331ㅅc.2. 숫자와 한글, 알파벳이 마구 뒤섞여 있는 번호는 너무 길고 어렵다. 결국 신 양은 사서 선생님을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 ‘수학 귀신’ 어딨어요?”

    #사례 2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정독도서관은 매월 둘째·넷째 주에 관내 초등학교에 배치되는 비정규직 사서(司書·책 관리를 담당하는 직업) 선생님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이들은 대부분 도서검색 자격증조차 갖고 있지 않은 ‘아마추어’들이다. 근무 기간도 들쑥날쑥이어서 어떤 초등학교에선 1년에 두세 번씩 사서 선생님이 바뀌기도 한다. 이 수업의 당초 정원은 15명. 하지만 올 들어 교육 지원자가 늘어나면서 지난 4월부터 20명이 수업을 받고 있다.

    ◆디지털 도서관이 뭐지?… 검색·대출·반납, ‘원클릭’으로 끝!

    전국 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디지털 도서관’이란 항목이 뜬다. 디지털 도서관이란 학교 도서관의 모든 업무를 디지털화(化)해 컴퓨터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디지털 도서관 제도의 도입으로 학생들은 도서 검색을, 사서는 대출과 반납을 각각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다. 학생들은 디지털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인기 대여 도서 순위를 볼 수도 있고, 게시판을 통해 각자 읽은 책에 대한 의견도 나눌 수 있다.

  • ▲ "아하!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컴퓨터로 검색하면 된다는 거지?" / 아이클릭아트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하고 각 시·도교육청 교수학습정보지원부가 시행하는 이 사업은 학교 도서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난 2001년 부산에서 시범 운영된 이후 2004년부터 전국 7개 시·도교육청에서 시행되고 있다. 도서의 관리와 검색이 가능해진 건 ‘DLS(Digital Library System)’란 프로그램 덕분이다. 현재 전국 시·도교육청이 초·중·고교 도서관 진흥 정책에 투자하고 있는 돈은 연간 22억여 원. 이 중 약 10%(2억 원)가 DLS의 유지·보수에 쓰인다.

    ◆문제 1… 어려운 분류 체계 “스스로 책 찾는 어린이 없어”

  • ▲ "853엔331ㅅc.2. 선생님, 검색했는데요, 대체 이게 무슨 말이에요?" / 아이클릭아트
    하지만 문제도 있다. 무엇보다 많은 돈을 들여 만든 프로그램의 실제 활용도가 예상을 밑돌고 있다. 검색 프로그램에 입력된 도서 번호가 너무 길고 어렵기 때문이다. 정준수(가명) 경기 파주 ㅎ초등학교 사서 선생님은 “스스로 책을 찾을 수 있는 학생이 거의 없어 우리 학교만이라도 번호 체계를 바꿔보려고 심각하게 논의했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이 도서 번호는 한국도서관협회가 정한 한국십진분류법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박문열 청주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한국십진분류법은 공공기관이나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므로 어린이용 분류 체계를 별도로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국에선 어렸을 때부터 도서 검색에 대한 교육이 활발히 이뤄진다”며 “어린이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다소 어렵긴 하지만 초등생도 미리 교육받으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 2… 사서 인력 턱없이 부족, 전용 수업도 안 이뤄져

    하지만 초등생에게 책 찾는 법을 알려줄 사서 선생님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형편이다. 2010년 11월 현재 교사 임용 시험을 거쳐 서울시내 585개 초등학교에 배치된 정규직 사서 선생님은 고작 26명. 25개 학교가 사서 한 명을 나눠 써야 하는 구조다. 나머지 학교는 형편에 따라 비정규직 사서 선생님 채용 여부를 결정, 운영해오고 있다. 김현미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운영지원과 주무관은 “초등학교 도서관은 교실 1~3개 정도 크기로 영세하게 운영되고 있어 학교마다 사서를 한 명씩 배치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취재 중 돌아본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사서 선생님이 없는 경우 체계적 독서 지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비정규직 사서가 배치된 학교의 사정은 더욱 열악했다. 임인수(가명) 서울 ㄷ초등학교 사서 선생님은 “책을 제대로 못 찾는 아이들이 많아 검색 수업을 해보고 싶지만 난 계약직에 불과해 수업 준비로 일이 번거로워지는 건 싫다”고 말했다.

    학교마다 주 1회 실시하도록 돼 있는 ‘도서관 활용 수업’도 거의 교과 수업으로 대체되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9일부터 18일까지 서울과 경기 일대 6개 초등학교를 돌았지만 도서관 수업이 시간표대로 이뤄지는 학교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조수정(가명) 서울 ㄱ초등학교 선생님은 “대부분의 교사가 도서관 수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교과 수업이나 특기적성 수업 등으로 바꿔 진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 "아… 책 찾기 넘 어려워서 포기포기!방법 좀 알려주세요!" / 아이클릭아트
    ◆해결책은? 전공자 활용하고 학생·학부모 자원봉사 유도

    오길주 경민대 독서문화콘텐츠과 교수는 독서 교육 인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 교수는 “학교 현장에선 사서가 부족하다지만 막상 독서문화콘텐츠과나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은 일자리가 없어 전공과 상관없는 회사에 취직한다”고 말했다. 대학의 관련 학과와 시·도교육청이 연계해 학교마다 전문 인력을 배치하고 사서 선생님을 학교 선생님과 비슷하게 대우해줘야 한다는 게 오 교수의 생각.

    학생이나 학부모 자원봉사자를 활용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비정규직 사서 선생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이종희 정독도서관 계장은 “비정규직 사서가 있는 학교여도 학생과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나서 도서관을 활성화시킨 경우를 여럿 봤다”며 “학생·학부모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거나 학부모를 주체로 한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볼 만하다”고 귀띔했다.